“에너지 전환은 정책 신뢰·지역 환원으로 완성”

오지현 기자 2025. 10. 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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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성장하다
〈10〉전문가가 본 에너지 전환의 길
고정가격서 입찰제로…경쟁으로 단가 낮춰
주민참여·세제 환원으로 지역 수용성 확보
정책 일관성·제도 신뢰가 비용 절감의 핵심
한전 주도 장기 에너지 전환 모델 구축 시급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여부는 시장이 아니라 정책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은 1998년부터 에너지 시장을 자유화했지만, 이 자체가 재생에너지 확산의 전제조건은 아니었다"며 "정부의 일관된 정책과 세제·보상 제도 설계가 신뢰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전력 중심의 전력 구조가 오히려 대한민국의 재생에너지 전환 및 확대에 유리한 구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도 제시했다.
독일 헬골란트 섬 해역에 위치한 해상풍력 발전단지. RWE 제공

독일이 만든 전환의 공식
2000년대 초 재생에너지법(Erneuerbare-Energien-Gesetz·EEG)을 제정한 독일 정부는 고정가격 매입제(FIT)를 도입해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냈다.

당시 태양광 발전 단가는 일반 전기의 6~10배 수준에 달했지만,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 발전사업자의 손실을 최소화했고, 이 제도가 태양광·풍력 확산의 출발점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력의 차액 보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기요금에 '재생에너지 부담금'(EEG Umlage)을 신설, 발전사업자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소비자에게 킬로와트시당 약 6.5유로 센트를 추가 부담했다. 그러나 관련 세금이 당시 가정용 전기요금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등 부담이 커지자 "친환경 전환의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는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투명한 공개와 사회적 합의로 대응했다. 전기요금 고지서에 부담금 항목을 명시해 사용처를 공개했고, 연방네트워크청(BNetzA)이 매년 보조금 운용 내역을 공시하도록 한 것. 또 저소득층에는 에너지 지원금을 지급하고, 산업용 전력요금을 별도 산정해 형평성 논란을 완화했다.

정부 주도의 정책 일관성과 제도의 신뢰가 유지되자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는 급격히 하락했으며, 정부는 다시 고정가격 매입제를 경쟁입찰제로 전환했다. 이는 정부가 1기가와트(GW)의 태양광 입찰을 공고하면 사업자들이 킬로와트시당 단가를 제시하고 정부가 가장 낮은 가격부터 채택하는 방식이다.

제도 개편으로 재생에너지 단가는 더욱 빠르게 하락했으며, 현재 독일의 지상형 태양광 발전의 균등화 발전단가(LCOE)는 킬로와트시당 약 4.1~5.0유로센트(€0.041~€0.050) 수준으로 낮아졌다.

한편 독일 정부는 2022년 7월부터 재생에너지 부담금을 폐지하고, 탄소배출권 거래 수익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계는 연간 약 130~300유로의 전기요금 절감 효과를 얻었으며, 제도 또한 보조금 지급에서 시장 경쟁 중심 구조로 전환됐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는 "처음에는 정부의 보조가 시장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제도의 안정성이 비용을 낮추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며 "결국 정책이 경쟁력을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력망 지중화 사업. 독일 연방네트워크청 제공

주민참여와 세제 환원…'지역이 움직이는 전환'
독일에서 활동 중인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 전환은 설득과 협의, 그리고 제도화된 주민참여에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풍력발전의 초기 갈등 사례를 언급하며 "서독 기업들이 동독에 와서 '땅 10m만 빌려주면 연 3000만 원을 주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모두 환영했지만, 막상 풍력기가 설치되자 소음과 시각적 불편이 커져 반발이 일었다"며 "남의 땅에서 남이 돈 버는 구조에 대한 불신이 갈등의 핵심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후 주민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어 발전소를 세우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주민이 조합을 구성하고 수익을 공유하자 반대가 줄어든 거죠. EEG(재생에너지법)가 보장한 전력 매입단가 덕분에 현금흐름이 예측 가능해졌고, 은행에서도 안정적 수익구조로 인정해 저리 대출이 가능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제도적 신뢰가 구축돼야 주민참여가 확산된다"며, "독일은 세제 환원과 송전망 보상 등을 통해 지역이 전환의 주체로 설계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독일은 2000년대 후반부터 발전시설이 위치한 지역의 세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방사업세(Gewerbesteuer) 제도를 개편했다. 발전소 본사가 아닌 발전시설이 위치한 지자체에도 세수가 배분되도록 조정함으로써, '에너지 지산지소'를 현실화시킨 것이다. 

또 2021년 개정된 재생에너지법(EEG 2021)에서는 풍력발전사업자가 설치 지역 지자체에 킬로와트시(kWh)당 최대 0.2유로센트를 자발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는 법적 의무가 아닌 자진 지급이나, 작센이나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 등 독일 일부 지역은 조례를 통해 이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는 "이런 방식은 발전사업자에게 별도 부담을 지우지 않아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다"며 "세제나 기금을 통한 환원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지자체는 항상 예산 부족에 허덕이나, 기업들은 지역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과 함께 법인세, 지방세 환원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기업이 투자한 지역에 세수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전망 확충과 관련해서도 그는 "보상 구조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며 "송전망은 인프라이자 수익사업인 만큼 이용료의 일부를 지역에 환원하도록 법제화하면 주민 반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송전망 이용료의 일정 비율을 지자체에 배분하는 표준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월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전 중심 전환 필요...리더십 전제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중앙의 리더십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업계 전문가는 "독일은 송전망과 배전망이 분리돼 조정이 어렵지만, 한국은 한국전력공사(KEPCO)가 일괄 관리하는 구조라 체계적인 전환을 추진하기에 유리하다"며 "다만 지금처럼 한전이 정부의 명령만 따르는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한전이 재생에너지 시대의 주체로서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정권 교체 때마다 탈원전과 원전 정상화 정책을 반복하며 방향성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국가에너지기본계획, 한전의 중장기 투자전략이 여러 차례 수정됐고, 이에 따라 민간 기업과 지자체의 투자 일정도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그는 "송전망 확충이나 입찰시장 설계는 장기 투자가 필수인데, 정책의 연속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업과 지역 모두 위험을 분담하기 어렵다"며 "재생에너지는 단기 실적이 아닌 장기 산업이기 때문에 정책의 신뢰와 예측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망과 송전선로, 계통운영 등 핵심 인프라를 관리하는 한전이 전력거래소·정부와 함께 계통운영·지역 환원 설계 등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권한을 가져야 중앙의 조정력과 지방의 수용성이 함께 확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현재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남 등 주요 재생에너지 거점 지역의 송·변전 설비를 국가기간망으로 지정하고, 전력망 이용료의 지역 환원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재생에너지 입찰제와 송전망 수익공유 모델을 포함한 '에너지 전환 제도 패키지'가 발표될 예정이다.

에너지 전문가는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며 "정부의 일관된 정책, 한전의 실행력, 지역의 참여가 함께 움직일 때 지속가능한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