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유산] (19) 감천 마을 오일도 생가

문정화 기자 2025. 10. 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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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일제시대 애국지사이자 항일 시인인 오일도(1901∼1946) 선생의 생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8호로 지정된 곳이다. 생가는 'ㅁ'자형 뜰집으로 정침과 대문채의 2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침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4칸의 홑처마 팔작집이다.
자연풍광은 인간의 생각과 사상, 문학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동서고금의 문인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 변화에 감응하며 시를 짓고 글을 썼다. 자연은 문학의 모태가 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정화된다"라고 믿었다. 근대 자유시를 개척한 미국의 월트 휘트먼은 "초목 하나하나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라는 생각으로 자연을 찬미했다. 이처럼 자연은 사람의 내면을 일깨우고, 사유의 지평을 넓히며, 언어를 통해 세계를 재해석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영양군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곳은 깊은 산과 깨끗한 계곡, 고요한 숲과 맑은 물줄기를 간직한 '슬로우 시티'다. 여기는 속도보다 여유, 소음보다 정적,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간직한 땅이다. 그 가운데서도 감천 마을은 문학이 자연의 숨결 속에서 자라나는 정신적 성소이자, 삶의 결이 시로 전해지는 예술적 영감의 터전이다. 산은 위엄 있게 서 있고, 숲은 생명력이 넘치고, 물은 유리처럼 맑다. 이런 환경은 기품 있는 문인을 키우는 비옥한 토양이다.
문학과 자연이 조화로운 영양문학 테마공원

◆감천 마을, 자연과 충절, 시심이 깃든 영양의 요람

감천 마을은 400여 년 전, 낙안 오씨 오원노와 그의 아들 오시준이 경북 영해에서 이주하여 터를 잡은 집성촌이다. 처음에는 '지곡'이라 불렀으나, 오씨 집안이 정착한 이후 '동곡', '운곡'이라 불리다가, 마을 뒤편 '감나무와 단맛 나는 샘'에서 유래해 오늘날 '감천'이라 불리게 됐다.
오시준은 1562년 무과에 장원 급제하고 병마첨절도사에 임명될 만큼 뛰어난 무예를 지닌 무인이었다. 조선 최고의 명궁으로 평가받으며, 선조로부터 '손오병서'를 하사받고 훈련원에 '원사비(遠射碑)'를 세웠다. 그의 아들 오수눌 역시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 휘하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며 충절의 가문 명맥을 이어갔다.
마을 앞에는 일원산에서 발원해 임하댐을 지나 안동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반변천이 유유히 흐르고, 그 건너 절벽 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측백나무 숲이 자생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감천 마을은 단지 풍경만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충절과 의병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마을이기도 하다. 오일도 시인의 시심 역시 이 마을의 자연과 역사 속에서 자라났다. 감천 마을은 자연의 깊이와 시대의 아픔, 문학적 울림이 어우러진 정신의 요람이다. 현재 마을에는 '영양문학 테마공원'과 '오일도 시공원'이 조성돼 있다.
오일도 시인의 생가 중문채 오른쪽의 사랑채에는 '국운헌'과 '한묵청록'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오일도 생가, 시심이 움튼 유년의 서재

오일도 시인의 생가(경북 영양군 영양읍 감천1길 34,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8호)는 감천 마을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전통 한옥은 44칸 규모의 기와집으로, 오일도의 할아버지 오시동이 1864년(고종 1년)에 지은 집이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정면 5칸, 측면 6칸의 'ㅁ'자형 구조로 된 본채가 나타난다. 중문채 오른쪽의 사랑채에는 '국운헌(菊雲軒)'과 '한묵청록(翰墨淸綠)'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국운헌'은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했던 오수눌의 호 '국헌'에 구름 '운(雲)' 자를 더해 이름 붙인 것이고, '한묵청록'은 '바른 글을 쓰고자 하는 맑고 고결한 정신'을 상징하는 문구다. 중문채에 딸린 작은 글방에서 오일도는 학문을 익히고, 자연과 문학을 가까이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이 한옥은 오일도의 시 정신이 움튼 공간이자, 조선의 전통과 정신이 깃든 문화유산이다.
일도 오희병 시인의 '지하실의 달'

◆지조의 항일 애국 시인, 오일도

오일도(1901~1946)의 본명은 오희병(吳熙秉), 호는 일도(一島)다. 그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릿쿄 대학 재학 중 시에 심취했고, 1925년 『조선문단』 4호에 '한가람 백사장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내 연인이여! 좀 더 가까이 오렴/지금은 애수의 가을, 가을도 이미 깊었나니./검은 밤 무너진 옛 성 너머로/우수수 북성 바람이 우리를 덮어 온다./나비 날개처럼 양상한 네 적삼/얼마나 차냐! 왜 떠느냐? 오오 매 무서워라./내 연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지금은 조락의 가을. 때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내 여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일부) 그의 시 세계는 이처럼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애상과 영탄이 어우러진 감성적 색채를 지녔다. 그는 감정을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롭게 드러냈으며, 내면의 슬픔과 고뇌는 시대의 그늘과 맞닿아 있다. 그의 시는 단순한 정서의 표현을 넘어,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는 1935년,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詩苑)』을 창간했다. 이는 단순한 출판 활동을 넘어,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시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원』은 비록 5호로 종간되었지만, 그 정신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1936년 『을해명시선(乙亥名詩選)』을 펴내 시대를 대표하는 시들을 엮었다. 또한 그는 요절한 조지훈(1920~1968)의 형 조동진의 유고 시집인 『세림시집』(1938)을 지훈과 함께 출간했다. 그는 영양 출신 문인들 가운데 가장 먼저 문단에 등장해 문학적 기틀을 닦은 선구자였다.
태평양전쟁이 말기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통제는 더 거세졌고, 조선 문인들 다수는 생존을 이유로 변절의 길을 걸었다. 오일도는 끝까지 일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1942년 고향 감천으로 낙향해 조용히 칩거하며 '과정기(瓜亭記)' 등의 글을 집필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1946년 지병으로 향년 46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해방 후 『시원』의 복간을 시도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오일도는 열정적인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험난한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지조를 함께 지녔던 인물이다. 그가 남긴 시들은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저항의 목소리고, 희망의 씨앗이었다.
오일도 시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책을 펼쳐 들고 앉아 있는 일도 오희병 시인의 동상과 '지하실의 달' 시비를 만날 수 있다.

◆저녁놀 품은 시인의 길

감천 마을은 풍광만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조선의 충절을 간직한 땅이자, 한 시인이 태어나 시를 쓰고 시대를 아파하며 살아간 삶의 공간이다. 반변천의 물소리, 측백 수림의 정적, 붉게 물든 노을, 별이 유난히 맑고 신비로운 밤하늘, 이 모든 풍경이 오일도의 시심을 기르고 자극했다. 자연은 시인을 낳고, 시인은 시대를 증언했고, 마을은 그 시인을 품었다. 감천 마을과 오일도의 삶은 그렇게 서로 얽혀있다. 우리가 감천 마을을 찾는 이유는 단지 한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자연과 시가 교감하던 그 시간의 울림을 마음으로 느끼고, 삶과 문학이 맞닿았던 풍경 속에서 자신의 감성을 비춰보기 위해서다.
그의 '저녁놀' 한 대목을 되뇌며 반변천을 걸어본다. 노을이 저물고 어둠이 번지면, 감천의 밤하늘은 총총한 별빛으로 고요히 물든다. 이윽고 강물 위로 별빛이 내려앉고, 숲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 윤곽을 드러낸다. 시인은 흐르는 물소리와 측백의 향 속에서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교차점을 노래했다. 감천 마을 저녁놀은 문학이 어떻게 삶을 지탱해 주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이 우주에/저보담 더/아름다운 것이/또 무엇이랴!/저녁놀 타고/나는 간다/붉은 꽃밭 속으로/붉은 꿈나라로" 오일도는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미와 꿈의 언어로 조용히 빚어낸다. 그의 시에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무게가 있다. 그의 시는 소리 없이 마음을 적시고, 긴 여운을 남긴다. 감천의 저녁놀은 한 생이 시가 되어 스며드는 풍경이 된다. 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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