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유산] (19) 감천 마을 오일도 생가

영양군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곳은 깊은 산과 깨끗한 계곡, 고요한 숲과 맑은 물줄기를 간직한 '슬로우 시티'다. 여기는 속도보다 여유, 소음보다 정적,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간직한 땅이다. 그 가운데서도 감천 마을은 문학이 자연의 숨결 속에서 자라나는 정신적 성소이자, 삶의 결이 시로 전해지는 예술적 영감의 터전이다. 산은 위엄 있게 서 있고, 숲은 생명력이 넘치고, 물은 유리처럼 맑다. 이런 환경은 기품 있는 문인을 키우는 비옥한 토양이다.

◆감천 마을, 자연과 충절, 시심이 깃든 영양의 요람
오시준은 1562년 무과에 장원 급제하고 병마첨절도사에 임명될 만큼 뛰어난 무예를 지닌 무인이었다. 조선 최고의 명궁으로 평가받으며, 선조로부터 '손오병서'를 하사받고 훈련원에 '원사비(遠射碑)'를 세웠다. 그의 아들 오수눌 역시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 휘하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며 충절의 가문 명맥을 이어갔다.
마을 앞에는 일원산에서 발원해 임하댐을 지나 안동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반변천이 유유히 흐르고, 그 건너 절벽 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측백나무 숲이 자생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감천 마을은 단지 풍경만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충절과 의병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마을이기도 하다. 오일도 시인의 시심 역시 이 마을의 자연과 역사 속에서 자라났다. 감천 마을은 자연의 깊이와 시대의 아픔, 문학적 울림이 어우러진 정신의 요람이다. 현재 마을에는 '영양문학 테마공원'과 '오일도 시공원'이 조성돼 있다.

◆오일도 생가, 시심이 움튼 유년의 서재

◆지조의 항일 애국 시인, 오일도
그는 1935년,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詩苑)』을 창간했다. 이는 단순한 출판 활동을 넘어,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시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원』은 비록 5호로 종간되었지만, 그 정신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1936년 『을해명시선(乙亥名詩選)』을 펴내 시대를 대표하는 시들을 엮었다. 또한 그는 요절한 조지훈(1920~1968)의 형 조동진의 유고 시집인 『세림시집』(1938)을 지훈과 함께 출간했다. 그는 영양 출신 문인들 가운데 가장 먼저 문단에 등장해 문학적 기틀을 닦은 선구자였다.
태평양전쟁이 말기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통제는 더 거세졌고, 조선 문인들 다수는 생존을 이유로 변절의 길을 걸었다. 오일도는 끝까지 일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1942년 고향 감천으로 낙향해 조용히 칩거하며 '과정기(瓜亭記)' 등의 글을 집필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1946년 지병으로 향년 46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해방 후 『시원』의 복간을 시도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오일도는 열정적인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험난한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지조를 함께 지녔던 인물이다. 그가 남긴 시들은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저항의 목소리고, 희망의 씨앗이었다.

◆저녁놀 품은 시인의 길
감천 마을은 풍광만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조선의 충절을 간직한 땅이자, 한 시인이 태어나 시를 쓰고 시대를 아파하며 살아간 삶의 공간이다. 반변천의 물소리, 측백 수림의 정적, 붉게 물든 노을, 별이 유난히 맑고 신비로운 밤하늘, 이 모든 풍경이 오일도의 시심을 기르고 자극했다. 자연은 시인을 낳고, 시인은 시대를 증언했고, 마을은 그 시인을 품었다. 감천 마을과 오일도의 삶은 그렇게 서로 얽혀있다. 우리가 감천 마을을 찾는 이유는 단지 한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자연과 시가 교감하던 그 시간의 울림을 마음으로 느끼고, 삶과 문학이 맞닿았던 풍경 속에서 자신의 감성을 비춰보기 위해서다.
그의 '저녁놀' 한 대목을 되뇌며 반변천을 걸어본다. 노을이 저물고 어둠이 번지면, 감천의 밤하늘은 총총한 별빛으로 고요히 물든다. 이윽고 강물 위로 별빛이 내려앉고, 숲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 윤곽을 드러낸다. 시인은 흐르는 물소리와 측백의 향 속에서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교차점을 노래했다. 감천 마을 저녁놀은 문학이 어떻게 삶을 지탱해 주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이 우주에/저보담 더/아름다운 것이/또 무엇이랴!/저녁놀 타고/나는 간다/붉은 꽃밭 속으로/붉은 꿈나라로" 오일도는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미와 꿈의 언어로 조용히 빚어낸다. 그의 시에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무게가 있다. 그의 시는 소리 없이 마음을 적시고, 긴 여운을 남긴다. 감천의 저녁놀은 한 생이 시가 되어 스며드는 풍경이 된다. 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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