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은 철거 마땅한 풍경인가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한겨레 2025. 10. 2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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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 하나를 꼽자면, '노점상인'이 있는 풍경이다.

노점상은 이 도시의 간이 부엌이다.

가을의 초입, 건대 명물이었던 노점상 거리의 일부가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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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노점상 생존권 사수 투쟁 농성 33일째 풍경. 빈민운동가 최인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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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도심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 하나를 꼽자면, ‘노점상인’이 있는 풍경이다. 쨍한 주황색 천막에 둘러앉아 어묵탕이나 곰장어에 소주를 곁들이는 배우를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속 낯선 거리, 세트장이 우리 동네 낯익은 길가 어디 한편으로 뒤바뀐다. 주황색 천막과 간이 테이블, 간이 의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플라스틱 그릇은 도시민 공통의 감각이다. 각자의 도시를 모두의 도시로 만드는 힘은 이런 장면의 나열이다.

직업코드 ‘5322’. 국가에서 노점상에게 부여한 직업코드다. 엄연히 직업이다. 불법이라며 눈총받기 일쑤였지만, 사실 국가보다도 오래된 직업. 어쩌면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직업일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실력 좋고 자본 없는 이들의 ‘간이’ 테이블이 놓였다. 노점상은 이 도시의 간이 부엌이다. 타로, 사주, 관상 등 종교적 일상도 감당하고 있으니 간이 성소이며, 때때로 간단한 옷가지를 팔고 있으니 간이 옷장이요 과일, 나물, 건어물, 생선, 잡화 등 하나하나 세어보자면 그 끝이 없으니 뭐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노점상은 사람의 필요를 닮아 있다. 맥락 없이 생긴 매대는 단 하나도 없다. 노점상을 눈엣가시로 보는 이들을 포함해 모든 도시민의 욕구와 유행에 따라 천막은 도시 생태계의 기반이 됐다.

가을의 초입, 건대 명물이었던 노점상 거리의 일부가 철거됐다. 타로 거리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거리. 떡볶이며 만두며 먹을거리도 많았다. 9월8일 새벽 3시, 철거용역 250명, 거기에 광진구 공무원 100명 정도가 동원되어 삽시간에 철거했다. 가로막는 사람들을 끌어내고,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생계터전 잃을 수 없다며 가게 안에 들어가 ‘사람이 있는데 설마 철거할까’ 싶었던 순전한 마음은 천막보다 먼저 철거된다. 하루에만 40개 넘는 가게가 철거당했다. 남은 가게들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으니, 이제는 하루가 멀다 찾아와 명찰도 없이,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는 카메라부터 들이댄다. 소속을 밝히라고 하면 코웃음을 칠 뿐이다. 광진구청은 거리 미화를 했다며 건대 입구 곳곳에 펼침막을 붙여뒀다.

서울 광진구 지역 주민들이 건대입구역 노점상 철거에 반대해 직접 팻말을 만들어 연대하고 있다. 빈민운동가 최인기 제공

이 도시가 생겨난 순간부터, 거리 곳곳 이른 새벽과 늦은 밤, 불을 밝혔던 노동에는 무어라 이름을 붙여야 할까? 과거 서울시장이 ‘디자인 서울’을 하겠다고 하니 건대 노점상인들은 사비를 들여 규격화 사업에 동참했다. 매달 점용료를 내고 있으니, 불법이라고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15년 전부터 내던 점용료를 현 광진구에서는 ‘과태료’라고 한다. 늘 그랬다. 아현포차 거리가 사라질 때도 그랬다. 40년 넘은 아현포차 거리에 공무원 단골손님이 없었을까? 점용료 조로 지불되던 것이 선거철 되니 갑자기 ‘과태료’라 불렸다. 단골 공무원은 더는 아현포차 거리를 지나지 않았다. 건대 입구 지나가며 어묵 하나, 떡볶이 한그릇 안 먹어 본 광진구청 공무원 한명 없었을까?

깨끗한 서울은 어떤 서울일까. 험한 세상살이 불안한 마음, 지폐 몇장에 위로받던 타로 거리에서 오갔던 구민들 처연한 사정도 철거당하기 마땅한 지저분한 풍경일까. 떡볶이 한그릇 후다닥 먹고 가는 간이 부엌이 천만 도시에 단 하나도 없이 멀끔히 사라지면 그건 아름답고 훌륭한 서울일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고작 4년짜리 임기 구청장이 불법이라면 그날로 사라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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