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 최무룡과 연인 역할도…연예계 40년 ‘최민수 외할머니’ 전옥
1969년 10월 22일 58세

배우 전옥(1911~1969)의 별세 소식은 갑작스럽게 전해졌다. 1969년 10월 22일 오전 7시 경기도 별내에 있는 과수원에서 고혈압 증세로 쓰러졌다. 서울 성바오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불과 3년 전인 1966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연기 생활 40년 기념 연예제: 삼천만의 애인’을 공연했다. 2월 17일부터 나흘간 하루 4회 공연하는 강행군이었다. 역시 40주년을 맞은 배우 이종철(1909~1972)과 함께였다.

한국연예단장협회·한국연예협회가 주최한 ‘전옥·이종철 40주년 연예제’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배우·희극인·악극인·가수가 총출동했다. 독고성·황해·허장강·나애심·복혜숙·엄앵란 등 영화인 17명, 곽규석·구봉서·남보원·배삼룡·서영춘·송해 등 희극인 21명, 김칠성·김윤봉·이영·강효실·김미정·김희자 등 악극인 19명, 남일해·최희준·현인·신카나리아·이미자·은방울자매 등 가수 43팀이었다. 당대 주요 연예인을 망라한 대형 공연이었다.
전옥은 함흥 출신으로 16세 때인 1927년 나운규가 만든 영화 ‘잘 있거라’에 주연 역할을 맡았다. 본명은 전덕례. 미들급 복싱 선수였던 친오빠 전두옥이 나운규와 친한 사이였다. 오빠는 자신의 이름에서 ‘두’ 자만 빼고 ‘전옥’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전옥은 1928년 나운규 영화 ‘옥녀’와 ‘사랑을 찾아서’에서 잇따라 주연을 맡았다. 토월회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다. 빅터레코드 전속 가수로도 활동했다. (‘모던경성’-‘눈물의 여왕’ 전옥)
전옥은 해방 후에는 마지막 악극단으로 평가받는 ‘백조가극단’을 16년간 이끌었다. 1957년 46세 때 영화 ‘항구의 일야(一夜)’에서 주연인 카바레 여급 역할을 맡았다. 1933년 전옥이 ‘황성 옛터’의 작사가인 배우 왕평(본명 이응호)과 함께 낸 동명의 악극 음반을 김화랑 감독이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상대 배우는 17세 연하인 최무룡(1928~1999)이었다. 영화에서 이철 역 최무룡은 탄심 역 전옥과 하룻밤을 보내며 장래를 약속하고도 무정하게 떠나간 마도로스를 연기했다. 실제로 둘은 사위와 장모 관계였다. 최무룡은 1954년 전옥의 딸인 배우 강효실(1932~1996)과 결혼했다. 전옥은 최무룡·강효실의 아들인 배우 최민수의 외할머니다.

전옥은 19세 때인 1930년 극단에서 만난 배우 겸 가수 강홍식과 결혼했다. 강효실을 비롯해 2남 1녀를 낳았고 7년 후 이혼했다. 강홍식은 1948년 자녀들을 데리고 월북했으나 강효실은 전옥의 동생인 외삼촌을 따라 1951년 1·4 후퇴 때 남으로 왔다.
전옥은 비극적인 여주인공 역할을 실감 나게 연기해 ‘눈물의 여왕’ ‘비극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으나 연극과 무대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1966년 40주년 공연에 앞서 가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도 연극과 무대에 대한 열정을 밝혔다.
“영화가 연극을, 무대를 죽인다는 것은 우리 한국뿐이에요.”(1966년 2월 6일 자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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