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정원영 “500명만 들어도 좋아… 내 음악이 필요한 곳에 가서 닿기를” [마이라이프]
고2 때 이장희에 발탁된 ‘될성부른 떡잎’
송창식·조용필 밴드 거쳐 버클리 음대로
‘긱스’ 결성… 재즈·팝 융합 선구적 시도
이적·정재일 등 뮤지션들의 멘토 꼽혀
천상병 詩 ‘귀천’서 영감 얻은 새 앨범
3년 전 이태원 참사가 이끈 앨범 작업
떠난 이들을 위한 ‘조용한 추모’ 담아
‘먼북소리’ 작고한 김민기에 헌정
강단서 후배 양성… “전의 없다” 쓴소리도
정원영밴드서 후배들과 연주실험 계속
“신인은 미숙해도 꿈틀대는 생명력 있어야
자신만의 고유한 색과 메시지 지니길”

“고2 때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어느 클럽 누가 잘한다’ 그러면 그 클럽을 찾아다녔어요. 한상원(기타리스트)이랑 ‘저희 음악하려고 하는데 구경 좀 하고 싶다’ 그랬죠. 그러다 어느 분이 낮에 한 번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수술 때문에 열흘 정도 입원한다고 ‘너 한번 쳐봐’ 그래서 쳤더니 ‘오늘부터 나 대신 연주하라’고 해서 밤무대를 시작했죠.”
‘어린 친구가 연주 잘한다’는 소문이 나자 이장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장희는 그를 송창식의 스튜디오로 데리고 가서 “아무거나 쳐봐라”라고 했다. 전설적 전자피아노 ‘펜더로즈’를 그때 처음 봤다고 한다. “제 연주를 듣더니 ‘너 고등학교 졸업하면 나랑 음반 내자’ 하셔서 그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터에 무엇을 그렇게 배우고 싶었는지 묻자 미국 재즈 음악가 허비 행콕 이야기를 꺼냈다. “허비 행콕이 어떻게 저런 곡을 쓰며 어떻게 저런 연주를 하는지 너무 알고 싶었어요. 그러다 신문사 도서관에서 버클리음대 관련 책을 찾고 그래서 한상원, 김광민(재즈 피아니스트)이랑 ‘야, 우리 여기 가자’ 한 거죠.”
버클리음대에 가보니 전 세계 음악 천재들이 모인 ‘전쟁터’였다. “버클리에서 제일 좋았던 건 ‘전의’였어요. 그야말로 싸우고 싶은 의지,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죠. 왜냐하면 거긴 전 세계에서 모인 친구들이 다 있으니까요. 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내일 밤엔 마일스 데이비스가 연주하고, 모레엔 허비 행콕, 그다음엔 키스 재럿이 무대에 서는 곳이니까요. 그걸 보고 나면 연락도 안 해요. 그냥 다들 연습하러 가요. 그게 매일 반복되는 거예요. 그게 버클리고 전쟁터 같았죠.”
수업 과제도 만만치 않았다. 매주 곡을 하나씩 써서 발표해야 하는 작곡 클래스가 있었고, 앙상블 수업에서는 매주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 앞에서 합주 공연을 했다.

25일에는 정규 9집 ‘소풍’도 발표할 예정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서 영감을 받은 앨범명처럼, 삶의 마무리와 떠남(죽음)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담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조용히 기리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노래가 담겨 있다. 그중 ‘먼북소리’는 2024년 작고한 김민기를 위한 추모곡이다. 모든 곡의 작사·작곡·편곡·연주를 직접 맡았으며, 정재일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도왔다.
“9집은 시작이 2022년 이태원 참사였어요. 멀쩡히 거리 한복판에 있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분들을 생각하며, 제가 할 수 있는 건 음악으로 조용히 추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제가 영웅처럼 여겨온 뮤지션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어요. 칼라 블레이, 제프 벡, 버트 배커랙, 아마드 저말…. 존경하는 분들 한 분 한 분을 위한 곡을 쓰다 보니, 너무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아예 ‘추모’에 관한 곡들로 묶자 결심했죠.”

수십 년을 강단에 선 교육자로서 정원영은 국내 인디 음악계 대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CJ문화재단 ‘튠업’ 등 여러 음악인 지원 프로그램의 심사위원과 멘토로 활약하며 숱한 음악인을 키워왔다. 신인을 발굴하고 평가할 때 그는 기술적인 완성도보다는 음악에 ‘생명력’이 있는지를 본다. “지금은 미숙해도 음악 속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지닌 젊은 음악가는 흔치 않습니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늘 수 있지만, 그런 생명력을 갖고 출발하는 친구들은 정말 드물거든요. 요즘 친구들의 기교나 실력도 물론 뛰어납니다. 하지만 자기 음악만의 고유한 색과 생명력, 그리고 듣는 이에게 줄 메시지가 있는지를 저는 훨씬 더 중요하게 봅니다.”
짧은 영상 콘텐츠와 K팝 중심의 소비 흐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일 뿐, 우리가 그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도 생태계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옛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가르쳐야 하고, 기업이나 재단에서는 진정성 있게 음악하는 젊은 친구들을 계속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다양한 음악이 대중에게 어필하고,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1960년 서울 출생 ●보성고·버클리음악대학 ●1980년 ‘쉼’ 멤버로 데뷔 ●석기시대·사랑과 평화·위대한 탄생·슈퍼밴드·정원영한상원밴드·긱스·정원영밴드 ●서울예대·동덕여대·호원대 실용음악과 강사·교수 역임 ●유재하음악경연대회, CJ문화재단 ‘튠업’ 등 각종 음악경연·장학사업 심사위원 ●솔로앨범 ‘가버린 날들’(1993) 이후 ‘소풍’(2025)까지 9집 발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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