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72> 초피와 산초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2025. 10. 21. 18:1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리를 알싸하고 얼얼하게… 한·중·일이 사랑한 초피·산초

- 추어탕·시래깃국에 넣는 향신료
- 초피나무 열매껍질 갈아 만든 것
- 부산 등 남부지방선 산초라 불려

- 산초는 사실 비슷한 듯 다른 식물
- 잘 익은 열매의 기름을 짜서 활용

- 중국의 마라에 들어가는 화자오
- 다양한 日요리에 뿌리는 산쇼우
- 모두 비슷한 운향과 식물 향신료

우리나라 식재료 중에 알싸하고 얼얼하면서도 서양의 허브처럼 싱그럽고 향긋한 향신료가 있다. 초피(椒皮)와 산초(山椒)가 그들이다. 이들 모두 무환자나무목 운향과 초피나무속의 식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강렬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으면서 다양한 음식에 두루 활용되는 식재료이다.

둘 다 초피나무속으로 잎과 열매가 흡사하고 맛과 향 또한 비슷하면서도 모두 향신료로 쓰이기에 대체로 구분이 어렵다. 둘 다 잎과 열매로 장아찌와 술을 담그기도 하고 음식의 풍미를 한껏 돋우기도 한다. 그러나 엄연히 이 둘은 서로 다른 나무이면서도 그 쓰임새 또한 현격한 차이가 난다.

고등어로 끓인 부산의 바다 추어탕. 미꾸라지 대신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로 끓여내는 음식으로, 초피가루를 함께 넣어 먹는다.


▮강렬한 맛과 향

일반적으로 초피나무는 열매의 껍질을 갈아 그 분말을 향신료로 쓰는데, 그 맛과 향이 강렬하게 맵고 얼얼하다. 그래서 부산 경남을 비롯한 남부지방에서는 추어탕이나 매운탕에 비린내를 잡거나 시래깃국 등에 맛과 향을 풍성하게 하는 향신료로 쓰인다. 배추김치나 열무김치 등을 담글 때 함께 넣기도 하고 갓 담근 김치에 솔솔 뿌려 곁들여 먹기도 한다.

초피나무의 잎 또한 향이 아주 강하고 맛이 맵고 알싸하게 자극적이다. 이 초피나무 잎으로는 간장이나 고추장 등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삼겹살 등 육류에 올려 밥과 함께 생으로 채소 쌈을 싸 먹기도 한다.

산초나무. 줄기에 달린 가시가 서로 어긋나 초피나무와 차이가 있다.


산초나무는 주로 열매의 씨앗으로 약용과 식용으로 이용한다. 산초도 그 향과 맛이 알싸하고 풍미가 강하지만 초피보다는 상대적으로 은근하다. 풋열매로 장아찌나 술을 담그거나 다 익은 열매 씨앗으로 기름을 짜 다양한 요리에 활용한다. 주로 구이나 국물 요리에 사용해 알싸함과 향긋한 맛을 더한다.

경북 충청 강원 내륙지역에서는 이 산초기름으로 두부를 구워 먹기도 하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거나 육류 및 생선 등을 구울 때도 산초기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나 여러 가지 약리 작용이 있어 건강 기능 식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산초기름에 구운 ‘산초 두부’는 슴슴하고 담백한 두부 본래의 맛에 산초기름의 알싸한 맛과 향긋한 향을 더함으로써 부드러우면서도 싱그럽고, 알싸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가히 ‘두부 음식의 진미’로 손꼽히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제피 젠피 조피 등으로 불리는 초피나무는 남부지방에서, 분디 분지 등으로 불리는 산초나무는 중부지방에서 주로 분포·자생하는데, 초피는 여름에 열매를 수확해 분말로, 산초는 가을에 수확해 기름으로 정제해 이용한다.

같은 초피나무 과이면서 생김새도 비슷한 이들이라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데, 줄기에 달린 가시가 쌍으로 겹쳐서 난 것은 초피이고, 서로 어긋난 것은 산초라고 파악하면 그나마 수월하게 구분할 수가 있겠다.

▮매운맛 담당한 토종 향신료

시장에서 판매하는 햇초피. 부산에서는 초피를 산초라고 부른다.


부산에서는 초피가루를 추어탕뿐만 아니라 ‘바다 추어탕’에도 함께 넣어서 먹는다. 바다 추어탕은 미꾸라지 대신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로 끓여내는 음식인데, 부산에서 흔히 나던 고등어 붕장어 매가리 웅어 등을 추어탕식으로 끓이는 것이다. 이 ‘바다 추어탕’에도 필히 이 초피가루가 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고추가 전래되기 이전까지는 이 초피가 매운맛의 역할을 담당한 토종 향신료였다. 그래서 양질의 초피가 대량 생산되는 지리산 인근 지역에는 아직도 고춧가루를 빻을 때 이 초피 껍질을 함께 넣는다. 그러면 매운맛과 알싸한 향이 더욱 풍부해지고 조화로워진다.

제주에서는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고추 생산이 어려워 지금도 초피를 고추 대신 향신료로 쓰고 있다. 흔히들 먹는 물회 찌개 조림 등 일상 음식 전반에 걸쳐 이 초피를 활용하고 있고 잎과 열매로 장아찌도 담가 먹는 등 다양한 음식의 식재료로 널리 이용한다는 것이다.

산초는 대체로 초피보다는 그 쓰임새가 한정되는 느낌이 있다. 주로 풋열매로 장아찌나 술을 담그거나, 잘 익은 열매 씨앗으로 기름을 짜 음식에 곁들이는 정도이다. 그러나 산초기름은 그 향과 풍미가 은은하면서도 아주 깊고 오래 남기에 매력적인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산초기름은 약용으로도 널리 쓰이는데, 동의보감에서는 ‘효능은 따뜻하며 맛은 맵고 독이 있다. 이(齒)를 든든하게 하며 머리카락을 빠지지 않게 한다. 눈을 밝게 하고 냉(冷)으로 오는 복통과 이질을 낫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북 등지에서는 많은 농가가 산초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유통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재 산초기름 2홉 들이 한 병당 15만 원에서 20만 원 내외의 고가로 거래되고 있기에 그럴 만도 하겠다.

▮중국 일본 서양에서도 인기

화자오를 넣고 끓인 마라탕.


우리나라와 인접한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이 초피와 산초 등 운향과 식물을 다양한 음식에 적용해 즐기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사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얼얼하고 매운 마라(麻辣) 음식 중 얼얼한 맛을 내는 향신료가 그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화자오(花椒)이다. 이 화자오로 여러 국물 음식이나 볶음요리 등을 조리해 먹는다. 민간에서는 닭이나 육류를 삶아 먹을 때 화자오를 활용하고 조림 음식 등에도 널리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마라탕 훠궈 마파두부 등의 음식이 있다.

일본에서는 산쇼우(山椒)라고 부르는데, 이 산쇼우 가루를 다양한 음식에 곁들여 먹는다. 이때 산쇼우는 매콤하고 톡 쏘는 맛이 비린내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주로 야키도리 등의 꼬치구이, 일본식 전골 요리인 나베, 생선조림 요리인 니즈케 등이 있다. 오코노미야키와 야키소바에도 산쇼우를 뿌려 먹기도 하고, 튀김 요리인 덴푸라에도 산쇼우 가루를 살짝 뿌려 고소한 맛을 조화롭게 한다. 일본 사람들의 여름 보양식 우나기(장어)구이에도 살짝 뿌려 비린내를 잡고 풍미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더해 산쇼우를 넣은 맥주를 빚기도 한다. 샨쇼우가 맥주에 첨가되면 상큼한 맛과 싱그러운 향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한때 후추가 금과 맞바꿀 정도로 귀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시 후추 대신 초피가루를 대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커피에 초피가루를 타 커피의 풍미를 돋우고 풍부한 향을 즐기기도 한다.

부산과 경남 인근 지역에서는 초피가루를 흔히 산초가루로 부르는데, 그 이유는 동아시아, 특히 일본 요리에 널리 쓰이는 초피 종류의 ‘산쇼우’가 우리 ‘초피’와 서로 교류되고, 지리산 주변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초피를 일본에서 대량 구매해 가는 등 일련의 상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있겠다. 고추가 전래되기 전, 우리나라 유일의 매운 향신료였으며, 기분 좋은 향과 싱그러운 풍미로 입안을 즐겁게 해주던 초피와 산초. 제각각의 맛과 향으로 우리 음식의 풍성함을 돋워 주었던 향신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인접한 동아시아 사람들 도 이 둘의 맛에 의지한 바가 크다. 그들 또한 이들에게 음식의 전반에 맛의 깊이와 너비에 흡족해했다. 동아시아가 사랑했던 식재료, 초피와 산초. 개인적으로 이들이 관여하는 음식 종류의 지평이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