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산호세, 17마일 드라이브는 ‘해안의 찬송가’

경북도민일보 2025. 10. 21. 18: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기포 칼럼-미국 기행문⑩
세계적인 골프장 페블비치 골프링크스.
페블비치 골프링크스 모습.
페블비치 골프비치의 멋진 풍광.
페블비치 골프링크스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계적인 골프장인 페블비치 골프링크스 옆의 태평양 바다.
요세미티 폭포를 보고 걸어가는 관광객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웅장한 바위산.
요세미티 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웅장한 폭포앞에 관광객들이 발길을 멈췄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람객들.

<하나님이 쓰신 풍경의 시편 : 미서부 대자연 기행>

"여행은 풍경을 걷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여행은 이동이 아니라, 감각을 열어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을 느끼는 일이다.

버스 안에서 창문을 열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태양의 열기는 뺨에 닿는다.

미국의 고속도로에는 우리나라의 K 휴게소 같은 편리한 쉼터가 없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단연 세계 최고임을 깨닫는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길가에서 잠시 내린 주유소 기념품 가게, 그곳의 냄새, 먼지,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두가 여행의 한 조각이 된다.

여행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다. 버스 안에서 긴 도로를 달리며 지루함을 견디는 것도, 그 지루함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일부다.

잠시 멈춤이야말로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은총이다.

<캘리포니아 산호세, 17마일 드라이브 : 해안의 찬송가>

캘리포니아 산호세, 17마일 드라이브는 해안의 찬송가 그 자체다.

태평양은 해변이 아름다운 바다다. 푸른 바다 위에 은빛처럼 반짝이는 빛의 광채가 동화 속의 그림 같다. 해변 주변에는 키가 큰 해송들이 하늘을 찌르듯이 웅장하다. 천년을 견디어 온 소나무의 기상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페블비치와 17마일 드라이브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가장 우아한 선율이 흐르는 길이다. 해안선은 자로 그은 듯 곧지만, 시간은 이곳에서 천천히 흐르고 영혼은 이곳에서 더 깊어진다. 바다를 배경으로 잘 다듬어진 세계적인 골프장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 잔디가 아름답게 보인다. 이 골프장은 태평양 해안을 따라 펼쳐진 절경 속에서 바다와 절벽이 어우러진 장관을 자랑한다. 특히 7번홀(짧은 파3) 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로 불린다. 골프를 치지 않는 필자가 봐도 잔디를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바다를 배경으로 참으로 멋진 풍경이다.

"17마일의 풍경은,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감상하는 바다의 시편이다."

태평양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리고 그 푸른색의 바다는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주었다. 그 끝없는 푸름 바다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가 얼마나 미천한 존재로 살아왔는지. 태평양의 푸름은 잉크를 풀어 놓은 듯 깊고 끝이 없다. 해안선을 스치는 바람은 마치 성가대의 합창 같다. 멀리서 갈매기 울음이 공명을 만들어 자연의 코러스가 완성된다. 바닷바람은 차갑고도 시원하게 피부를 훑는다.

손으로 만진 바위는 오래된 하나님의 손길처럼 거칠고 단단하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소금기 섞인 향이 머리카락 끝까지 닿는다.

근처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바다 냄새와 섞여 더 깊고 더 진한 맛이 된다.

그 순간 느낀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태평양은 그 자체가 푸르디 푸른 시편이다.

해송들은 하늘을 찌르듯 크고 웅장하다. 천년을 견딘 소나무의 기상은"시편 92편"의 고백을 떠올리게 한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번성하리로다."(시편92편 12절)

"바다를 바라본다는 것은, 세계의 끝에서 시작을 응시하는 일이다." -파스칼

<요세미티 국립공원 : 생명의 성전>

요세미티는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그 자체가 거대한'생명체'이며, 하나님의 손으로 조성하신 자연의 거룩한 성전이다.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예배당, 지붕은 하늘이고, 제단은 폭포이며, 찬송가는 숲과 강이 부르는 합창이다. "산들은 그분의 평화로 옷 입었도다."(시편 65:12)

세콰이어의 거친 나무껍질을 손으로 쓰다듬으면 천년을 견딘 생명의 맥박이 느껴진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피로가 순식간에 풀린다.

송진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고 젖은 흙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한 모금 마신 계곡물은 어떤 생수보다 차갑고 달다.

하늘을 찌르는 세콰이어, 우아하게 늘어진 화이트 퍼 나무들이 오랜 세월의 연륜을 뽐내고 있다. 바위 위를 미끄러지는 은빛 폭포,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은 모든 것이 살아있는 듯 생명이 숨 쉬고 있었다.

폭포는 하얀 베일처럼 흘러내리고 햇살이 물보라에 부딪혀 무지개를 만든다.

폭포 소리는 천둥 같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미사곡처럼 맑다. 맑은 물은 골짜기를 흐르고, 그 골짜기는 또 다른 생명의 터전이 된다. 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모이는 이유를 알것 같다.

"자연이 너무 아름다우면, 감동은 합창이 되고 눈물은 시가 된다."

이곳에서는 쓰러진 나무도 치우지 않는다. 그 또한 쓰러진 고목도 자신의 일부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조차도 이곳에서는 생명의 순환 속에 편입된다. 웅장한 자연 앞에 인간은 침묵을 배운다. 그 침묵 속에서 영혼은 새로워진다.

쓰러진 고목조차 이 숲의 일부임을 깨닫는 순간, 죽음마저 생명의 일부라는 창조의 신비 앞에 서게 된다.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듣는다."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이곳에서는 단순히 자연과 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숨결을 느낄수 있었다."그 어떤 설교보다, 요세미티의 침묵은 더 설득력 있다."

숲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까지 경건한 울림이 된다.

요세미티를 빠져나오며 우리는 땅을 본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숨결을 따라 걸어왔음을 느낀다.

이 여행은 단순히 눈으로 본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신 풍경의 시편을 읽은 시간이었고 아가서의 한 구절처럼 나의 영혼을 깨웠다.

"일어나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땅에는 꽃이 피고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아가서 2:10-12)

버스를 타고 요세미티를 빠져나오는데 울창한 산림이 불탄 흔적도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 끝없이 펼쳐진 산림들이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버스가 달릴수록 요세미티 국립 공원은 멀어져 간다. 그 기상과 웅장함을 보는 것으로도 너무 뿌득하고 행복하다. 자연은 역시 인간에게 겸손과 침묵을 가르친다. 그래서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Copyright © 경북도민일보 | www.hidomin.com | 바른신문, 용기있는 지방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