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남편을 닮고 남편은 아내를 닮은

고정국 2025. 10. 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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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141) 사과농가 방문기

햇빛 별빛 불러 모아 한 점의 행복을 품다
대구 어느 모범농가 물어물어 찾아간 과원
한시도 소홀치 않았던 추수감이 놓인다. 

사과나무 잎사귀에 그 너비의 은총의 햇살
아내는 남편을 닮고 남편 또한 아내를 닮은
두 그루 사과나무가 마주 보고 웃는다

봉오리 그쯤에서 그 꽃을 헤아리고 
그 꽃 꽃술에서 씨방을 헤아리는 
그들은 사과 열매가 사랑이라 말한다 

가장 큰 슬픔이 죽음이라 일컬을 때
가장 큰 기쁨이 탄생이라 말하는 농부
오롯이 씨앗을 받는 게 땅의 기쁨이란다. 

떨어져야 움이 트는 그 많은 씨앗의 길
그 씨앗 껍질을 깨는 우렁찬 울음소리
그들은 그 울음소리를 생명이라 말했다.

/2005년 고정국 詩

#시작노트

한창나이 때 농업관련 월간지를 발간했습니다. 삶의 보람도 있었지만, 매달 농업관련 잡지 한 권씩 펴내는 일이 당초 생각과는 달리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주농업만이 아닌 전국 생산 현장이나 농산물시장 등 육지부 출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현장을 발로 뛰면서 농업관련 취재도 그랬지만, 그 활동 과정에서 체험에서 얻은 삶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중 대구 근처 사과생산 모범 농가를 방문취재하면서, 그 농가 내외와 과수원 농막에서 끓인 커피를 마시며 주고받았던 대화중에 메모장에 적어뒀던 몇 마디를 꺼내 작품화 했던 내용을 시조 형식으로 썼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의 대화 내용은 다분히 철학적이었고, 아내분의 표현은 다분히 문학적이어서 대화가 길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메모장에도 과수농사현장에서 얻은 사색의 깊이에 감동한 내용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과열매든 또는 방울방울 농부의 피땀이든 저들의 결과물은 결국 열매이면서 씨앗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농사현장에서 겪는 저들의 아픔이란 결국 씨앗들이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울음소리, 웃음소리이면서 그들은 사과 열매가 '사랑'의 결정체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작품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은 아내를 닮고 아내는 남편을 닮은/두 그루 사과나무가 마주보고 웃"는 모습이 정겹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후 아내와 함께 하귀 농협 하나로마트에 갔습니다. 전국 각처에서 몰려온 농산물들이 잘 정돈된 마트 진열장에서 서로 통성명이나 한 것처럼 다툼 없이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사과코너에 낯익은 열매 하나가 "기자아저씨 안녕하세요?"하며 나를 시인이라 하지 않고 '기자'라는 호칭을 쓰며 예를 갖추기도 했습니다. 그 곳 사과 한 봉지를 비닐봉지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막 돌아서려는데 옆 아파트 피뢰침 가까이 초승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 때는 하루 한 번 반드시 하늘을 보는 습관을 가지려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단시조 한 수를 썼던 것 같습니다.

물 한 방울 입에 물고
병아리가 올려다 본

예쁜 눈썹 달고 
노랗게 웃는 저 달

자꾸만 저를 찾아서
하늘 한 번
보란다.

-천자문 시조마라톤 「달 月」 전문(2013)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