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대미 외교 자화자찬의 부메랑

지금은 없어졌지만 바이든 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전략소통조정관’이란 직책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안보 현안이 폭증하던 시기, 전문성이 요구되는 복잡다단한 사안은 NSC 조정관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백악관 대변인은 국내 현안만 다루기에도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해군 제독 출신으로 국무부 대변인을 지냈고, 국방부 공보 경험도 있는 존 커비가 2년 반 넘게 맡았다. 퇴임 직전 외신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그가 세계 도처의 어떤 현안에도 거침없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관련 질문을 하면 “찾아보겠다”며 서류를 뒤적이는 지금 백악관 대변인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부 부처에서 대변인은 외로운 자리라고 한다. 하루 단위로 언론에 던져줄 제목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이들과 달리 일선 실무자들은 웬만하면 업무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상대가 있고, 기밀을 많이 다루는 외교·안보 부처에서 두드러진다. 대통령 대변인을 지낸 한 인사는 “얘기하기 싫다고, 이건 안 된다는 NSC 사람들을 붙잡고 매일 아침 끈질기게 취재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 반대 또한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안보실에 몸담았던 이들은 브리핑룸의 분위기가 대개 국내 정치에 매몰돼 있다 보니 어떤 외교 현안은 메시지가 정확하게 발신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한미 양국이 지난 7월 큰 틀의 무역 합의에 뜻을 같이했지만 3개월째 이를 명문화하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동맹의 내일이 불확실한 와중에 “합의문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는 대변인의 궤변, ‘합의가 됐는데 미국이 말을 바꾼 것’이라는 정책실장의 설명이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모든 것이 합의가 될 때까지 어떤 것도 합의된 건 없다’는 게 외교의 ABC인데 이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국가안보실장의 지난 16일 브리핑을 보면 트럼프 방한과 관련해 “변동 가능성이 있다” “소개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계속 한 발을 빼고 있다. 100% 확실하지 않은데 보증을 섰다가 엎어지면 그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이다. 답답해 보이지만 그것이 외교의 언어다.
우리 협상단이 7월 트럼프와 만난 직후 이뤄진 대사관 브리핑에서는 “지성이면 감천” “이재명 대통령을 빨리 만나고 싶어 한다”는 자화자찬이 쏟아졌다. 주무 장관은 라디오에 출연해 “현대차 회장이 감사하다 했다”고 말했으나, 25% 자동차 관세 폭탄은 3개월째 그대로다. 관세 협상이 진통을 거듭할수록 분위기에 고무돼 별생각 없이, 또는 대내용으로 한 말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이 정부에 아픈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대국이 존재하는 합의는 그게 우리에게 월등히 유리할지언정 ’51 대 49′ 정도로 설명하는 게 옳다. 온도를 낮추고 대중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지 않게 관리하면서, 더 전략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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