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유럽햄스터’를 구하라

김기범 기자 2025. 10. 20. 22: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키이우 동물원 번식 프로그램 책임자 루신, 전쟁 포화 속 방사·보호 ‘홀로 분투’
키이우 동물원 소속의 과학자 미하일 루신이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유럽햄스터를 바라보고 있다. 키이우동물원 누리집 갈무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공격에 노출됐던 2023년 2월, 미하일 루신(41)은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햄스터들의 안전까지 챙겨야 했다. 전기와 가스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동면 중이던 유럽햄스터들이 폐사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햄스터는 추위에는 강하지만 체온이 떨어질 경우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일본어판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 포유류인 유럽햄스터의 종 보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과학자 루신의 사연을 최근 소개했다. 키이우 동물원의 유럽햄스터 번식 프로그램 책임자인 루신은 전쟁 전인 2020년부터 이 동물을 번식시켜 우크라이나 남서부 오데사 근처 타루티나 초원 등에 방사해 왔다.

루신과 그의 동료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는 물론 요격된 러시아 드론의 파편이 동물원에 떨어지고 방문객이 급감해 반년 동안 동물원 수익이 없었던 상황에서도 방사 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유럽햄스터의 방사가 중단되면 머지않아 야생에서 이 설치류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루신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인터뷰에서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방사를) 하겠나”라며 “햄스터가 귀엽다는 것으로 (이유가) 충분하지 않나”라고 했다.

유럽햄스터는 일반적인 반려 햄스터와는 달리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야생에 남은 수가 수천마리에 불과하다. 멸종위기종 목록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는 ‘위급(CR, Critically Endangered)’ 등급으로 등재돼 있다. 과거에는 유럽 전역에 서식했으나 앞으로 30년 내 멸종될 가능성이 크다. 반려 햄스터보다 몸집은 3배 정도 크며, 성질이 사나워 개나 포식동물에 덤비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모피 목적의 포획 때문이다. 매년 수백만마리의 유럽햄스터가 희생당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유럽햄스터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 야생의 유럽햄스터 수를 복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루신은 “10마리를 방사해도 살아남는 것은 3마리 정도”라면서 이런 생존율로는 개체 수를 늘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럽햄스터의 서식지는 프랑스에서 94%, 독일·폴란드·우크라이나에서 74%가 상실된 상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내 서식지의 대부분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상태다. 유럽햄스터가 멸종하면 매나 여우, 족제비 등 포식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생태계 전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루신은 보호와 방사활동뿐 아니라 유럽햄스터 관련 인식 증진과 구조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루신은 “햄스터에 자원을 낭비한다면서 보호활동 예산을 군사용 드론에 투입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며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햄스터 보호활동 자원봉사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