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에 전선 지도 던진 트럼프 “러시아에 돈바스 지역 전체 넘겨라”
백악관 회담 내내 욕설 퍼붓기도
미사일 지원 예상하던 유럽 당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에게 러시아의 종전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파멸당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러시아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압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현지시간) 이 사안을 잘 아는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지난 17일 백악관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이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관리들은 회담 당시 여러 차례 고성이 들렸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내내 젤렌스키 대통령을 훈계하며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당신은 전쟁에서 지고 있다. 푸틴이 마음만 먹으면 당신을 파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 도중 “이 전선 지도, 이제 지겹다”며 우크라이나 전황 지도를 내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빨간 선은 뭐지? 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 요구대로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넘기라고 강요하며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했던 주장을 되풀이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도네츠크주를 완전하게 넘겨받는 대가로 자포리자와 헤르손 등 2개 주의 점령지 중 일부를 우크라이나에 되돌려주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돈바스 지역의 일부만 점령했으며, 전선은 2년 넘도록 사실상 교착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지역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주를 넘기면 러시아군은 키이우까지 직행할 진군로를 얻게 된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가자지구 휴전을 성사한 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모색하는 가운데 열렸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참모진은 토마호크 미사일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백악관을 찾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확답하지 않았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격렬했던 이날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의 요구에 최대한 응하려는 뜻을 보여줬다고 풀이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J D 밴스 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공개 비난한 지난 2월 백악관 회담과도 분위기가 비슷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자 종전을 위한 강력한 대러 압박을 기대해온 유럽 각국은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유럽 관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 후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유럽 지도자들은 낙관적이지 않지만 현실적인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이라고 FT에 말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협상에 정통한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나흘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토마호크 미사일 지원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양보 여부가 논의의 핵심이 됐다”고 전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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