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을 소리

일 년 네 계절 중 가장 청각적인 계절은 가을일 것이다. 봄의 새 소리, 여름의 소나기 소리, 겨울의 눈 밟는 소리 등도 인상적인 계절 소리지만 가을의 소리들처럼 다양하고 감각적이지는 못한 듯하다.
생존시기가 당(唐)이나 송(宋)으로 추정되는 시인 여임당(余林塘)은 가을의 소리를 채집하여 들려주었다.
가을 소리(秋聲)
黃葉颼颼風瑟瑟(황엽수수풍슬슬) 누런 잎은 솔솔솔, 바람은 슬겅슬겅
悲蟬咽咽雨淋淋(비선열열우림림) 슬픈 매미는 맴맴맴, 빗물은 줄줄줄
不知窓外梧桐上(부지창외오동상) 모를 일이네, 창밖의 오동나무에서
攪碎愁人幾寸心(교쇄수인기촌심) 시름 잠긴 이의 마음 몇 마디가 산산이 부숴졌는지를.
가을은 소리의 계절이다.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을은 유독 귀를 자극하는 자연의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소리는 다양하지만 느낌은 비슷하게 다가오는 것도 가을 소리의 특징이다. 제일 먼저 시인에게 포착된 가을 소리는 낙엽 떨어지는 소리이다. 시인은 느낌은 배제한 채 소리만을 글로 옮겨놓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여백효과를 유발하는 고도의 수법이다.
다음으로 시인의 귀에 들어온 바람소리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것은 다 빼고 소리만 옮겨놓았다. 매미 소리에는 살짝 시인의 감성을 실었는데 매미를 슬프다고 형용한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물론 시의 자구 규칙에 따른 것이라서 형용어는 상투적이기 쉽다. 앞의 낙엽도 누런 잎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비도 형용어 없이 그 소리만 들려준다. 앞의 바람소리와 같은 맥락이다. 누렇다 슬프다 이런 형용어들은 시인의 감정선을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상투적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왜냐하면 시인은 이 시에서 여백의 효과를 내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낙엽 지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매미 우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를 차례로 들려줌으로써 독자들의 가을 감성을 자극한다. 이 소리들을 듣고 쓸쓸하고 외롭다는 가을 정서를 느끼지 못하는 독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을의 온갖 소리를 배경음으로 분위기를 만든 시인은 자신의 속마음을 그 분위기에 얹어놓는다. 시인은 방 안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가을을 주변 소리로 맞았던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오동나무에서 잎이 지는 소리를 듣고는 근심 젖은 마음이 그 나무 가지에서 얼마나 많은 마디가 부수어졌는지 아느냐고 독자들에게 묻는 것으로 시를 맺고 있다.
가을은 사람을 차분하고 겸손하게 만들어준다. 영고성쇠(榮枯盛衰)라는 평범한 자연의 섭리를 감각적으로 체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그껴지는 가을 풍광들에 다채로운 가을 소리가 청각적으로 어우러지면, 사람들은 가을 정취에 푹 빠지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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