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NOW 구독중] 유튜버는 지속가능한 직업일까?… 10년째 일상으로 증명한 ‘공대생’

2025. 10. 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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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실험, 영상으로 번역
남고딩 → 공대생 → 대생이로
삶 바뀔 때마다 채널명 바꿔
댓글 이벤트 현재 100만 돌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메타인지
흐름을 만들 수 없다면 타야“
충정로에 위치한 디지털타임스 사옥의 유튜브 스튜디오에서 광운대 OTT미디어 전공 이희대(왼쪽) 교수와 유튜브 대생이 채널의 변승주 크리에이터가 ‘희대의 NOW 구독중’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박동욱 기자 fufus@dt.co.kr

유튜브 ‘대생이’ 변승주


1인 미디어 전성시대, 숱한 채널들 사이에서 보석 같은 채널을 찾아 참 구독을 추천드리는 유튜브 ‘서평’ 시리즈 ‘희대의 NOW 구독중’.

2010년대 중반, “유튜브가 직업이 될 수 있나?”라는 물음 속에서 한 공대생이 카메라를 켰다. 오늘 우리가 만날 인물은, 이미 10년 전부터 유튜브 생태계에서 ‘이과 감성’의 절정을 보여주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채널의 주인공. ‘공대생 변승주’라는 이름으로, 피지컬과 두뇌, 유쾌함과 기획력을 모두 갖춘 영상 실험가였던 그는, 이제 ‘대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튜브에 돌아왔다.

가족과 친구, 연인과의 출연으로 시작한 초기의 실험, 관계의 감도를 조율하며 콘텐츠를 세공해온 지난 10년, 플랫폼의 변화와 개인의 리듬을 함께 감당하며 유지해온 채널 운영의 내공까지.

다양한 실험을 영상으로 번역해 내던 공대생 시절의 상상력과 ‘대생이 쇼츠’에서 보여준 밀도 높은 연출력은, 어쩌면 이 시대에 크리에이터가 갖추어야 할 지성과 감성의 총합이 아니었을까.

대생이 채널의 쇼츠 콘텐츠에서 인기 조회수를 살펴보면 말 그대로 ‘억’ 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억 단위, 천만 단위 조회수를 기록한 콘텐츠가 많아 수익도 높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숏폼 콘텐츠의 경우 조회당 수익이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숏폼 콘텐츠는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착각이라며 인기 있는 쇼츠들은 롱폼 콘텐츠만큼이나 제작에 공이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다만, 숏폼이 트렌드이기 때문에 10분짜리 롱폼 콘텐츠를 제작할 때 1분짜리 숏폼 10개를 만들어서 붙인다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전헸다. [ ‘대생이’ 유튜브 갈무리]



‘공대생’으로 시작해 ‘대생이’로 이름을 다듬기까지, 그는 단지 떠오른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카메라 앞과 뒤의 시간을 함께 살아낸 지속 가능한 크리에이터로 자리 잡았다. 유튜브 랭킹분석 사이트 소셜 블레이드에 따르면 2025년 현재 ‘대생이’는 국내 예능형 크리에이터 채널 중 구독자 수 기준 Top 5급 규모, 특히 1인 채널로는 최상위권에 속하는 보기 드문 채널이다.

한때 복귀를 기다린 팬도, 새롭게 채널을 발견한 이들도 많을 테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단지 ‘돌아온 유튜버’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새로운 시대의 직업인으로 살고 있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인플루언서로 살아가며 이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사람, 그리고 유튜브 1세대에서 1.5세대를 거쳐, 지금의 2025년을 살아가는 한 생활인, 사회인으로서의 전환기에 있는 크리에이터, 변승주를 만나보고자 한다.

변승주 크리에이터


오래 주목받은 사람의 체력과 리듬, 창작자와 생활인 사이의 균형, 그리고 새로운 도약을 향한 실험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대생이의 시간”이 어떤 영감이 될 수 있을지를 함께 묻는다.

이번 인터뷰는 그 모든 시간의 정점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매우 평범하고도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고자 한다. 동시에 우리는 변승주와 함께, 이 생태계의 새로운 공식 하나를 증명해보려 한다. 유튜버도 ‘직업’이다. 그리고, 이 직업은 지속 가능한가.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군 생활 덕이라고 소개했지만 젖살이 통통했던 공대생 채널 시절에 익숙해 있던 구독자에겐 낯이 설 정도로 늘씬한 모습과 더불어 성숙함이 느껴졌다. 채널 초창기부터 시청해온 애독자에게 채널 속 페르소나의 성장은 마치 가족이나 지인의 변화처럼 실재적으로 느껴진다는 ‘준사회적 상호작용’의 이론을 거듭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어딘가 달라진 듯한 오랜 페르소나에게 준비했던 질문들을 건넸다.

2014년, 한국에서 “유튜브는 직업이 될 수 없다”던 시절. 변승주는 가수가 되고 싶어 서울로 올라와 서강대 공대에 입학했지만, 더 큰 흥미는 유튜브였다. 당시 국내에선 유튜버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으나, 그의 손길로 올린 짧은 영상들은 곧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엔 남고딩의 일상이었고, 공대생이 됐고, 지금은 대생이가 됐죠. 삶이 바뀔 때마다 채널 이름도 바뀌는 것 같아요.”

결정적 계기는 ‘대도서관’의 기사였다. 인기 게임 유튜버 대도서관이 월 5000만원을 번다는 보도는 부모님이 아들의 선택을 직업으로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당시를 겪어본 창작자만이 전할 수 있는 전환점이었다.

공대생이라는 채널의 이름을 있게 한 서강대 자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퇴로를 끊는 선택이었죠. 이제는 이 길로 평생 살아야겠다, 더 간절해지고 치열해졌습니다.” 그러나 치열함과 열정은 번 아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무한 경쟁의 루프와 슬럼프는 누구도 비껴가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다 멈춤의 시간을 맞았다. “군대가 제겐 힐링이었어요. 도파민 디톡스랄까요. 스마트폰과 떨어져 있으니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군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게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고딩의 일상’으로 시작해서 ‘공대생’, 현재 ‘대생이’ 채널에 이르기까지 10년여의 20대를 온전히 유튜브와 함께 보낸 변승주 크리에이터의 삶은 그의 채널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퇴로를 없애고 전업 유튜버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을 자퇴했을 때도, 입대도, 제대도 그의 일상은 모두 콘텐츠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못할 일이다. 그 자신도 이 일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며 덕분에 애독자들도 그의 콘텐츠를 계속 시청할 수 있으니 덩달아 좋은 일이다. [‘대생이’ 유튜브 갈무리]


군대 전역을 앞두고는 뜻밖의 순간도 있었다. 휴가 중 햄버거 가게에서 뜻밖의 만남도 있었다. “입대 전에 게임 영상들을 올렸었는데, 휴가 중 햄버거집에서 알바생이 ‘게임은 잘 모르지만 오빠 영상이라 다 봤다’며 인사를 해줬어요. 콜라도 하나 주더라고요. 그 순간 단전에서부터 감동이 올라왔습니다.” 축복의 또 다른 증거는 댓글이었다. 2017년 올린 ‘댓글로 탑을 쌓자’ 이벤트 영상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찾아와 댓글을 남긴다. 2025년 현재 댓글은 100만개를 넘었다. 팬덤의 숫자가 아니라, 꾸준히 이어지는 교감이 그를 지탱해온 셈이다.

구독자 345만명, 누적 조회수 20억. 하지만 그는 유튜버를 스타가 아닌 “외주 프로듀서”에 비유했다.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마케팅까지 다 하니까요. PD 역할을 다 혼자 합니다. 저는 제 채널의 출연자이자 외주 프로듀서예요. 그게 제 직업입니다.”

그는 루틴을 지키려 애쓴다. “군대에서 배운 생활 패턴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고, 밤에는 일정 시간 전에 자려고 노력합니다. 이젠 조회수보다 수면시간이 더 중요해요.”

10년의 창작 경험을 정리하며 그는 ‘메타인지’라는 단어를 꺼냈다. “흐름을 만들 수 없다면 흐름을 타야 한다. 제 위치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동료들이 번 아웃을 호소할 때, 그는 담담히 말했다. “결국 산책, 운동, 책 읽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군대 가기 전, 그가 올린 쇼츠는 억 단위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쇼츠의 냉정한 현실도 알렸다. “실감으로는 조회수당 0.02원 수준이에요. 1000만 뷰가 터져도 수익은 20만원 정도입니다.”

숏폼과 롱폼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10분짜리 롱폼을 만들 때, 쇼츠 10개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1분마다 말뚝을 세우는 거죠.”

‘대생이’ 채널의 재생목록을 보면 다양한 실험, 챌린지 영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나오는지 물었더니 그는 의외의 겸손한 답변을 건넸다. 자신은 흐름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흐름에 올라타는 전략이 창작의 노하우라며, 변화하는 트렌드를 잘 읽고 실행하는 ‘메타인지’‘가 창작활동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능력이라고 전했다. [‘’대생이 유튜브 갈무리]


숏폼 콘텐츠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에 한 번은 ‘쇼츠는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착각으로 먹방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짧은 영상 하나에도 2~3일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짧든 길든 콘텐츠는 정성과 디테일이 중요하고, 시청자들은 그걸 알아봅니다.” 이는 창작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는 고백이었다.

그는 콘텐츠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에도 관심이 깊다. “태국 크리에이터 ‘큐태 오빠’와 함께 한국과 태국의 문화를 교차로 소개하는 영상을 준비했는데, 코로나로 중단됐습니다. 단순한 여행 콘텐츠가 아니라, 한국의 유명 유튜버와 해외 크리에이터가 각자의 시선으로 문화를 해석하는 협업이었어요. 지금도 그 기획이 가장 아쉽습니다.” 그 경험은 오히려 새로운 욕망을 남겼다. “미스터비스트처럼 10억, 100억 규모의 프로젝트는 어렵겠지만, 한국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대형 콘텐츠를 꼭 해보고 싶어요.”

유튜브 1세대로 출발해 이제 30대 초입에 선 이 창작자는 인터뷰 내내 콘텐츠 얘기 뿐이었다. 얼마 전 촬영했던 72시간 게임 실험 영상에서 그는 환청을 들을 정도로 힘들었다면서도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지만, 또 이런 걸 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동시에 이런 이야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건 고통스럽지만 행복합니다.”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변승주의 이야기는 유명 유튜버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는 단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직업이 유튜버였을 뿐, 결국 그는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의 일상과 고백 속에는 오늘을 버텨내는 수많은 젊은 세대의 마음이 겹쳐져 있다.

“쉬는 날엔 진짜 아무것도 안 해야 해요. 공허함이 끝까지 가라앉을 때까지 버텨야 다음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창작 노하우가 아니다. 빠르게 소모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받는 시대 속에서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감각을 회복하려는 세대의 언어다. 화려함보다 성실함, 속도보다 지속을 택하는 그의 태도는 결국 우리 모두의 내일을 닮아 있다. 그의 오늘은 유튜버의 기록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의 자화상이다.

‘대생이’ 채널의 재생목록을 보면 다양한 실험, 챌린지 영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나오는지 물었더니 그는 의외의 겸손한 답변을 건넸다. 자신은 흐름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흐름에 올라타는 전략이 창작의 노하우라며, 변화하는 트렌드를 잘 읽고 실행하는 ‘메타인지’가 창작활동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능력이라고 전했다.


숫자는 크리에이터의 존재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식이다. 그러나 대생이의 시간은 숫자보다 훨씬 더 깊고, 무거우며, 유연했다. 실험실 대신 유튜브를 택한 공대생, 지금 대생이 채널에서 실험은 줄었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도전과 공식 찾기의 연속이다. 편집점을 고민하던 새벽, 조회수가 흔들릴 때의 불안함, ‘내가 아직도 통할까’라는 의심까지. 그의 유튜브는 항상 실험이자 고백이었다.

10년 동안, 그는 기획과 실험, 공백과 복귀, 책임과 재미 사이를 오가며 ‘한 번 뜨는 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운영’의 감각을 다듬어왔다. 때로는 멈췄고, 때로는 되돌렸고, 그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낸 ‘대생이’라는 이름. 카메라 앞에서 웃고, 뒤에서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

혼자서 시작했지만 함께 일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팀의 리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고민하는 한 사회인 크리에이터.

구독자 345만 명, 누적 조회수 20억. 명실공히 유명 유튜버라 할 만하다. 그런데 변승주 크리에이터는 자신을 외주 프로듀서에 비유했다.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마케팅까지 모두 혼자 하는 PD, 자기 채널의 출연자이자 외주 프로듀서고 그것이 자신의 직업이라 소개했다. 그는 단지 직업이 유튜버일 뿐,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 중 한 사람이고 또래들도 다들 그렇게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튜버로 산다는 것은 매일 카메라 앞에서 ‘나’라는 가설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대생이 변승주님과 못 담은 이야기는 곧 공개될 ‘희대의 NOW 구독중’ 유튜브에서 살펴보시기 바라며 여전히 실험 중이지만,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와의 만남은 한 줄 서평으로 대신한다.

1인 미디어 전성시대, 숱한 채널 들 사이에서 보석 같은 채널, 보석 같은 콘텐츠와 인물까지 찾아 참 구독을 추천 드리는 ‘희대의 NOW 구독중’ 한 줄 서평.

“대생이의 유튜브는 여전히 실험이고, 그 자체로 증명이다.”

1인 미디어 생태계 곳곳을 누비는 ‘희대의 NOW 구독중’. 다음은 또 어떤 채널, 어떤 인물들과 만날지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이희대 광운대 OTT미디어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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