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살인 부추기는 것" 날 세운 의사…'만삭 낙태' 추진에 '우려'

정심교 기자 2025. 10. 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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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가 만삭이어도 낙태(임신중절)를 원하면 허용하고, 건강보험까지 적용하겠다는 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선 "임신 6주차에 이미 태아의 심장이 뛰는데, 만삭 낙태를 허용한다는 건 국가가 공식적으로 살인을 허용한다는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20일 홍순철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학에선 임신 22주차(4개월 미만)에 태어난 미숙아도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하는데, 원하지 않으면 만삭인 태아까지 죽일 수 있다는 정부의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 당황스럽다"고 비판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의 현행법과 개정안 일부를 비교한 표. 낙태 제한 시기를 없애고, 임신중절을 '임신중지'로 표현했다. /자료=의안정보시스템

앞서 지난 7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낙태를 제한한 기존의 법 조항이 삭제된다. 기존의 모자보건법 제2조 제7호에선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한해 낙태를 허용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엔 낙태 허용 시기가 사라졌다. 사실상 '만삭 낙태'도 가능케 한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안도 개정안에 담겼다. 홍순철 교수는 "태아는 6주만 돼도 심장이 뛰고, 10주만 돼도 팔다리가 다 있고, 12주가 되면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운동도 하고 소화도 시킨다"며 "이런 태아에 대해 국가가 살인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현행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낙태는 임신 14주까지만 허용된다. 임신 중기인 15∼24주엔 성범죄로 인한 임신, 임신부의 건강 위험 등 특정 사유가 있을 때만 낙태가 가능하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임신 10주가 지난 시점의 낙태는 임신부에게도 매우 위험하다며 권고하지 않는다. 홍 교수는 "최근 34주차에 낙태를 시도한 의사에게 적용된 죄명도 '낙태죄'가 아닌 '영아살해죄'였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이재명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임신중절(낙태)'란 용어를 '임신중지'로 바꾸고,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추진한다.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인데, 낙태를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에 맡기고 존중하겠단 의미로 풀이된다. 개정안에서도 "약물·수술 등으로 (태아를) 배출시키는 수술"에서 "배출시켜 임신을 중지하는 행위"로 낙태의 의미를 수정했다.

하지만 '임신중지'란 새 용어에 대해 홍순철 교수는 "매우 부적절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는 "의학적으로 '임신중지'란 용어 자체가 없다. 임신부의 심적 부담감을 줄이려 시도한 것 같지만, 이런 부드러운 정치적 표현이 자칫 '약물 낙태'를 피임의 연장선으로 쉽게 여기게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만약 피임에 실패해도 약만 먹으면 쉽게 낙태할 수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만연해질 수 있단 경고다.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려는 '임신중지'(임신중절의 새 용어) 약물 도입 방안. /자료='이재명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정부가 낙태 약물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는 반기를 들었다. 그는 "만삭 태아를 약물로 죽이는 건 '살인'이며 낙태 약물 도입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살인을 허용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을 발의한 남인순 의원은 "임신중지 의약품(낙태 약물)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안전성과 효과성을 인정받아 세계보건기구(WHO)가 2005년 필수의약품 목록에 올렸다"며 "2024년 기준 전 세계 100개 국가에서 이미 사용 중"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2024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에 △낙태 약물과 수술, 낙태 수술 후 의료서비스 등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 △낙태 약물을 도입하고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할 것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홍순철 교수는 "해당 문구는 낙태 약물 중 어떤 성분의 어떤 약인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낙태 약물을 투여한 여성에게서 과다 출혈, 자궁 외 임신 파열, 자궁 파열, 감염, 패혈증이 유발되거나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꽤 많다"며 "낙태 약물의 도입은 많은 여성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신체 자기 결정권을 이유로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후속 입법 조치 및 법적 개정은 진행되지 않아 낙태 약물의 거래·유통은 현재 '불법'이다.

하지만 이재명정부가 낙태 약물 도입을 국정과제에 담으면서 식약처도 이에 대응할 태세다. 지난달 22일 남인순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답변에 따르면, 식약처는 낙태 약물(임신중절 의약품)에 대해 "현재 약사법령에 따른 방대한 허가 요건자료에 대한 심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면서 "추후 관련법이 개정되고 신청인(제약업체)이 이에 맞춰 관련 자료(효능·효과, 위해성 관리계획 등)를 제출하면 신속히 심사를 속개해 허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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