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네팔 이어 유럽·아프리카서도 ‘원피스’ 깃발···애니는 어떻게 저항의 상징이 됐나 [사이월드]

일본 만화 <원피스>가 올해 인도네시아, 네팔,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을 넘어 유럽 프랑스, 남미 페루, 최근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시위에서도 등장해 각지 시민의 눈길을 끌었다. 시위 계기는 다르지만, 각지 시위 참여자들은 만화 속 ‘밀짚모자 해적단 깃발’(해적기)을 공통으로 내걸었다.
<원피스>는 주인공 루피를 중심으로 모인 해적단이 억압적인 ‘세계정부’에 맞서 싸우며 자유로운 바다를 찾아 나아가는 내용으로, 해적기는 이들 해적단의 상징이다. 밀짚모자를 쓴 해골이 X자 뼈로 장식돼 있다.
올해 해적기가 첫 주목된 것은 7월 인도네시아 시위 현장에서였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독립기념일(8월17일)을 앞두고 국기 게양을 강요하자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한 반발이 일었다. 국회의원 상대 고액 급여, 주택 수당이 시민 분노를 키웠다. 이후 네팔에서는 정부의 부패, 기득권층 자녀인 이른바 ‘네포 키즈’로 상징되는 세습에 분노한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는 SNS 금지 조치로 맞섰다가 되레 시위 규모를 키웠다. 프랑스, 마다가스카르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도 해적기가 등장했다.

스티비 수안 호세이대 조교수는 “주인공들이 불공정한 시스템에 도전한다는 내용이 부패한 정부와 싸우려는 시위의 구도와 이어진다”고 19일 아사히신문에 분석했다. 해적기가 상징하는 메시지가 최근 시위 계기와 주제상 맞닿아 있다는 취지다.
<원피스>가 전 세계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문화 코드’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원피스 발행 부수는 누적 5억1000만부에 달하며, 해외 발행부수가 그 중 1억부 이상을 차지한다. 넷플릭스 등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방영된 애니메이션도 인기가 많다.
마다가스카르 시위에 참여한 26세 청년 카이는 “Z세대 대다수처럼 나도 <원피스>를 보며 자랐다”며 “이 깃발(해적기)은 우리 세대의 상징”이라고 AFP에 말했다. 네팔 카트만두포스트 관계자는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 시위에 이 깃발(해적기)이 게양된 데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해적기가 SNS에 게시될 경우 시위 장면을 ‘밈’처럼 만들어 전파성이 크다는 특징도 거론된다. 또 현실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상징보다 추상적·은유적인 덕에 검열은 물론 정치적 반대 세력의 편파성 지적을 피하기에도 용이하다는 평가가 있다. 프랑스 남부 리옹에서 루피 깃발을 들었던 45세 교사 쥘리앙 뒤봉은 “내 뒤에 보이는 노조 깃발보다 (해적기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AFP에 말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은유를 이용한 저항은 최근 일이 아니다. 일본의 또 다른 대표 만화인 <진격의 거인>은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상징처럼 쓰인 바 있다. 2013년 7월1일 ‘홍콩 반환일’에는 만화 속 거인 형상을 따 온 조립물이 수만명 시위대와 함께 행진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홍콩 시민을 성벽 안 사람들에, 중국을 침략자 거인에 비유한 것이었다. 이후 중국 정부는 2015년 폭력성을 이유로 <진격의 거인> 등 일본 애니메이션 상영을 중지했다.
2011년 칠레 학생 주도 시위에서는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속 기술 ‘원기옥’이 등장해 시위 참여자들을 독려했다. 원기옥은 만화 주인공 손오공이 인류 개개인이 손을 들어 제공한 에너지를 응집해 강한 폭발력을 지닌 구체로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당시 시위 현장에는 플라스틱 시트로 만들어진 흰색 구체가 등장해 시위 참여자들 손 위로 굴러다니며 힘을 모으는 듯한 퍼포먼스가 이뤄졌다고 논문 <집단적 에너지의 무기화>는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분석기사 ‘활동가들과 애니메이션’에서 각지의 해적기 시위대와 관련해 “그들은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로 연결돼 있으며, 대중 서사와 반체제 정치를 결합해 이미 최소 두 개의 정부를 무너뜨렸다”며 “그 힘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라킵 하미드 나익 조직증오연구센터 대표는 “우리는 디지털·팝·게임 문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공통 언어’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조직화의 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장동혁 “결의문 107명 진심만 봐달라, 내부 갈등 끝내야”…후속 조치 사실상 거절
- 이란, 호르무즈에 기뢰 부설 시작했나…트럼프 “기뢰부설함 10척 완파, 설치했다면 즉각 제거하
- 침대 밖은 위험해!···10명 중 6명은 “수면 외 목적으로도 활용”
- 흡연하면 척추 디스크에도 안 좋다고?···일반 담배든 전자담배든 모두 발병 위험
- [단독]‘성추행 의혹’ 장경태 “고소인 거짓말탐지 해달라”…수사심의위 요청
- 이 대통령, 리더십 분석해보니···‘일 잘알’ ‘행정가형’ 돋보이지만 '1인 집중' 리스크 우려
- 성수동 ‘핫플’에 화장실 자발적으로 개방한 건물주들···성동구 “휴지 지원”
- 김동연, 경기지사 연임 출사표···민주당 경선 후보 등록, 12일 안양역서 출마 선언
- “끝났다” “이제 시작”···실시간 바뀌는 전쟁 목표에 트럼프 행정부 ‘자아분열’ 심화
- 고흥 굴 양식장 ‘착취 의혹’에···“브로커·고용주가 이주노동자 강제출국 시키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