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 바다 위에 펼쳐진 순례의 시간 [앵+글로 본 남도세상]

# 3년간 7번, 섬을 걷고 또 걸었다.


# 맨드라미 꽃으로 피어나다.
2020.1월 첫 방문할 때만 해도 병풍도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방치된 논밭, 염전, 빈집들이 보였다. 하지만 신안군의 '사계절 꽃피는 1004섬' 프로젝트는 이 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군과 주민들이 직접 나서 맨드라미를 심기 시작했다.


# 물때를 기다리며
세 번째 방문이었던가. 노둣길을 건너기 위해 물때표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밀물 전후 3시간은 길이 완전히 잠긴다. 썰물 때만 드러나는 이 '바다 위의 징검다리'는 과거 섬사람들의 생명줄이었다. 대기점도 주민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식수를 구하기 위해 걸었던 길.




# 12개의 작은 성당,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 소악도로 이어지는 12km의 순례길. 12사도의 이름을 가진 작은 예배당들이 길 위에 놓여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건강의 집', '그리움의 집', '사랑의 집'등의 이름으로 종교를 넘어 모든 이에게 열린 쉼터다.
대기점도에 있는 1번째 베드로(건강의 집)와 딴섬에 있는 12번째 가롯유다(지혜의집)에는 순례의 시작과 끝을 위해 울리는 마음의 종이 있으니 꼭 쳐보기를 권한다.
일곱 번째 방문에서야 나는 이 길의 의미를 조금 이해하게 됐다. 순례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각각의 예배당 앞에서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냥 앉아 있었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그리고 침묵. 사진작가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순례자로서 그 시간들이 필요했다.
# 빨간 지붕 아래 담긴 이야기
풍도의 빨간 지붕 마을은 내 작업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맨드라미 꽃밭 사이로 보이는 붉은 지붕들, 그 너머 병풍바위, 그리고 노둣길로 이어지는 섬들. 3년간 계절을 달리하며 같은 구도를 수십 번 담았지만, 빛과 꽃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매번 달랐다.
이 섬은 더 이상 고립된 그곳이 아니다. 섬의 약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특별한 역사 위에, 신앙과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순례자의 섬'으로 다시 태어났다.
# 다시 또 가고 싶은 섬
송도 또는 송공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물때를 확인하고, 3~4시간 순례길을 걷는 일.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8번째 방문을 벌써 계획하고 있다.
병풍도는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섬이다. 렌즈 너머가 아니라 두 발로 걷고, 바람을 맞고, 노둣길의 돌을 밟아봐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곳. 스페인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이미 '섬 티아고'가 있다.
*병풍도 가는 길: 신안군 지도읍 송도항 또는 압해도 송공항에서 여객선 이용(약 25분). 순례길을 걷기 전 반드시 물때 확인 필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