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원이 대신 내준 의료사고 배상금…의사들 13년간 43억 원 안 갚아

김표향 2025. 10. 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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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배상금 대불 64억8,449만 원
43억 원은 의료기관 폐업으로 회수 불가
게티이미지뱅크

'의료분쟁 손해배상금 대불제도'에 따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기금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대신 지불한 손해배상금 65억 원 가운데 의료기관 폐업, 파산 등으로 사실상 환수가 불가능한 금액이 무려 4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산을 은닉하고 고의로 폐업하면 구상권을 집행하기 어려워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20일 의료분쟁중재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의료분쟁중재원이 설립된 이후 13년간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대신해 환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사례는 120건, 총지급액은 64억8,449만 원에 달한다.

의료분쟁중재원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배상 의무가 있는 의료기관의 배상 거부나 무능력 등으로 배상을 받지 못할 때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우선 지급하고 추후 가해자에게 구상하는 의료분쟁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배상 의무자인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서 구상금을 받아낸 사례는 13년간 고작 9건, 액수는 1억6,578만 원에 불과했다. 금액 기준으로 환수율은 2.6%에 그친다.

미환수금 중 20억2,937만 원(68건)은 분할 상환 중이다. 그러나 나머지 42억8,934만 원은 의료기관 폐업(23건), 파산(11건), 회생(4건), 법인 해산(3건), 의료인 사망(2건)으로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에는 폐업 후 다른 의료기관에 재취업해 경제적 상황이 나아졌는데도 상환하지 않는 사례도 다수 있었다. 의사 A씨는 추간판제거수술 중 경련 및 호흡 정지 사건으로 환자에게 1억1,327만 원을 배상해야 했지만 폐업을 이유로 배상 의무를 회피했고, 지난해 11월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한 이후로도 의료분쟁중재원이 대신 낸 돈을 갚지 않고 있다.

의사 B씨도 충수돌기염 수술 중 과실로 환자에게 물어줘야 할 350만 원을 의료분쟁중재원이 대신 지급했으나 올해 2월 재취업하고도 상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곤궁해 상환 능력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배상금을 내지 않으려 재산을 은닉한 뒤 고의로 폐업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이 해산하는 경우에도 구상권 청구 대상이 사라지는 셈이라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고 한다.

구상금 징수는 민사 채권과 동일한 절차대로 진행된다. 의료분쟁중재원은 2020년부터 법무법인과 용역 계약을 맺어 전문적 법률 지원을 받고 있지만, 대불금 상환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법원에 지급 명령을 신청해 강제집행에 나선다고 해도 채무자인 의료인이 파산, 회생 절차를 밟고 있으면 현실적으로 돈을 받아내기가 어렵다. 또 채권자가 많은 경우에는 변제 우선 순위에서 밀리거나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크게 줄어든다.

또 다른 문제는 구상금 회수가 안 돼 대불비용 적립금이 고갈되면 피해자들이 구제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적립금은 의료기관 개설자들이 내는 돈으로 조성하는데, 적립 목표액의 10분의 1 이하로 소진되는 경우에는 추가로 걷는다. 국고가 투입되지는 않지만, 다른 의료기관들이 부담을 떠안게 된다.

김선민 의원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신속하게 배상을 받기 위한 제도가 일부 의료기관들이 배상 책임을 회피하는 데 악용되지 않도록 의료분쟁중재원과 보건복지부가 강제조치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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