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다르다… 반도체, AI發 수퍼사이클 진입했다"
단기적 현상 그치지 않을 듯
투자 사이클·제품 믹스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흐름
공급 부족·교체 수요 겹치며
HBM 중심 수요, DRAM 확산

최근 글로벌 반도체 업종이 전반적으로 호황에 진입하는 모습이다. 주가 흐름뿐 아니라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도 빠르게 상향되고 있으며, 특히 메모리 반도체 업종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인공지능(AI)에서 촉발되는 수요의 급격한 성장이 큰 요인이지만 최근 국면은 수요와 공급, 투자 사이클, 제품 믹스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흐름에 가깝다.
AI 수요가 강력한 것은 사실이다. AI 서버는 일반 서버에 비해 메모리를 4~5배 이상 더 많이 사용한다. 초거대 언어 모델을 학습하고 추론하는 과정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메모리 반도체는 AI 인프라스트럭처 확장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단순히 새로운 수요처가 등장했기 때문에 생긴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 2016~2019년 전 세계적으로 클라우드,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기조가 확산되면서 데이터센터와 서버, 네트워크 설비에 대규모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구축됐던 서버 등 인프라의 수명이 통상 5~8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그 설비를 교체 및 업그레이드하는 수요가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시기다. 구형 메모리가 고대역폭, 대용량 제품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추가 수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급 기조에도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2022~2023년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 둔화 국면에서 반도체 업체들은 설비 투자와 캐파 증설을 최소화했다.
특히 HBM과 달리 범용 메모리는 AI 수요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그 결과 현재 범용 반도체 부문은 수요 회복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인 공급 제약 상황에 놓여 있다. 이 공급 부족이 메모리 가격 상승의 또 다른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2015~2016년 IT 업황이 약세이던 시기 스마트폰 수요는 부진했지만 아이폰 7 출시를 전후해 모바일 수요 회복의 신호가 나타났다. 반도체 업체들은 당시 서버나 PC 시장보다 모바일 시장에 생산능력을 집중했다. 그런데 이듬해 4차 산업혁명이 촉발되며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했고, 결과적으로 공급 부족이 심화된 상태에서 업황이 상승 사이클로 전환됐다.
지금 상황도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스마트폰과 PC 수요는 여전히 완연한 회복세라고 보긴 어렵지만, 공급업체들은 서버와 AI 수요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
만약 향후 컨슈머 수요까지 동반 회복된다면 공급 부족은 한층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 최근에는 HBM만 사용하던 AI 기업들이 GDDR, LPDDR 등 범용 메모리 제품으로 수요를 확대하고 있다. 대규모 추론 서비스와 AI 인프라 운영에서는 GPU와 HBM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보조 메모리와 캐시 메모리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HBM이라는 특수 제품군에 집중됐던 수요가 점차 D램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예를 들면 엔비디아가 내년부터 적용할 신규 메모리 규격인 SOCAMM(소캠)은 범용 메모리인 LPDDR 수요를 증가시킬 전망이다. 엔비디아의 CPX도 내년에 출시될 차세대 AI 서버로, GDDR7 메모리를 활용해 연산 효율을 높이고 총 메모리 사용량을 늘리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올해 종료 예정이었던 윈도 10의 연장 지원 종료로 인한 PC 교체 수요, 폴더블 신형 아이폰 출시 등 신규 수요 요인도 겹치면서 범용 메모리 수요가 추가로 자극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부터 2026년까지 D램과 낸드 가격은 분기마다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 제약과 수요 확대가 동시에 발생하는 교과서적 가격 상승 사이클이다.
이때 메모리 반도체 업종의 또 다른 특징이 부각된다. 메모리는 고정비 비중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 따라서 매출이 증가할 때 이익이 더욱 급하게 확대되는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한다. 단위당 원가는 거의 변하지 않는 반면 평균 판매가격이 오르면 마진이 급격히 개선된다. 과거 사이클에서도 가격이 20~30%만 올라도 영업이익이 2~3배 뛰는 사례가 흔했다. 이번 사이클 역시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현재의 반도체 업황 강세는 단기 테마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AI라는 새로운 수요처의 등장이 촉발점이 됐지만, 그 뒤에는 과거 투자 사이클의 교체 수요 본격화, 지난 2년간 보수적 투자에 따른 공급 부족, HBM 수요의 범용 메모리 확산 그리고 고정비 레버리지라는 산업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PC 등 컨슈머 수요까지 회복세를 보이면 공급 부족은 더욱 심화되고, 가격 상승세도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개별 기업의 실적뿐 아니라 업종 전체의 밸류에이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성장기업팀 수석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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