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경주 APEC 큰 경사…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1천500년 전 신라 장수 무덤 열려

APEC 정상회의를 앞둔 천년고도 경주에 큰 경사가 생겼다. 1천500년 전 신라 장수의 무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유산청과 경주시는 황남동 고분군 복원사업 과정에서 '황남동 1호 목곽묘'를 새롭게 확인하고, 사람과 말의 갑옷·투구 일체와 함께 금동관 조각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은 신라 왕경 핵심유적 복원사업의 성과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발견이다. 신라 장제문화의 변천과 군사체제, 그리고 초기 귀족사회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실물 자료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학계는 이 금동관을 4세기 말~5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신라 금속공예 기술과 왕경 귀족의 권위 상징을 연구할 핵심 자료로 평가한다. 금동판 일부에는 투조(透彫)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금속 세공 기술의 수준을 실감케 한다.
목곽묘에서는 신라 중장기병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람과 말의 갑옷·투구 세트가 온전한 상태로 확인됐다. 머리를 보호하는 경갑(頸甲)과 흉갑, 신갑, 고갑 등 갑주의 전체 구성이 드러났으며, 말의 머리에서 다리까지 덮는 마갑도 함께 출토됐다.

황남동 1호 목곽묘는 적석목곽분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된 무덤으로, 신라 고분 구조가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 발전하는 과도기 양상을 보여준다.
무덤은 주곽과 부곽이 쌍으로 배치된 이혈주부곽식 구조이며, 주인공은 치아와 골격 분석 결과 30세 안팎의 남성 장수로 추정된다. 그의 오른쪽 아래에서는 함께 묻힌 시종의 인골이 발견돼 순장의례의 실체를 입증했다. 순장 인골의 키는 160~165㎝로, 당시 신라인의 평균 체격과 비슷하다. 부곽에서는 순장자의 금제 이식과 철제 도검이 함께 출토돼 상하 신분 구조를 엿보게 한다.

출토된 유물 구성은 주인공의 무장적 성격을 뚜렷이 드러낸다. 철제 환두대도와 금귀걸이, 마갑과 투구, 고배형 토기 등이 체계적으로 배치돼 있다. 이는 주인공이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귀족사회의 상위 계층이었음을 보여준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1호 목곽묘는 신라 고분 양식 변천의 맥락을 보여줄 뿐 아니라, 신라 왕경 지배층이 정치·군사 권력을 장악해 나가던 초기 국가 단계의 실상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굴은 단순한 학술 성과를 넘어, APEC 정상회의를 맞는 경주의 대표 문화이벤트로 이어진다. 국가유산청은 27일부터 11월1일까지 황남동 1호 목곽묘 출토 유물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신라월성연구센터에서 일반에 공개한다. 금동관 조각과 갑옷, 투구, 토기 등 실물이 처음 선보이며 '별의 시간과 금관의 나라 신라'를 주제로 한 야간 미디어 퍼사드도 함께 열린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번 발굴은 신라 장제문화의 변화와 초기 군사조직의 위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쾌거"라며 "APEC을 찾는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신라 문화의 정수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천오백 년 전 신라 장수의 무덤이 오늘의 경주에서 되살아났다"며 "문화유산의 보존과 공개를 통해 경주의 역사적 품격을 세계가 함께 나누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는 경주 황남동 120호분 아래 조성된 형태로 신라 고분문화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인간의 장례 의식이 어떻게 제도화되어 갔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실물이다.
APEC의 빛 아래 공개될 이번 유물들은 '전쟁의 시대를 살았던 장수의 영혼'이 오늘의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신라 왕경의 흙 속에서 피어난 금빛 장식과 말의 갑옷 조각이, 경주가 품은 천년의 시간과 세계로 향한 자부심을 빛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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