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필요해?’ ‘이생망 2030’ 캄보디아의 유혹…마약과 감금 ‘지옥의 취업’이었다 [세상&플러스]

이용경 2025. 10. 2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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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웬치’ 범죄 도구로 내몰린 2030
사면초가 청년들 ‘고수익 좇다’ 납치·감금
중국 ‘일대일로’ 열풍 식으며 범죄 도시화
광범위한 ‘초국가 범죄’에 국제 공조 시급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의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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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이영기·안효정 기자] 한국의 2030세대 청년들이 캄보디아 범죄단지 ‘웬치(Wench)’에서 범죄 도구로 내몰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 온라인 사기(스캠) 범죄에 연루돼 현지 구치소에 갇혀있던 한국인 64명은 18일 국내로 송환됐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1000여명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현지 범죄조직에 가담하거나 강제로 활동 중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상당수는 ‘고수익 일자리’라는 미끼에 속아 사실상 강제노동과 폭력이 일상화된 ‘지옥의 취업처’로 향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가 신고된 건수는 330건에 달한다. 지난 8월 캄포트주에서는 납치된 한국인 대학생이 중국계 범죄조직에 이용당하다 고문 끝에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사면초가 청년들 고수익 좇다 납치·감금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에 가담해 구금된 한국인들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날 송환에는 경찰 호송조 190여명이 투입됐다. [연합]

캄보디아 시아누크빌과 프놈펜 등에 산재돼 있는 범죄 단지 ‘웬치’는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 온라인 사기 범죄와 각종 마약 유통이 이뤄지는 본거지다. 중국계 범죄조직은 고수익 해외 취업을 좇은 한국인들을 캄보디아 현지에서 유인하고 납치했다. 이내 여권과 통장, 휴대전화를 빼앗고 감금과 협박을 일삼으며 한국인 청년들을 각종 범죄의 부품처럼 활용했다.

헤럴드경제가 사단법인 한인구조단의 협조를 얻어 파악한 납치·감금 피해자들의 사연은 저마다 제각각이었으나 대체로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캄보디아행을 택했다. 경기도에 사는 30대 남성 A씨는 2023년 7월 부친의 뇌수술 치료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떠났다. 지인으로부터 “다른 나라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제안에 무작정 배를 탔지만,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위치를 알 수 없는 건물에 납치·감금당했다고 한다.

IT회사 근무 경력이 있던 B씨도 비슷했다. 모친의 종양 수술비 마련을 위해 고수익 취업에 눈길을 돌린 그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캄보디아의 한 컴퓨터 회사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를 구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고 지난해 4월 프놈펜으로 출국했다. 공항에 마중나온 조선족이 호텔로 안내해주는 듯 했지만, 돌연 B씨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여권과 지갑, 금품 등을 모두 빼앗긴 B씨는 이후 망고단지에 납치·감금돼 피싱 범죄에 활용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30대 여성 C씨는 지난해 2월 일을 그만두고 6개월 동안 인터넷 도박에 빠져 지냈다. 한때 극단 선택까지 고민했던 C씨는 돈 갚을 방법을 찾다 인터넷에서 본 고수익 취업 정보를 믿고 같은 해 8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떠났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로맨스 스캠 조직원이 됐다. 9월에는 시아누크빌로, 11월에는 포이펫으로 장소를 옮기며 범죄를 이어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발목이 잡혔다. ‘항공권과 숙박비를 다 빚진 건데 갚아야 된다’는 범죄조직의 말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고, 캄보디아에서 저지른 불법 행위로 처벌받을 게 두려워 선뜻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고수익을 쫓아 캄보디아로 향했던 이들 가운데 현지에서 범죄에 연루됐던 경우에는 국내로 돌아와도 경찰 수사를 받고 법정에 서야하는 처지다. 그나마 국내로 돌아온 이들은 상황이 좋은 편에 속한다. 현지 범죄조직이 감금된 이들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으로 ‘마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조직은 피해자들에게 마약을 투약해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고 착취했다. 이 때문에 범죄에 활용돼다 마약까지 중독된 일부 한국인들은 범죄조직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해도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 ‘일대일로’ 열풍 식으며 범죄 도시화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ㆍ감금이 잇따라 발생하며 정부가 대응에 나선 가운데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로 알려진 태자단지 내외부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연합]

캄보디아에서 이처럼 각종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는 개발 자본의 일탈과 궤를 같이 한다. 한때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따라 막대한 자본이 몰리던 캄보디아는 카지노와 리조트 등 개발붐이 일었다. 하지만 캄보디아로 진출한 중국계 범죄조직들은 얼마 안가 온라인 사기 범죄에 눈을 돌린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돼 도박이나 관광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급감하면서다. 카지노 사업 등 각종 이권을 노리고 들어온 자본은 썰물처럼 캄보디아를 빠져 나갔고, 남은 자리에는 온라인 사기 조직과 인신매매 범죄단이 들어섰다.

국제사회는 이미 지속적으로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2025 인신매매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 인신매매 위험도를 최고 수위인 3등급으로 분류했다. 캄보디아 정부가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필요한 최소 기준을 충족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선 5월에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UNOHCHR)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 범죄단지에서 온라인 사기나 범죄조직 운영에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때부터 점차 캄보디아는 단순한 해외취업 사기의 근거지가 아니라 초국가적 범죄 조직과 결합된 허브로 진화했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는 2024년 보고서에서 캄보디아의 사기 산업이 연간 125억 달러(한화 약 17조7500억원) 규모이며 GDP의 약 40%라고 추산했다. 이는 사실상 보이스피싱 등 스캠 범죄가 캄보디아 경제를 이끄는 핵심으로 뿌리깊게 자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부동산 개발·관광·금융 등의 분야로 성장한 대표적 조직이 바로 중국의 프린스그룹(Prince Group)이다.

이 그룹을 이끄는 천즈(38) 회장은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났으나 2014년 27살의 나이로 캄보디아에 귀화했다. 그는 이후 10여년 만에 재벌로 성장했다. 훈 센 캄보디아 전 총리의 정치 고문으로 활동하며 조직의 세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영국은 프린스그룹을 초국가적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제재에 나섰다. 캄보디아 전역에 온라인 스캠 단지를 운영하며 외국인을 속이고 감금과 고문을 일삼는 등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서다. 프린스그룹이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태자단지에서도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자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광범위한 초국가 범죄에 국제공조 시급
김진아 외교부 2차관,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을 비롯한 정부 합동대응팀 구성원들이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

경찰청은 지난해 중순부터 이러한 캄보디아 스캠단지에서 벌어지는 한국인 피해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대통령실을 비롯한 외교부·법무부 등 부처와도 해당 사항을 공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대학생 사망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범정부 TF를 구성하고 대대적인 조치에 나섰다. 다소 뒤늦은 조치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단발적 조치만으로는 이번 사태와 같은 국제적 범죄조직에 의한 국민 피해를 막을 수 없는 만큼 실시간 공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제12회 KICJ 국제포럼’을 열고 아시아 지역의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역량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포럼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중국·태국·우즈베키스탄·몽골 등 아시아국가의 사법기관 대표들이 참석했는데, 캄보디아 내 한국인 사망 사태가 불거진 상황인 만큼 초국가적 국제범죄 대응을 위한 논의에 집중됐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프로그램 네트워크 소속 아시아 협력기관들과의 연계로 마약·인신매매·사이버 범죄 등 초국가적 범죄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심도 깊게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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