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부터 여기까지" 매달 10벌씩 쓸어간다…중국서 잘나가는 K브랜드
[편집자주]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재도약과 도태의 갈림길에 섰다. 'K웨이브'로 달궈진 'K산업'의 성장엔진이 식기 전에 글로벌 영토 확장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머니투데이는 전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푸드·리테일·패션·뷰티' 등을 중심으로 'K이니셔티브'를 실현하고 있는 기업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장을 집중 조명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지난달 22일 중국 상하이 중심가 난징시루의 명품 쇼핑몰 '플라자66'에 들어서자 은은한 향수가 한가득 공간을 채웠다. 이어 투명 유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왼편에 샤넬(CHANEL) 로고가 눈에 들어오고, 그 바로 옆에는 국내 골프웨어 브랜드 지포어(G/FORE) 매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상하이 플라자66은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샤넬 등 세계적인 하이엔드 브랜드만 입점하고 있어 '명품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입점 자체가 곧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는 상징적인 쇼핑몰로 국내 브랜드의 매장이 있는게 이례적인 정도다. 현지 관계자는 "입점 심사에는 브랜드의 디자인 완성도, 고객층의 수준, 매출 잠재력 등 여러 요소가 종합적으로 검토된다"며 "샤넬 옆이라는 위치는 브랜드 전략을 반영한 의도적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지포어 매장은 전체적으로 블랙 톤 인테리어에 세밀한 조명과 그림자 효과를 내세워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했다. 매장 입구에는 골프백과 셋업 의류가 세련된 마네킹에 착장돼있고, 내부에는 시즌별 제품이 라인별로 정돈돼있어 눈길을 끌었다.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브랜드 철학과 미학을 체험할 수 있는 '브랜드 경험 공간'으로 설계된게 특징이다.
지포어 관계자는 "플라자66 입점 후 방문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VIP 고객층의 비중이 높아졌다"며 "고객들이 샤넬이나 디올 매장을 둘러보다가 자연스럽게 들러 고급스러운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골프웨어를 스포츠복으로만 인식했지만, 이제는 패션 아이템으로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확연히 늘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포어는 플라자66 입점을 통해 중국 내 프리미엄 고객층 공략에 나섰다. 주로 30~40대 중산층 이상으로, 골프를 즐기거나 패션 감각이 높은 소비자들이다. 한 판매 직원은 "일부 고객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매장을 방문해 셋업 10벌씩 구매한다"며 "이들은 단순히 옷을 사는게 아니라 브랜드의 감각과 정체성을 경험하러 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포어는 제품 디자인뿐 아니라 매장 연출, 고객 응대까지 명품 브랜드 수준으로 맞추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코오롱FnC는 지난해말 미국 본사와 중국·일본 독점 마스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봄·여름 시즌부터 양국 핵심 상권을 중심으로 사업을 본격화했다. 특히 상하이 플라자66은 '럭셔리 인증 무대'로 평가받는 전략적 거점이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중국 소비자들에게는 브랜드의 위상이 매우 중요하다"며 "플라자66은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니라 브랜드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상하이 플라자66과 청두 IFC에서 잇따라 매장을 오픈한 지포어는 오는 11월 베이징 SKP에 입점하며 중국 내 프리미엄 유통망 라인업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일본 긴자식스와 도쿄 오모테산도 매장을 더해 아시아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국내에서 축적한 디자인 경쟁력과 기술력, 세련된 브랜드 감성을 바탕으로 K패션이 명품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근 찾아간 중국 상하이 홍차오 기차역.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합실 안 여행객들이 캐리어를 끌고 분주히 오가는 동선 한쪽에 낯익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영문 로고로 적힌 'HAZZYS(헤지스)'다. 클래식 감성이 묻어나는 매장 안에서는 출근길 직장인과 여행객이 뒤섞여 셔츠와 카디건을 고르고 있었다.
실제로 중국 주요 도심의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는 헤지스 매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상하이 강후이, 캐리 센터, 남경 금응 등 명품 브랜드가 밀집한 상권에서도 마찬가지다. 헤지스는 이제 중국 소비자들의 일상 속에 스며든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헤지스의 중국 진출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한국 패션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헤지스를 전개하는 LF는 단순 수출이 아닌 라이선스와 유통을 결합한 형태로 일찌감치 현지 공략에 나섰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패션 시장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브랜드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었다.

LF는 우선 중국 내 3대 신사복 기업 중 하나인 '빠오시냐오 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현지 유통망과 소비자 분석 노하우를 접목했다. 이를 통해 헤지스는 제품 기획부터 유통과 마케팅, 고객 커뮤니케이션까지 현지화된 운영 체계를 구축했다. 석상현 상하이지사장은 "빠오시냐오 그룹의 지역별 유통 네트워크와 LF의 브랜드 운영 노하우가 맞물리면서, 현지 소비자들에게 헤지스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헤지스는 특히 '고급화'와 '로컬라이제이션'을 두 축으로 중국의 지역별 기후와 문화, 소비자 취향을 세밀히 분석해 제품 라인을 세분화하고, 컬러와 소재, 핏(fit)을 현지 감성에 맞추는데 중점을 뒀다. 그 결과 헤지스는 현지에서 '고급 캐주얼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며 변화무쌍한 패션 트렌드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헤리티지(전통)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단일 브랜드의 성과를 넘어선다. 헤지스의 해외 안착은 LF가 20여년 전부터 설계해온 글로벌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LF는 2000년대 초반 해외사업부를 신설하고, 2004년 상하이, 2005년 프랑스 파리에 잇따라 지사를 세워 각 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분석했다. 국내 패션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선제적 행보였던 셈이다.
LF는 무엇보다 각 브랜드의 강점과 정체성, 주요 고객층, 가격대, 제품 경쟁력을 현지 시장의 문화와 소비 성향에 정교하게 맞추는 '핏'에 공을 들였다. 모든 시장에 동일한 전략을 적용한게 아니라 각 브랜드나 국가마다 다른 해답을 찾아내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헤지스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며, 지난해 국내·외 종합 매출 9000억원을 달성했다. LF 관계자는 "단기적인 수출 실적보다 장기적인 브랜드 안착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했다"며 "내년 1조원 돌파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강조했다.
LF는 제품뿐 아니라 마케팅도 현지 정서를 반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헤지스는 중국의 유명 배우이자 가수인 송가를 브랜드 앰배서더로 기용해 세련되고 지적인 여성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또 빠오시냐오 그룹, 징동닷컴과 함께 2019년과 2024년 영국 런던패션위크에 연이어 참가하며, 글로벌 무대에서도 브랜드 정체성을 재각인시켰다.
LF는 아울러 유통을 단순한 판매 통로가 아닌 브랜드에 꼭 필요한 인프라로 보고 있다. 헤지스가 중국 전역에 약 580개 매장을 운영하며, 상하이 강후이와 남경 금응, 캐리 센터 등 주요 프리미엄 상권을 중심으로 입점을 확대해온게 같은 맥락이다.
헤지스의 중국 안착과 성장은 K패션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된다. 단발성 진출에 머물지 않고, 브랜드 본질을 지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에 투자해온 결과다. 석 지사장은 "해외 진출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지켜나가는 균형 감각이 LF식 글로벌 전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중국)=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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