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독재자의 최후… 정육점 냉동창고에 시신 전시된 카다피
2011년 10월 20일 69세

한 나라를 42년간 무소불위로 통치하던 독재자의 최후는 비참했다. 리비아 최고 통치자로 1969년 9월부터 ‘혁명의 선구자 겸 지도자’로 군림하던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는 2011년 10월 20일 시민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카다피는 고향인 리비아 중북부 도시 시르테 배수관에 숨었다가 최후를 맞았다. 시민군이 다가오자 카다피는 “쏘지 마! 쏘지 마!” 외쳤다. 시민군이 공개한 휴대전화 동영상에서 카다피는 머리·목·어깨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무슨 짓인가. 너희들의 행동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며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한 젊은 시민군은 “무아마르, 개자식”이라고 외친 뒤 카다피의 신발을 벗기고 “승리”를 연호했다. 다른 시민군은 그 신발로 카다피를 때렸다. 한 시민군은 긴 막대기로 카다피의 항문을 찔렀다. 모두 이슬람 사회에서 상대에게 최대의 모욕을 주는 행위이다.
카다피는 머리와 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머리 부위 총상 이전에 내장을 관통한 총상이 직접 사망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카다피의 시신은 사망 이틀 후인 22일 시르테에서 서쪽 미스라타로 옮겨져 정육점 냉동 창고 안에 전시됐다. 시민들은 냉동 창고에 누워 있는 독재자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다. 수많은 구경꾼이 카다피의 최후를 확인하려고 길게 줄지어 섰다. 일부는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다.

카다피는 1969년 9월 1일 육군 대위일 때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국왕 이드리스 1세가 튀르키예로 휴양을 떠나 국내에 없을 때를 노렸다. 리비아아랍공화국을 선포한 후 서방 메이저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석유 자본을 국유화하고 원유 수출 대금을 국민에게 무상 분배했다.
리비아 경제는 괄목할 성장세를 보이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곤두박질쳤다. 서방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배후로 지목돼 경제 제재를 받은 것이 큰 이유였다. 1986년 서베를린 미군 나이트클럽 폭발 사건 배후로 찍혀 수도 트리폴리와 제2 도시 벵가지를 폭격당했다. 1988년 팬암기 폭파 용의자 인도를 거부하면서 경제 제재를 받아 1990년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다.

이후 서방과 화해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1998년 팬암기 용의자를 네덜란드에 넘겼고, 영국과 15년 만에 국교를 재개했다. 2003년 대량 살상 무기(WMD)를 자진 폐기하고 미국과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뉴욕타임스는 “중동의 미친개가 달라졌다”고 기사를 썼다. ‘중동의 미친개’는 미 대통령 레이건이 카다피를 지칭한 말이었다.
한국과의 관계는 좋았다. 동아건설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맡아 1991년 8월 29일 1단계 준공식을 열었다. 대수로 공사는 리비아 남부 내륙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총연장 1872㎞ 송수관을 통해 물을 공급해 리비아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카다피는 착공할 때 “대수로 공사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에 비견되는 불가사의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시민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한 2011년 8월 22일 “카다피가 은신했던 관저 지하 터널은 한국이 만든 대수로”라고 보도했다.
카다피는 2011년 1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물결을 견디지 못했다. 2월 15일 동부 벵가지에서 반(反)카다피 시위가 처음 벌어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카다피 정부군의 가혹한 진압이 이어지자 3월 17일 리비아 상공에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을 결의했다. 곧 군사행동에 나선다는 의미였다. 미국·영국·프랑스 중심의 연합군은 19일 리비아를 공습하는 ‘오디세이의 새벽’ 작전을 감행했다. ‘리비아 국민 보호’가 명분이었다.

카다피의 운명은 8월 22일 시민군이 트리폴리를 점령하면서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이후 카다피는 두 달여 동안 도피 생활을 이어 갔다. 서방의 공습이 두려워 2~3일마다 거처를 옮겼다.
카다피는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지?” “왜 물이 없는 거야?”라고 자주 투덜댔다. 카다피의 사촌이자 인민수비대 사령관으로 최후까지 함께했다가 생포된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은 “요리사도 크게 다쳐 모두 직접 음식을 해서 먹었다”며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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