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으로 돌아간 中 청년들... '힐링'인가, 시진핑식 '신하방'인가

이혜미 2025. 10. 2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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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도시 청년 귀농시키는 中 속내
시진핑 "농촌으로 가라" 한마디에
농촌 예능 뜨고, 곳곳에서 선전 작업
이면에는 18.9% 최대 청년실업률
미중 경쟁 속 '식량 안보' 확보 목적도
농사 예능 프로그램 종디바의 포스터. 바이두 캡처

#1. "중국 동북부 우창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계약했어요. 여가 시간에 농사를 지어 수입을 창출하기로 했습니다."

2012년 데뷔해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온 배우 스위안팅(36)이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밝힌 귀농 계획이다. 중국의 3대 연기 학원인 중앙희극학원을 졸업한 후 꽤 인기를 얻으며 활동해왔지만, TV와 영화 산업 침체로 6개월 동안 배역을 구하지 못해 한때 통장 잔고가 2만 위안(약 4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생활고에 중국의 명산인 타이산(태산) 등반을 함께해주는 이색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를 SNS에 올려 화제를 모았던 그는 지난달 중국의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둥닷컴과의 협력으로 자신이 경작하는 농지를 배정받게 됐다. 그가 수확하는 쌀은 징둥닷컴을 통해 중국 전역에 판매된다. 그는 스스로 "농사에 진심이다"라고 하지만, 전업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아닌 데다 이따금 농지를 돌본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 "관심으로 먹고사는 연기자의 쇼"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2. "봐 봐, 똑똑한 링링허우(2000년대 출생자)는 모두 이렇게 (뿌리를) 잘라."

일상생활 속에서 햇볕에 거의 노출되지 않을 것만 같은 새하얀 피부의 남성 연예인들이 농장에 앉아 흙 묻은 민트 뿌리를 잘라 정리한다. 올해 2월 첫 편을 공개한 중국의 IPTV 아이치이의 '종디바(농사를 짓자) 시즌 3'의 한 장면이다.

2023년 시즌 1이 공개된 이 프로그램은 10~20대의 배우와 아이돌 10명이 190일 동안 약 1만3,223㎡(4,000평) 농지를 재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기간 동안 신입 청년 농부들은 파종, 관개, 비료 주기, 수확, 농장 운영, 생방송 및 상품 판매, 그리고 농산물 직거래 장터 설립까지 경험한다. 프로그램은 내레이션과 대사를 통해 수시로 농촌 생활의 장점을 선전하고 청년들의 농촌행을 독려한다. 프로그램은 2023년과 2024년 연속으로 국가광전총국의 우수 온라인 시청각 작품으로 선정됐고, 매주 새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시청률 순위권에 오를 정도로 인기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양창링 감독은 2023년 현지 경제 매체인 지우파이차이징과의 인터뷰에서 기획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몇 년간 국가 정책이 농업과 농촌에 대한 우호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도시 전문가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거나 농사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땅과 젊은이를 연결하고, 실제 경험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시진핑(오른쪽 두 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2023년 6월 5일 중국 내몽고자치구 바옌나오얼의 현대 농업 시범 공원을 시찰하고 있다. 바옌나오얼=신화 연합뉴스

도처에 '청년 귀촌' 이야기다. 오늘날 중국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발신하는 농촌 진흥 정책 이야기다. 광둥성은 대졸자 30만 명을 올해 말까지 농촌으로 유치하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지방정부마다 청년 유치 목표를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관영 언론은 농촌으로 돌아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선전한다. 징둥닷컴 같은 대기업도 정부 정책을 충실히 따르며 스위안팅 같은 사례를 발굴해 홍보하고, 민간 콘텐츠 플랫폼마저 '종디바'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농촌 생활에 대한 좋은 관념을 부지불식간에 주입한다. 모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졸자도 농촌으로 내려가 경력을 쌓아야 한다"며 청년들에게 귀농을 장려한 이후의 상황이다.


농촌으로 온 청년들 "지금 삶에 만족한다"지만...

한약재를 이용한 밀크티 카페를 창업한 청년 창업가 가오링쉬가 지난달 26일 푸젠성 난핑시 자신의 카페에서 밀크티를 만들고 있다. 난핑=이혜미 특파원

지난달 26일, 당 중앙 정책에 따라 착실하게 청년의 귀농과 귀향 창업을 추진하고 있는 푸젠성 난핑시를 찾았다. 난핑시 안에서도 인구 78만 명의 광저현은 농업과 지역 특산품 생산이 주를 이루는 작은 농촌 마을로, '고향으로 돌아와 농촌을 돕다'라는 이름의 청년 귀향 지원 패키지 정책을 도입해 적극적으로 청년 인구 유치를 하고 있다. 총런쩐은 명청 시대 상업 중심지로, 오래된 건축물이 남아 있는 역사문화지구인데 이곳을 리모델링해 창업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살 땐 처우가 기대와 달라 스트레스가 컸는데, 고향으로 돌아온 지금의 생활에 만족합니다." 23세의 가오링쉬는 지난해 고향인 푸젠성 난핑시로 돌아와 한약재를 접목한 밀크티 카페를 창업했다. 원래 그는 푸젠성의 성도인 푸저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며 미래가 밝았던 이공계 엘리트였다. 교육 수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을 받으며, 내 집 마련도 꿈꾸기 어려운 도시 생활과 중국 사회의 고질병인 '내권(제 살 깎아 먹기 식 경쟁)'에 질려버렸던 찰나였다.

어느 날 우연히 SNS를 통해 지방 정부가 내놓은 창업 정책을 보고 귀향을 결정했다. 광저현 정부가 청년 창업자에게 내세운 혜택은 3년 임대료 면제와 1년 무료 숙식. 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데다, 창업에 들어가는 초기 비용을 거의 공짜로 해결할 수 있으니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했단다. 현재 한 달 수입은 3만 위안(약 600만 원) 수준으로, 도시에서 받는 월급의 3, 4배 수준에 달한다. 처음에는 왜 작은 농촌으로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친구들도 이제는 부러움을 숨기지 않는다고 한다.

해외파 청년도 농촌으로 돌아왔다.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링위쉬안(27)은 고향으로 돌아와 무형문화유산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35만 틱톡 팔로어를 보유한 그는 무형문화유산 콘텐츠를 직접 만들면서, 전통 기법으로 만든 우산을 판매하고 있다. 또 어린아이들이 전통문화를 느끼면서 자랄 수 있도록 학교와 합작해 체험 수업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링은 "외국에서는 무척 빠르게 생활해야 했는데, 고향에서는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아 마음이 평화롭다"며 "몸은 농촌 마을에 있지만 요즘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홍보와 판매를 모두 할 수 있으니 제약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링위쉬안(27)은 고향인 푸젠성 난핑시로 돌아와 무형문화유산 제품을 만들고 교육하는 업체를 창업했다. 지난달 26일 링이 자신이 만든 전통 우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난핑=이혜미 특파원

청년들의 농촌행은 만병통치약?

중국의 구직자들이 2020년 12월 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한=신화 연합뉴스

중국의 '농촌 띄우기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농촌도 살리고 청년 문제도 해결하는 묘안으로 보인다. 실제 농촌에 뛰어든 일부 청년들도 만족감을 표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농촌행'을 장려하는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 같은 정책이 청년 실업률이 치솟는 등 사회 구조적 모순이 불거질 때마다 강조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고속 경제 성장을 이어온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의 도시화율은 2000년 36.2%에서 2023년 66.2%로 증가했다. 동시에 도시화가 야기한 사회 문제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적은 소득으로 청년들이 집을 사거나 가정을 꾸리는 등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고, 내권적 경쟁과 과로로 소모된 청년들이 '탕핑족(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는 부류)'으로 변모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혼인과 출생도 줄어들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23년 6월 청년 실업률이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학생을 제외한 독자적 기준을 적용한 실업률을 발표하고 있는데 지난 8월에는 이 수치마저 18.9%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자 꺼내든 것이 바로 '청년들의 농촌행'이다. 대졸자들이 농촌으로 가면 대졸자 취업과 도농 소득 격차 문제가 완화되며, 농촌 현대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당의 기층 조직이 강화돼 중국공산당 지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장기간 직업을 구하지 못한 청년들의 불만을 해소하면서 사회 불안 요소를 제거할 수도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첨예해지는 국면에서 '식량 안보'는 중국으로서 더욱이 놓을 수 없는 지상 최대 과제다. 시 주석은 안보적 관점에서 식량 주권을 수차례 강조해왔는데, 지난 14일 중국 국가식량전략비축국은 지난해 곡물 생산량이 처음으로 7억 톤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1인당 곡물 보유량이 500㎏에 도달하면서, 국제적으로 안정적인 식량 안보선(1인당 400㎏)을 넘어섰다며 자화자찬하는 분위기다.


시진핑의 농업 장려에 어른거리는 문혁 망령

1,220만 명. 2012년 시진핑 집권 이래 10년 동안 중국에서 농촌으로 귀향한 창업자 수다. 시 주석이 직접 "강한 농업과 농촌 없이는 진정한 강국이 될 수 없다"며 대졸자뿐 아니라 도시로 떠난 농민공까지도 다시 농촌으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자'는 메시지를 전방위로 발신한 결과다. 누군가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 마오쩌둥이 "노동을 통해 학습하고 농촌에서 배우라"며 1,700만 지식청년을 농촌으로 보낸 '하방 운동'을 떠올리는 이유다.

스스로 문혁 시기 하방을 경험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시 주석이 그 시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신하방 운동'을 추진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 주석은 15세이던 1969년 산시성 옌촨현 량자허촌으로 하방해 농촌에서 약 7년의 세월을 보냈다. 훗날 그는 "하방 이후 스스로 환골탈태한 느낌"이라며 스스로 '량자허'라는 고교와 대학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하방 경험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왜인지 그의 회고에서 문혁 시기 하방이 중국 사회에 남긴 심각한 부작용은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시 주석 자신은 문혁 막바지 칭화대 입학으로 교육의 수혜를 입고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됐지만, 그 시기 교육받지 못한 홍위병들은 오늘날 공원에서 '광장무'를 추며 시간을 때우거나 소란을 피워 젊은 세대의 눈치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무엇보다 마오쩌둥이 지식청년을 농촌으로 보낸 것은, 문혁 광풍으로 인해 경제가 망가져 일자리가 초토화된 데 근본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말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 나무위키 캡처

난핑=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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