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 중독돼 미래 투자 외면… 공짜 안보·저금리 파티도 끝나

김지섭 기자 2025. 10. 20.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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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유럽의 3대 기관차’
지난달 18일 프랑스 경찰들이 정부의 재정 긴축 정책에 반대해 전국 총파업을 벌인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는 모습. 지난달 중순 프랑스 전역에서는 교사, 버스 운전기사 등 50만명의 시민이 내년 복지 지출 등을 삭감하려는 재정 긴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EPA 연합뉴스

“모든 것을 차단하라(Bloquons tout)!” 프랑스 파리는 지난달 내내 최루탄 연기로 자욱했다. 마크롱 정부의 복지 축소를 골자로 한 긴축 예산안에 분노한 시민 수만 명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버스에 불을 질렀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때에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작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월평균 제조업 일자리가 직전 1년간 대비 11만4000개 줄었다는 통계가 발표된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산업인 자동차 부문에서만 절반에 가까운 5만15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영국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영국 제조업 생산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영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2020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37%나 줄었다.

한때 ‘유럽의 모범생’으로 불렸던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빅3’ 나라들이 경제 실패에 신음하고 있다. 투자·고용 등 핵심 경제 지표는 부진을 거듭하고, 성장률은 정체되거나 뒷걸음질하고 있다. 유럽 빅 3가 이렇듯 동시에 무너진 배경에는 수십 년간 쌓인 구조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중 핵심은 ‘높은 복지-낮은 국방비-초저금리’라는 황금 삼각형 경제 모델이 붕괴됐다는 데 있다.

그래픽=김현국

◇복지병에 국방비 청구서·금리 역습까지

유럽 경제 빅 3는 복지에 막대한 돈을 쓰는 나라들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기준 연금, 의료, 실업급여, 공공 주거 지원 등 공공 사회보장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3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독일과 영국(2023년)도 이 비율이 각각 27.9%, 23%에 달한다. 세 나라 모두 OECD 평균(약 21.2%)을 훌쩍 넘는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세 나라는 경기 대응이나 미래 투자에 쓸 돈이 복지성 의무 지출에 다 묶여 있다”며 “재정의 경직성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말했다.

세 나라가 복지에 취해 있는 사이 미국에 기댔던 ‘안보 무임승차’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이후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방위비의 70% 이상을 부담하는 ‘평화 배당’을 누리며 최소한의 국방비만 써왔다. 하지만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등장으로 판도가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1%대에 그치는 유럽에 이 비율을 5%까지 올리라고 요구했다. 결국 나토 회원국은 국방비를 향후 10년간 5%까지 높이기로 했다. 더는 국방비를 아껴 복지 지출을 늘릴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투자 멈춘 유럽 빅3

초저금리 효과가 사라진 것도 세 나라에 직격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4년 6월~2022년 7월 8년간 재정 위기, 코로나 위기 등을 돈 풀기로 버텨 내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다. 앞서 2012년 7월부터는 제로(0) 금리였다.

이 기간 유럽 각국은 값싼 자금으로 재정 적자를 메우고 복지도 확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짜 돈’ 파티는 막을 내렸다. ECB는 2022년 7월 기준금리를 0.5%로 올린 것을 시작으로 2023년 9월까지 금리를 4.5%까지 높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서였다. 금리가 치솟자 독일의 국채 이자 지출은 2021년 40억유로에서 지난해 400억유로로 10배 폭증했다. 영국은 2022년 4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국채 이자로만 1160억파운드를 지출해 같은 기간 교육 예산(1040억파운드)을 넘어섰다. 프랑스도 작년 국채 이자(620억유로)가 국방 예산(570억유로)을 추월했다.

초저금리의 퇴장은 정부와 기업의 투자 의지를 동시에 꺾었다. 재정 부담이 커진 정부는 긴축으로 돌아섰고, 기업은 자금 조달 비용 급증에 투자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설비투자 증가율이 G7(7국) 중 최하위로 떨어졌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복지의 무게, 안보의 청구서, 금리의 역습이라는 삼각 파도가 유럽 빅 3를 집어삼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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