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국민 지킬 외교부, 의전부로 전락

이기우 기자 2025. 10. 1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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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캄보디아 남부의 보코산 지역을 찾았다. 지난 8월 범죄 단지에 감금돼 고문 끝에 숨진 대학생 A씨가 끌려갔다는 곳이다. 프놈펜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도착해 헤매다가 A씨와 같은 한국인들이 감금돼 있다는 범죄 단지에 다다랐다. 정문을 지키는 범죄 조직원 7~8명의 시선이 기자에게 쏠렸다. 멈춰서 안을 살피고 싶었지만 캄보디아인 운전기사는 “위험하다”며 계속 차를 몰았다.

캄보디아 현장 취재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7월에도 항구 도시 시아누크빌의 음산한 범죄 단지들을 찾았다. 이곳에 감금된 한국 MZ 청년들이 범죄 조직원들에게 두들겨 맞는 ‘피해자’이면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하고 보도했다.

그래서 이번 A씨 납치·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을 보며 더욱 회의감이 들었다. 이 사건은 지난 8월 발생 직후 국내 언론에 보도됐고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 달 동안 별 조치가 없었다. 외교부 장관이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했다는 시점은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서였고,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불러 항의한 것은 지난 10일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사기 범죄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한국인 64명이 지난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호송되고 있다. /장경식 기자

재외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이 커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 15일 합동 대응팀을 꾸려 현지에 급파했다. 그리고 나흘 만에 정부는 한국인 64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이들이 수갑을 차고 귀국하는 장면은 생중계됐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캄보디아 당국에 검거·구금된 범죄 피의자들이었다. 언제든 한국으로 송환이 가능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반면 여전히 한국인 1000여 명은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감금돼 생사를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취재진이 현지에 특파돼 취재에 나서고 캄보디아 경찰도 단속에 들어가자 한국인들을 감금한 범죄 조직들은 속속 근거지를 옮기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체포된 피의자들을 송환하면서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데 열중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손 놓고 있던 정부가 ‘뒷북’ 치는 사이 여당 의원들은 ‘개인 플레이’에 나섰다. 원내대표를 지낸 실세 의원이 “한인 10여 명을 구했다”며 앞서나가자 현직 최고위원이 질세라 캄보디아에 날아와 “현지에서 한국인 청년 3명을 구조했다”고 발표했다. 현지 교민들은 “정치인들이 뒤늦게 영웅 놀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김진아(오른쪽) 외교부 2차관,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등 정부 합동대응팀이 지난 17일 오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런 식이라면 한국 외교부나 대사관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의전부’나 ‘생색부’로 간판을 고쳐 달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학자 출신 외교부 2차관이 캄보디아를 찾아 납치된 우리 국민에 대한 조치를 논하는 자리에서 송환 결과를 말하며 연신 미소 짓는 모습까지 봤다. 일주일 동안 캄보디아에서 취재하며 지켜본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비판이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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