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에서 나오는 강한 맛, 생각지도 못한 너의 정체 [웃기는 짬뽕]
군포 ‘만추중화요리’
혀에 걸리는 생소한 맛 ‘생강’
알싸한 듯 묘하게 퍼지며 여운
두껍지 않은 면발과의 조화
완뽕 이르기까지 강한 존재감

우리나라에선 전골이나 찌개류 등을 끓이면서 동시에 먹는 문화가 발달돼 있다. 주방에 있는 불을 아예 밥상으로 가져온 건데,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식을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이 발상이 참 놀랍다. 입천장이 까질지언정 음식이 식기 전에 맛을 느껴야 한다는 이 진취적인 생각. 한국인들의 지혜는 역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소금, 황금보다 가치 있는 건 현금이 아닌 지금이다. 제 아무리 맛있는 짬뽕이라 해도 30분을 두면 불어터진 맛없는 짬뽕이 되고 1시간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짬뽕이 된다. 과거의 회한이나 미래의 막연함 때문에 지금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짬뽕이 떠올랐다면 그 즉시 짬뽕을 먹어야 한다. 바로 지금.


바야흐로 짬뽕 먹기 좋은 계절
군포시 금정동 ‘만추중화요리’. 보통 만추는 ‘늦을 만(晩)’에 ‘가을 추(秋)’를 써서 늦가을 정도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현빈·탕웨이 주연의 2011년 영화 만추 역시 그렇다. 이곳은 간판을 보니 가을은 가을인데 앞에 ‘찰 만(滿)’을 썼다. 가을의 정취가 가득 찬, 가을이 한창 무르익은 그런 정도의 의미인 듯 싶다. 초가을보단 늦가을로 갈수록 가을의 매력이 더 풍성해지니 한자는 달라도 느낌은 매한가지다.
10월 말로 접어드는 이 시기야말로 만추의 매력이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는 때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 짬뽕을 먹느라 얼마나 많은 땀을 쏟아야 했던가. 이제 땀 흘리지 않고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고독하게 짬뽕을 즐길 때가 왔다. 바야흐로 짬뽕 먹기 딱 좋은 계절이 온 것이다.

만추는 군포의 구도심 중 하나인 금정동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이런 곳들은 보통 주차에 애를 먹는 편인데 다행히 음식점 인근에 공영주차장이 있다. 매장 내부는 소박한 중국집 느낌이지만 벽면이 화려하다. 길었던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주인장이 매장 내 벽지를 갈았다고 하는데 벽면 가득 동양의 고전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실크 재질의 벽지를 직접 공수해 왔다고 한다.
주위 테이블을 둘러보니 한두 명씩 와서 가볍게 짬뽕 한 그릇을 먹으며 주인장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이 여럿 눈에 띈다. 유명 맛집 인플루언서나 입소문을 통해 단숨에 맛집 반열에 올라선 곳은 많지만, 단골이나 주위 현지인들이 언제든 편히 찾을 수 있는 푸근함과 단단함까지 갖춘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집에선 그런 내공이 느껴진다.

생강은 생각도 못했다
고기짬뽕을 주문했다. 국물은 걸쭉하지 않고 맑은 편인데 보기보다 밀도가 상당하다. 일반 짬뽕 국물 맛과는 살짝 결이 다르다. 양념장을 세게 푼 순댓국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집 짬뽕의 포인트는 단연 국물이다. 첫 국물을 한 입 떠먹어 보면 생소한 맛이 혀 끝에 딱 걸리는데, 알싸한 듯 묘하게 퍼지며 여운이 남는다. 보통 짬뽕에선 잘 느껴지지 않는 생강 맛이 짬뽕에 그득 배어 있다. 궁금해서 사장님께 물어보니 생강이 맞았다. 고기류 짬뽕에만 잡내 제거 목적으로 넣는다고 한다.

이게 굉장히 오묘하고 독특하다. 요즘 말로 ‘킥’이다. 먹는 내내 입 안에 생강 향이 맴도는데 뭔가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완뽕에 이르기까지 강한 존재감을 어필하면서도 큰 거부감은 없다. 오히려 이제는 너무 흔해진 불맛에 비하면 뚜렷한 컬러를 보여주는 셈이다.
과거엔 생강 맛에 거부감이 있었다. 음식을 먹다가 덜 갈린 생강을 씹기라도 하면 뱉어내기 일쑤였고 아무리 감기가 심해도 생강차는 손도 대질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생강도 흡수하게 됐다. 몸에 좋은 건 쓰다는 편견을 버리고 이제는 몸에 좋다면 일단 받아들이고 보는 시기가 왔나 보다.

면발은 그리 두껍지 않아 먹기에 딱 좋다. 국물을 떠먹던 중 숟가락에서 희망의 아이콘을 발견했다. LOTTO. 로또 글자가 새겨진 숟가락은 처음 봤다. 입 안에 남은 생강 맛이 사라지기 전에 로또부터 사러 가야겠다고 마음 먹는 동시에 1등에 당첨되면 어디에 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부질없지만 기분 좋은 상상,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 때론 약이 된다.
/황성규 기자 homer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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