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4성급 호텔 옆에 보이스피싱용 건물... 길엔 중국인 두목 이름 붙여

장윤 기자 2025. 10. 1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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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이용은 5분 안에, 1분 초과 시마다 10달러 벌금”
KB호텔 공식 홈페이지의 호텔 홍보 사진. 황금빛 조명으로 장식된 KB호텔 바로 옆 하얀 동그라미를 친 건물이 린씨 등이 감금되어 있던 로맨스스캠용 건물이다./KB호텔 공식 홈페이지

시아누크빌 해변에서 북동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는 호텔과 카지노 등 16개 건물이 모인 14헥타르 규모의 복합 관광 단지가 있다. 이곳에 감금됐다가 탈출한 중국인 린씨에 따르면, 단지 내 4성급 호텔인 KB호텔 바로 옆 건물 ‘KB 5빌딩’에 로맨스 스캠 조직 ‘보타이 컴퍼니’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 복건성 출신의 린씨는 2022년 3월부터 프놈펜의 한 식당에서 일하다가 이곳에 팔려왔다.

캄보디아 현지 매체 VOD는 시아누크빌의 ‘웬치’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지 범죄단지의 모습을 구체화했다. ‘웬치’는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근거지를 가리키는 크메르어로, 수도 프놈펜과 남서부 항구도시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해 있다.

캄보디아의 항구 도시 시아누크빌 해변 근처 관광단지에 세워진 고급 관광단지의 조감도. 중국에서 사기 범죄를 벌이다 징역 선고를 받은 직후 캄보디아로 도주한 범법자 쉬아이민(徐愛民)의 소유다. 이곳 웬치를 탈출한 중국인 린씨에 따르면, 4성급 호텔인 KB호텔 바로 옆에서 로맨스 스캠이 벌어졌다./VOD

린씨에 따르면 이곳 웬치에는 50여 개국 출신이 모여 있었는데 중국인이 가장 많았다. 이 웬치는 중국에서 사기 범죄를 벌이다 징역 선고를 받은 직후 캄보디아로 도주한 범법자 쉬아이민(徐愛民)의 소유로, 이 웬치가 위치한 길의 공식 명칭도 ‘쉬아이민로(路)’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쉬가 이 호텔 바로 옆 건물에서 범죄 조직을 구성해 전 세계 국민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이고 있다며 제재를 발표했다.

이곳 웬치에 감금된 사람들은 싱가포르·말레이시아·유럽·미국 내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로맨스스캠 범죄를 벌였으며 매일 평균 12시간씩, 때로는 18시간씩 일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린씨와 동료들은 테크노 비트에 맞춰 상상의 지폐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향으로 손을 뻗는 ‘돈을 빼앗는 춤’을 췄고, 사기를 잘 치기 위한 구호까지 외쳤다고 한다. 참여를 거부하거나 성과가 낮은 사람들은 얼차려를 받았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해변 4번 국도 바로 아래에 위치한 대규모 웬치. 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이는 이 조직은 자신들이 5G 통신·가상현실 사업체 ‘크라운 하이테크 산업단지’라며 수천 명을 끌어들였다./VOD

시아누크빌 해변에서 동쪽으로 2.8km 거리, 프놈펜에서 시아누크빌로 이어지는 4번 국도 바로 밑에 있는 ‘크라운 하이테크 산업단지’ 역시 대규모 웬치로 지목됐다.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을 잇는 4번 국도 아래 위치한 이곳에는 수천 명이 감금돼 보이스피싱 범죄에 동원됐다. 구글 지도상 수십 개의 건물이 밀집해 있지만, 이 단지에 감금되어 있던 중국인 장모씨에 따르면 출입구마다 무장 경비원이 배치돼 일반인은 접근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구글맵상 ‘크라운 하이테크 산업단지’로 표시되는 건물의 사진./르몽드

장씨는 “각 건물의 출입구와 엘리베이터마다 경비원이 여러 명씩 배치돼 있었고, 건물마다 30~40명이 감금돼 있었다”며 “서로 다른 건물 간에는 소통이 불가능했다”고 했다. 경비원들은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웬치를 순찰했다고 한다.

장씨가 ‘크라운 하이테크 산업단지’에서 감금되어 있었다는 건물의 조감도./VOD

장씨는 페이스북에서 ‘크라운 하이테크 산업단지’에 대한 중국어 홍보 게시물을 보고 현지에 갔지만, 실제로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로맨스스캠 단지’였다고 말했다. 해당 게시글은 ‘크라운 하이테크 산업단지’가 시아누크빌 항구 인근에 위치한 10억 달러 규모의 300제곱미터 규모 개발 단지로, 첨단 기술 인큐베이션 센터·제품 전시관·아카데미·디지털 결제 및 통화·5G 통신·가상현실 분야의 혁신을 촉진하도록 설계된 기업 클러스터라고 홍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산업단지’에 도착한 장씨는 한국인·중국계 미국인·일본인 등을 대상으로 하루에 최소 6명과 각각 60개 이상의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했다. 할당량을 체우지 못하면 팔굽혀펴기·뜀뛰기 등 기합을 받았다. 화장실은 5분 안에 다녀와야 했는데 1분이 초과 시마다 벌금 10달러를 내야 했다. 장씨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했다고 현지 언론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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