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손” “지화자 좋다”…‘전통나눔 할아버지’ 따라해 보세요~
문체부·국학진흥원, 올해 첫 시범사업
은퇴한 어르신들에게 새 일자리 제공
전문교육 받고 전통 문화·예절 지도
“아이들과 마음 나누니 삶이 따뜻해져”

“뒷도가 나오게 해주세요!”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편을 나눠 섰다. 목청껏 응원도 한다. 아이들의 간절한 시선이 향한 곳은 윷가락 네개다.
경남 함양 유림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 윷놀이 한판이 벌어졌다. 우리 전통놀이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준 이는 바로 김창교씨. 올해 73세인 김씨는 ‘전통나눔 할아버지’로 학교에 파견됐다. 전통나눔 할아버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올해 시작한 시범사업으로, 남성 어르신이 어린이에게 전통문화와 예절을 알려주는 세대간 소통 프로그램이다. 은퇴한 어르신에게는 새로운 일터를, 아이에겐 할아버지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을 선물한다.
초등학교 교사이던 김씨는 2015년 은퇴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갈 곳 없는 존재처럼 여겨져 우울감이 찾아왔다.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예절지도사자격증도 따고 구연동화를 하는 법도 배웠다. 전통나눔 할아버지가 돼 다시 교단에 오르자 그의 얼굴에 맑은 빛이 돌았다.
“어른을 만났을 땐 ‘배꼽 손’으로 인사해요. 남자는 왼손이 위로,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게 손을 모아볼까요?”
김씨가 초등학생 7명과 유치원생 5명 앞에 섰다. 선생님 대신 할아버지가 수업에 나서자 신기한지 아이들 눈이 반짝인다. 김씨가 “배꼽 손”이라고 선창하자 두손을 모은 아이들이 허리를 숙인다. 할아버지를 보느라 고개는 바짝 들려 있다. 김씨가 “머리까지 함께 숙이는 것”이라고 덧붙이자 그제야 시선이 땅으로 향한다. 곧잘 따라 하는 아이를 보며 김씨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린다.
“오늘은 온 가족이 모여 즐길 수 있는 전통놀이를 배워볼 거예요. 윷놀이를 해본 사람 손 들어볼까요?”

김씨가 윷판을 펼치며 묻자 2명만 손을 들었다. 김씨는 사명감을 느낀 듯 우렁찬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윷놀이 규칙을 소개할 땐 마치 구연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판소리처럼 옛 가락을 붙여 말하거나 근엄한 목소리로 ‘업기’ 같은 규칙을 알려주자 아이들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윷판을 벌일 차례. 전통팀과 나눔팀으로 나뉜 아이들이 응원을 한다. 김씨도 “지화자, 좋다” 하며 기운을 북돋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힘껏 던진 윷가락이 판 밖으로 나가면 탄식이 터졌다. 40분이 쏜살같이 지나고 어느덧 나눔팀의 마지막 말이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나눔팀이 윷가락을 던졌고 전통팀은 ‘뒷도’가 나오길 간절히 바랐다. 결과는 ‘걸’. 빨갛게 상기된 아이들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했다.

뜨거웠던 놀이가 끝나고 간식 시간이 왔다. 김씨는 어른이 먼저 먹은 다음 식사를 시작하라는 전통예절도 알려준다. 이긴 아이들은 “말을 업어서 이동하니 순식간에 집으로 돌아왔다”며 즐거워했고, 진 팀은 “이번엔 져서 재미가 없었지만 가족과 다시 해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할아버지 선생님이 와서 좋았다”는 말도 수줍게 덧붙였다. 교구를 정리하는 김씨에게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는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신기한 게 수업을 하고 나면 오히려 힘이 솟아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 저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이 마음이 어려져서 그런가 봐요.”
전통나눔 할아버지는 2009년 처음 시행된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의 성과를 이어받아 전통놀이를 교육하기 위해 마련됐다. 여성 어르신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세대간 정서를 나눈 것처럼, 이번엔 남성 어르신이 놀이를 통해 세대를 잇는다. 시범사업임에도 경쟁률이 4대1에 달할 만큼 지원자가 많았다.
김씨도 함양에서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하는 지인에게 보람을 느낀다는 말을 듣고 참여하게 됐다. 5월에 선발된 할아버지 총 44명은 2박3일간의 합숙 훈련과 전통놀이 시연 교육 10회를 받으며 전문성을 길렀다. 이들은 각각 8월부터 12월12일까지 전국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에 40회 이상 출강하게 된다. 김씨는 “전직 경찰, 목사, 회사원처럼 수업을 해보지 않은 이도 많이 지원했다”며 “다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니 삶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고 했다.
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전통문화 교육에 열정을 가진 만 56세부터 74세까지의 남성이면 누구든 전통나눔 할아버지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며 “본 사업이 진행되면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누리집에 올라오는 공고를 확인해 지원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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