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화폐 이야기] 21. 10원빵이 일깨운 동전 속 이야기 가치

강승구 2025. 10. 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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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빵이 불러낸 향수의 힘
규제·창의의 조화 ‘K-화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주의 인기 관광지 ‘황리단길’에서 10원빵을 들고 기념촬영하는 한 관광객의 모습 [조폐공사 제공]


경주 황리단길에서 시작된 10원빵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된 적이 있었다. 다보탑이 선명하게 새겨진 10원 동전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 빵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화폐 도안 무단 사용이라는 법적 문제로 한때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2024년 9월 한국은행이 화폐 도안 사용 규제를 완화하면서, 10원빵은 합법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10원빵이 이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기억’에 있다. 오늘날 10원 동전은 실질적으로 유통이 거의 중단된 화폐다. 실제로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새로 발행되는 동전보다 회수되는 동전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하지만 실용성이 사라졌다고 그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기억 속에서 10원 동전 속 다보탑 문양은 여전히 선명하다. 10원빵은 바로 이 잊혀가던 친숙함과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간식이 아니라, 잠들어 있던 추억을 다시 맛보는 경험이었다.

10원 동전에 이런 감성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다른 동전들은 어떨까? 100원 동전에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이, 500원 동전에는 고고한 기품과 장수를 상징하는 학의 자태가 새겨져 있다. 이는 단순한 화폐 도안이 아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역사와 가치를 함축한 문화적 코드다.

상상해 보자. 100원 동전 모양의 ‘장군 쿠키’를 받아 든 아이가 “이순신 장군이 누구예요?”라고 묻는 모습을. 500원 동전의 학이 그려진 ‘학빵’을 맛본 외국인 관광객이 그 아름다움을 SNS에 공유하며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모습을. 화폐 도안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맛보고, 느끼고, 배우게 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살아있는 교육 도구이자 문화 홍보대사가 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매일 ‘살아있는 박물관’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만 원권의 세종대왕, 오만 원권의 신사임당은 그저 물건값을 치르는 돈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그 얼굴을 마주하며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확인한다. K-드라마와 K-팝 등 다양한 K-콘텐츠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지금, 우리 화폐 디자인은 가장 한국적인 매력을 담은 ‘K-굿즈’로 재탄생할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한국조폐공사가 화폐 제조 시 발생하는 부산물로 ‘돈볼펜’, ‘돈방석’, ‘돈달력’ 같은 화폐굿즈를 만든 시도는 이러한 가능성을 엿본 첫걸음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화폐의 신뢰성과 품격을 위해 도안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할까, 아니면 국민의 창의성을 믿고 활용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할까?

10원빵이 정부의 기획이 아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어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국민은 이미 우리 화폐 디자인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싶어 한다. 물론 위조 가능성을 차단하고 화폐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획일적으로 막는 것은 답이 아니다.

한국조폐공사 화폐제품판매관 공식쇼핑몰을 통해 판매중인 ‘2025년 현용주화 6종 세트’ [조폐공사 제공]


오히려 화폐 도안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교육 자료는 화폐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애정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 미국의 25센트 기념주화 수집 열풍이나 유로화 디자인을 활용한 각국의 기념품들은 엄격한 규제 대신 합리적인 가이드라인 안에서 국민이 화폐 문화를 즐기도록 했을 때의 긍정적 결과를 보여준다.

현실적인 해법은 규제와 자유의 조화에 있다. 조폐공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위변조 방지 기술을 바탕으로 화폐의 품격을 지키는 공식 굿즈를 제작하고, 한국은행이 공공성을 감독하는 중심축을 세우는 것이다. 동시에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일정한 기준과 심사를 거쳐 상품화될 수 있도록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공공의 안정성과 민간의 혁신이 만날 때, 우리의 화폐 문화는 훨씬 더 풍성해질 것이다.

다보탑 문양이 새겨진 노트, 이순신 장군의 실루엣을 담은 북마크, 학이 그려진 에코백은 실용성을 넘어 특별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자신만의 개성과 의미 있는 소유를 중시하는 현세대의 소비 트렌드와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10원빵이 던진 질문은 결국 실물 화폐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디지털 화폐가 금융의 중심이 되는 시대, 실물 화폐와 관련 기관들은 어떤 가치를 제공하며 존재해야 할까?

그 해답은 화폐를 단순한 ‘돈’이 아닌, 국민의 신뢰와 감성을 담은 ‘문화적 공공자산’으로 재정의하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 국민이 사랑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화폐 문화를 조성하는 것, 과도한 규제의 벽을 넘어 합리적인 가이드라인 속에서 국민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전환 시대에 실물 화폐 기관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미래 비전이다.

10원 동전의 다보탑, 100원 동전의 이순신 장군, 500원 동전의 학. 우리 동전 속에 잠들어 있던 모든 이야기가 이제 국민의 일상에서 새롭게 피어날 때다. 화폐는 여전히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매개체다.

우진구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장


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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