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선생이 올여름 해운대를 봤다면 [전국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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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의 명칭은 통일신라시대 사상가인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올해는 해운대해수욕장이 쪼개졌다.
또 국가 및 관할 지자체에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해수욕장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종합적인 시책을 세우고 추진'하라는 책무까지 부여하고 있다(해수욕장법 제4조). 하지만 민간사업자에게 공공재인 해수욕장을 넘겨준 대가는 여름 성수기 최고의 피서지로 꼽히는 해운대에 누군가 '유치권'을 주장하는 일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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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의 명칭은 통일신라시대 사상가인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경남 합천군 가야산으로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곧게 뻗은 해변과 그 끝자락 나지막이 자리 잡은 동백섬.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매료된 최치원은 이곳에 자신의 또 다른 호인 ‘해운(海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 년 뒤 후손들은 국정이 혼란하던 시기, 해운대를 찾은 최치원이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흠뻑 반했을 거라 추측할 뿐이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이제 부산의 주요 관광자원이 됐다. 1.5㎞가 넘는 긴 해변, 폭넓은 백사장은 연간 1000만명에 달하는 방문객을 품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올해는 해운대해수욕장이 쪼개졌다. 전체 해변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모래사장에 돌연 울타리가 둘러쳐지더니 ‘이벤트 존’이 들어선 것이다. 이 공간에는 DJ 워터파티장, 강철부대 체험장, 각종 푸드트럭이 설치됐다. 해운대구가 방문객에게 색다른 관광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며, 여름 성수기 두 달 동안 민간업자에게 해변을 내준 결과였다.
민간사업자에게 해수욕장 넘겨준 대가
결과는 더 황당했다. 매일 최고기온을 갈아치우며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올해 여름, 땡볕 아래 돈 내고 유격훈련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 리는 만무했다. 매일 밤 열린다던 DJ 워터파티는 소음 민원으로 조금씩 음악 소리를 낮추더니 흥이 사라지고, 관객도 줄어들었다. 상인들의 웃음기도 사라졌다. 해수욕장 운영권을 따낸 민간업자와 전대 계약을 맺고 입점한 소상공인들이었다. 극성수기에 접어들어도 방문객 추이에 변화가 없자, 이들은 아예 영업을 중단했다. 시설물에는 살벌한 문구를 곁들인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나붙었다.
공공의 자산인 해수욕장은 누구나 즐겨야 한다. 이 규칙을 꼭 지키라고 만들어진 법이 바로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해수욕장법)’이다. 해수욕장을 특정 집단이 사유화하거나 돈벌이로 사용해왔던 과거가 이 법률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해수욕장법 제3조 1호는 ‘해수욕장은 모든 국민의 자산으로서 소중하게 보전되고 현재와 미래의 세대를 위하여 지속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규정한다. 또 국가 및 관할 지자체에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해수욕장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종합적인 시책을 세우고 추진’하라는 책무까지 부여하고 있다(해수욕장법 제4조). 하지만 민간사업자에게 공공재인 해수욕장을 넘겨준 대가는 여름 성수기 최고의 피서지로 꼽히는 해운대에 누군가 ‘유치권’을 주장하는 일로 되돌아왔다.
해운대는 화려함의 상징이다. 달맞이언덕 앞에는 101층짜리 마천루가 독점적 조망권을 자랑하듯 우뚝 섰고, 맞은편에는 초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찬 마린시티가 마주 보고 있다. 최치원이 이 풍광을 봤더라면 ‘바다의 구름, 해운’이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은 건, 드넓은 백사장과 파도. 그 자연을 채우는 시민들이다. 바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나 해수욕장을 찾아 저마다의 바다를 즐기는 순간이 진짜 해운대의 모습이 아닐까.
윤파란 (부산MBC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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