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 생존법…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노영우의 스톡피시]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5. 10. 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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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이 세계경제 상수로 자리 잡으며 향방에 따라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2025년 10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주가는 3.6% 급락했다. 같은 날 국제유가도 4.2% 떨어졌고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도 급락했다. 한국 외환시장도 유탄을 맞아 원·달러 환율이 1430원까지 급등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시장이 요동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미중 관세정책의 충격에 특히 취약한 곳이 한국이다. 우리경제가 충격을 버텨낼 수 있을까.

강해진 중국에 당황하는 미국
양자 간 실력 차가 크면 싸움도 커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력이 비등할 때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그 여파도 만만찮다.

2019년 6월 트럼프의 도발로 촉발된 미중 무역전쟁 당시만 해도 중국은 수세에 몰려 곤혹스러워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대중국 무역제제와 관세폭탄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수세적 위치에서 국제 여론에 호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자유무역을 역설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도 연출됐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중국은 당시와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한 내성을 키웠고 IT 산업의 핵심 원자재인 희토류로 미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중국이 보유한 미국 채권으로 시장을 교란시킬 수도 있다. 미국의 관세폭탄을 피하기 위해 막대한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굴복한 유럽 일본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국의 압박과 이에 맞서는 중국의 대응으로 세계 경제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글로벌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시장까지 소용돌이에 몰아넣는 현 상황은 불가피해 보인다.

깊어지는 한국의 고민
한국의 고민도 깊어진다.

2024년 기준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고 미국은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무역 흑자를 보는 나라다.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미중간 우호세력 확보에 열을 올릴 것이다.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국가에서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두 나라는 우리의 핵심 파트너지만 우리나라와의 무역 구조는 양국이 사뭇 다르다. 여기서부터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와 중국 간의 무역은 동종 업종간의 무역이 많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국제상품분류 기준인 HS 6단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중국에 가장 수출을 많이 하는 품목은 메모리 반도체로 수출금액이 총258억 달러에 달한다.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158억 달러를 수입해 수출대비 수입비율이 61.3%에 달한다. 같은 업종에서 수출도 많이 하지만 수입도 많이 한다는 얘기다.

컴퓨터 및 주변기기의 경우 우리나라는 중국에 242억 달러를 수출하는 동시에 223억 달러를 수입해 수출대비 수입 비율이 92%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컴퓨터 부품을 수출하고 완성품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같은 업계의 공급 망에서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미국과의 무역구조는 다르다. 2024년 우리나라가 미국에 가장 많이 수출한 품목은 자동차(1500-3000cc)로 수출액이 총 108억 달러다. 이 품목에서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금액은 4억9000만 달러로 수출-수입 비율이 4.5%에 불과하다. 컴퓨터와 주변기기의 대미 수출은 82억 달러이지만 수입은 1억3600만 달러로 수출-수입비율은 1.7%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원유와 프로판 천연가스 등을 200억 달러 넘게 수입하지만 이들 분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경우는 천연가스 850만 달러가 유일하다.

산업별 품목별로 대응방안 수립을
중국은 동종업종간 교역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미국은 이종업종간 교역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식이다. 중국과는 동종업종에서 분업과 경쟁을 하는 관계이고 미국과는 서로 다른 업종에서의 비교우위를 통해 서로가 약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교역을 하는 관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시장 어디도 놓칠 수가 없다. 중국과의 교역이 위축되면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입게 되고 미국과의 교역이 위축되면 우리나라가 비교우위가 없는 물건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미중간의 무역 전쟁이 격화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우리나라는 미중간의 무역전쟁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보다는 철저하게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이슈는 최대한 다자간 논의 틀에서 해결하고 미중과 직접적으로 담판을 짓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금융 외환분야는 실물경제와 달라
금융 분야는 실물경제와 다른 특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 간 힘의 차이가 뚜렷하다. 우리나라는 미국 달러 영향권아래 있다. 국제결재은행(BIS)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거래 비중이 88%인 반면 위안화는 7%에 불과해 달러 비중이 위안화의 10배가 넘는다. 한국 외환시장에서도 원·달러 현물 환거래량은 일평균 150억 달러, 원·위안화 거래량은 40억 달러로 원·달러 거래가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원·달러 환율은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와 직결돼 있다. 대외신인도의 변화에 따라 한국에 들어온 외국자본의 움직임이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금융·외환시장은 달러의 움직임에 훨씬 더 민감하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금융·외환시장에서 미국에 의존적인 구조를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시장구조 때문에 우리나라 거시경제정책은 독립적이지 못하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는데 우리가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펴기는 어렵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큰 방향에서 미국의 금리 정책을 따라가면서 미세한 조정을 펴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방향이다.

쪼개서 대응하는 것이 살길
환율의 흐름도 미국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방향은 달러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외환시장의 큰 충격에 대해서는 정책을 통해 조정해나가는 정도의 독립성만 유지된다. 거시경제정책의 한계로 인해 우리나라는 미시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실리를 챙겨야 한다. 금융과 실물 각 섹터별로 대응방안을 각각 수립하는 것이 유리하다. 특히 기술에 기반을 둔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 우리나라 제품의 질을 높이는 것이 세계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1970-80년대 우리나라는 만성적으로 달러가 부족한 나라여서 수출 과정에서 가격을 낮추거나 인위적인 환율 조정을 통해 수출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200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이런 방식의 정책은 가능하지 않다. 가격을 낮추면 덤핑으로 제재를 당하고 환율 정책을 과도하게 펼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높다.

미중 무역전쟁 국면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길은 금융 실물 부분을 나누고 실물 부분도 이슈를 쪼개서 각 분야별로 대응하는 방안을 찾는 길이다. 각 분야에서 실질적인 산업경쟁력을 높여 외풍이 닥치더라도 타격을 입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규모 개방경제에 닥친 숙명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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