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토미 희대요시? 엑스맨인가

긴 연휴는 무언가를 잊기에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다. 여의도 정치 입장에서 유권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준 게 있었다면 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재개된 시점은 이제까지의 정치적 맥락을 ‘리셋’ 혹은 ‘덮어쓰기’ 하기에 안성맞춤인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인들은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여당의 사법부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 ‘4인 회동설’ 등 사법부를 향한 다소 엉성한 문제제기는 집권세력 내에서도 우려를 샀다.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거친 공격은 사법개혁의 당위를 웅변하기보다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해 중국식 독재를 하려는 것’이라는 억지 프레임의 근거를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따라서 연휴가 끝난 뒤 여당이 취해야 할 합리적 태도는 조희대 대법원장 논란을 사법개혁 일반 이슈로 전환하고 국정감사 일정 전반을 민생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권자가 연휴 직후 본 것은 그 전과 사실상 다를 게 없는 장면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관례대로 인사말만 하고 이석해도 되느냐로 시작된 국정감사장의 신경전은 난장판으로 이어졌다. 여당 의원들이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관련 질의 혹은 주장을 한 맺힌 듯 내놓는 와중에,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자신이 준비한 ‘조요토미 희대요시’ 인쇄물을 들고 “친일 사법부” 음모론을 주장했는데, 사실관계가 잘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4인 회동설’을 떠올렸을 것이다.

‘4인 회동설’ 연상시킨 국감 난장판
물론 조희대 대법원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는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차원인가? 여당이 조희대 대법원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것처럼 되면 ‘보복’ 프레임이 형성된다. 연휴 직후 대법원장을 불러다놓고 이 대통령 관련 재판 얘기를 소재로 밀어붙인 여당의 국정감사 전략은 이 프레임 속으로 여당이 스스로 걸어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앞서 지적대로 사법개혁 일반 이슈를 앞세웠다면 어땠을까? 대법관을 증원하면 대법원 청사를 새로 지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법관 1명당 사용하는 집무실 넓이가 약 70평에 이른다는 언론 보도 내용은 맞는지, 조희대 대법원장은 왜 업무추진비 관련 증빙과 배우자와 떠난 국외 출장 관련 보고서 등을 부실하게 제출했는지 등부터 차근차근 지적해나갔다면? 판사들의 고압적 태도와 일탈행위 등에 대한 대법원의 무관심 또는 솜방망이 징계 등도 자정능력이라는 차원에서 충분히 엄중하게 제기해볼 만한 문제다.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제대로 이끌고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곧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논점으로 이어진다.
기승전 ‘이 대통령 재판’ 그림을 만들었으니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문제는 그러한 재판을 받는 국민 중 한 사람의 문제로서 맨 끝에 다뤄지는 정도면 족했다. 그러나 국정감사 첫날의 소동은 이 대통령 재판 논란이 이 모든 문제의 맨 앞에 놓인 것처럼 되었다. 이제 뒤에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이 대통령 재판 논란의 종속변수가 되는 그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애초에 이 대통령 선거법 재판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대법원은 어찌 됐건 법관이 법과 양심에 근거해 판단했다는 논리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외부의 음모적 개입이 있었거나 절차가 틀렸다면 이 논리는 깨진다. ‘4인 회동설’ 제기와 ‘전산 로그 기록 확인’ 주장이 여당에서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골적 정치 개입의 음모가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극단적 상황을 상정하면 더 이상의 논의는 불필요해진다. 극단적 가정은 나중으로 미뤄놓고 상식적 시나리오부터 상상해보자.
대법관들은 대선 후보 등록일이 임박한 시점에 유력 대권 주자의 사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유권자의 실질적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 결과가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든 무죄 확정이든 말이다. 이는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서면의 내용으로도 일부 확인된다.
그렇다면 신속한 심리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절차’는 ‘속도’에 희생됐을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사건 관련 기록을 언제 어떤 수단으로 봤는지가 분명치 않거나 오락가락하는 것은 이 때문일 수 있다. 깊은 숙고 없이 그저 유죄 판단인 1심 판결과 무죄 판단인 2심 판결 중 하나를 선호에 따라 택하는 식으로 심리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파기환송 판결의 반대의견 대목을 보면 더 커진다. 반대의견을 제출한 두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내의 논의를 보석 세공에 비유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보석 세공에 성공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여당 일각의 시각처럼 사법부 수장이 ‘내란 세력’과 결탁했는지를 따져야 하는 문제로 본다면 이 사안은 정파화된다. 사법부를 상대로 여당이 정파적 공격을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옳지도 않고 공학적으로도 득보다 실이 크다. 문제의 핵심은 내란 척결이 아니라 민생에 있다. 여당이 정파적 쟁투에 몰두하는 것은 집권세력이 민생을 돌보지 않는 모습으로 비치게 한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사법부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민생과 연관돼야 설득력이 생긴다. 가령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재판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그럴듯한 외피를 두르고 등장한 편의주의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재판에서도 ‘소송지휘권’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모습이 법조 전반의 엘리트적 속성이라는 맥락과 결합하면 일반 국민 역시 자기 사건에서 상식과 동떨어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만나는 경우가 빈번해질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 즉 사법개혁을 충실히 챙기는 것이 민생을 돌보는 길이다.
속도에 희생됐을 절차 안 보고 ‘내란’ 구호만
그러나 민생 행보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는 지금 여당은 상대에게 그럴듯한 주장의 근거만 제공하고 있다. ‘강경파에 끌려다니는 이재명 정권’ 서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이재명 대통령이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여당 내 강경파를 통제하지 못해 주도권을 잃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최근 대북정책에 대한 대통령실, 국방부와 통일부의 서로 다른 메시지 등도 비슷한 구도 속에 욱여넣고 있다. 자주파 대 동맹파 구도에서 정권 전체가 더 강경파적 면모인 자주파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는 체감하지 못하지만 여의도는 이미 지방선거 준비 모드다. 이런 사정이 여당의 사법부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민해봐야 한다. 어떤 구도일 때 유권자가 집권세력에 더 힘을 실어주고 싶겠는가? 일 잘하는 집권세력 대 중국 타령만 반복하는 컬트 집단 구도일까, 아니면 강경파적 행보와 메시지로 서로 핏대 세우는, ‘겨 묻은 개, 똥 묻은 개’ 구도일까? 간단한 문제 아닌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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