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성지’ 식당, 로고 바꿨다가 1800억 증발…대통령도 날뛴 사연은 [오찬종의 매일뉴욕]

오찬종 기자(ocj2123@mk.co.kr) 2025. 10. 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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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종의 매일뉴욕 열여덟 번째 이야기
크래커 배럴의 매장 내부 분위기 모습. 자료=크래커배럴
미국을 대표하는 브런치 식당이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개입할 정도였는데요. 불매 운동이 확산됐고, 성장률은 8%나 급락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식당은 ‘크래커 배럴(Cracker Barrel)’입니다.

50년간 미국 보수층 사랑을 받아온 사랑방
크래커배럴의 매장 전경. 흔들의자와 같은 미국 시골마을을 연상시키는 소품들이 특징이다. 자료=크래커배럴
Cracker Barrel Old Country Store(일명 ‘크래커 배럴’)은 패밀리 식당과 기념품 가게를 결합한 형태의 매장입니다. 매장 앞 포치의 흔들의자, 벽난로, 빈티지 소품 등 미국 시골 마을을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특징인 곳이죠. 2025년 9월 기준 미국 43개 주에 657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곳입니다.

크래커배럴은 패밀리레스토랑 겸 기념품점으로 1969년에 설립돼 56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레스토랑의 외양 등은 창업자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남부 시골 가게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식당 이름은 1900년대 초 시골 가게에 많았던 나무통(배럴) 모양의 크래커 매대에서 유래했습니다.

캠프파이어 치킨이나 팬케잌 같은 미국 남부식 메뉴가 특징이다. 자료=크래커베럴
메뉴는 전형적인 남부 가정식입니다. 브런치에는 계란, 해시브라운, 사과절임과 비스킷이 제공됩니다디너 시간대는 캠프 요리 풍의 구이가 대표 메뉴죠. 평균 객단가는 약 $15 수준으로 캐주얼 레스토랑보다 낮은 수준의 가성비 브랜드입니다.

이런 특징 덕에 크래커 배럴은 미국 보수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공화당 고객 비중은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보다 30%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로고서 ‘노인’ 빠지자 보수층 분노
크래커배럴의 원래 로고와 바뀐 로고
56년간 사용해 온 상징적 로고는 청멜빵 차림의 노인이 오크통(배럴) 옆에 기대 앉아 있는 이미지(일명 “Uncle Herschel” 또는 “Old Timer”)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8월 크래커 배럴은 로고를 단순화하는 대대적 리브랜딩을 발표합니다. 새 로고는 기존의 노인 이미지를 제거하고, 노란 배경 위에 “Cracker Barrel” 글자만 배치하는 형태였죠. 이를 포함한 리브랜딩 에 7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새 로고 발표 직후부터 소비자들, 충성 고객 층, 보수계 여론 등에서 강한 반발이 일었습니다. 특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던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과 감성적 팬심을 무시했다는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일부 보수 성향 인플루언서들은 크래커배럴이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 탓에 로고 속 남성을 삭제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크래커 배럴의 바뀐 인테리어. 클래식함을 버리고 흰바탕에 모던함을 추구했다. 사진=WSJ
로고 변경과 함께 진행된 인테리어 리모델링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매장 내 소품을 제거하고 식당 공간을 정돈하는 등 현대화를 시도했지만, 고객들은 이를 특유의 매력 훼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전의 촘촘한 장식, 암갈색 목재, 빈티지 감성을 기대하던 고객에게 흰 바탕의 세련된 분위기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로고 발표 이후 크래커 배럴은 극심한 고객 반발과 투자자 불안 속에 시가총액이 1억 4000만 달러 이상 증발했습니다. 주가는 올해 들어 7% 이상 하락했죠. 로고 변경 이후, 매장 방문자 수는 8% 감소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참전 “깨어있으면 망한다”
크래커 배럴을 비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게시글. 자료=트루스소셜
논쟁에 결정적인 기름을 부은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크래커 배럴은 옛 로고로 돌아가야 하며, 고객 반응(여론조사)에 근거해 실수를 인정하고, 그 어느 때보다 회사를 더 잘 경영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그들이 카드를 제대로 쓴다면(적절히 대응한다면) 10억 달러 상당의 무료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쉽지는 않지만 좋은 기회”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대규모 기자회견을 열어 크래커 배럴을 다시 한번 승자로 만들어 보라”며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미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덧붙였습니다.

백악관은 공식 엑스(X) 계정
트럼프 개인뿐 아니라 정부 기관인 백악관까지 등판했습니다. 공식 엑스(X) 계정에 ‘깨어있으면 망한다’는 글과 함께 위 이미지를 올렸습니다. 크래커 배럴의 리브랜딩 슬로건 ‘깨어있자’를 비튼 것이죠. 함께 올린 이미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크래커 배럴을 상징하는 오크통 옆에 앉아있는 패러디 포스터였습니다.
백기투항 했지만...후유증은 아직
크래커배럴 최근 한 달 주가 추이. 자료=구글스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에 크래커 배럴은 결국 백기투항했습니다. 백악관의 게시글이 올라온지 몇시간만에 “고객들께서 공유해주신 의견과 사랑에 감사드린다. ‘올드타이머’가 돌아온다”며 로고 변경 계획 취소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화’를 위해 마련한 새 로고는 공개 약 1주일 만에 폐기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7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자연스럽게 폐기됐죠.

하지만 아직까지 후유증은 이어지는 중입니다. 최근 4분기 실적발표에서 주당 순이익(EPS)이 70센트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시장 예상치 80센트를 크게 밑도는 것입니다. 크래커 배럴은 연간 총매출 전망을 33억5000만달러~34억5000만달러로 제시했습니다. 이 역시 애널리스트 예상치 35억2000만 달러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동일 매장 내 고객 수도 4~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이같은 부진에 실적발표 직후 크래커 배럴 주가는 장중 3.16% 하락한 뒤 시간외거래서 10% 가까이 하락했습니다.

줄리 마시노 크래커 배럴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이제는 진정한 경험 제공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크래커 배럴은 미국 보수층의 사랑방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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