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충동, 우울증 치료하려면 먼저 대변 검사부터 하라고?
사람의 감정이 장(腸) 속에 있는 미생물들의 조절을 받는다는 최근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우리 조상들이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 부르며 "쾌변하면 근심이 풀린다"고 했다는 해석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혁명적' 발견이다.

장내미생물은 행복감을 느끼는 데 관여하는 세로토닌의 90%를 생산한다. 도파민, GABA((감마-아미노부티르산, γ-aminobutyric acid), 아세틸콜린 등의 신경전달물질을 직접 생산한다. 또한, 그 대사 경로를 조절함으로써 감정과 스트레스 반응,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장과 뇌는 미주신경, 면역 신호, 호르몬을 통해 양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 '장-뇌 축(軸, gut-brain axis)'이라 부른다.
실험 쥐의 장내미생물을 바꾸면 불안 행동이 줄거나 사회성이 증가하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었다. 인간 연구에서도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한 집단에서 우울감이 줄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낮아진다는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장내미생물이 단순한 소화 보조자가 아니라 감정과 인지의 핵심적 조절자임을 알려 준다.
장 속에 있는 미생물 역할에 대한 혁명적 발견
이제 장은 "제2의 뇌"가 되었다. 장내미생물에 대한 최근 발견은 오래된 심리학적 담론에 낯설고도 충격적인 다음 질문을 던진다.
"무의식이란 뇌 속 깊은 층위만의 산물이 아니라, 장 속 미생물에 의해 조율되는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20세기 초, 감정과 행동의 많은 부분이 의식되지 않는 심리적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적 충동과 억압된 욕망을 무의식의 핵심 동력으로 보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리비도(libido)라는 생물학적 에너지의 흐름으로 설명했다. 그는 리비도를 자율신경계 수준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스트레스, 분노, 우울 같은 감정 상태가 미생물 변화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감정의 충동, 무의식의 발현은 신경계뿐 아니라 미생물 구성과 활성이 만들어내는 집합적 패턴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프로이트가 관찰했던 억압된 충동은, 미생물들이 신경전달물질을 조율하여 뇌의 충동 억제 회로를 바꾸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불안, 특정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는 심리적 갈등 결과일 뿐만 아니라, 장내미생물 불균형이라는 생물학적 배경을 가진다는 해석이다.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 개인을 넘어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을 이야기했다. 개인 무의식 너머에 인류 공통의 심리 구조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고대 인류의 기억과 상징을 내면에 저장하고 있으며 이를 '집단 무의식'이라 명명하였다. 융은 집단 무의식을 마치 인류 정신의 DNA 같은 '유전자'처럼 보았다. 거기에 내재한 원형(archetype)이 꿈, 신화, 예술, 종교 등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프로이트, 융도 알지 못했던 무의식의 또 다른 세계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충격적인 발견은, 이 '기억'이 단지 심리학적 혹은 영적 차원의 현상이 아니라 미생물이라는 미시적 생명체의 집단 활동과도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집단 무의식은 인류 정신의 원형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함께 길러온 미생물 생태계의 집단적 산물이다.
융의 집단 무의식을 재해석해 본다.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공유한 것은 상징적 패턴뿐 아니라, 미생물 생태계와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다.
미생물군은 모체에서 아이에게 전해지고, 환경이나 식습관에 의해 세대를 거치며 유사하게 전해진다. 그러므로 세대를 초월한 심리 패턴이 미생물로부터 비롯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수십만 년 동안 인류의 장 속에 공존한 특정 미생물들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감정 패턴을 뇌에 심어왔을지도 모른다. '공포의 원형'이나 '모성의 원형'은 단순한 심리적 형상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통으로 유지해 온 미생물-신경 네트워크의 진화적 산물일 수 있다.
장내미생물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감정, 스트레스 반응, 사회적 행동 패턴 등에 깊숙이 개입한다면, 이들이 융의 집단 무의식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비슷한 미생물 구성은 비슷한 스트레스 반응이나 정서적 경향을 만든다. 융은 상징, 꿈과 신화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집단 정서를 주장하였다. 문화・지리・식습관이 유사한 공동체는 유사한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공유한다. 따라서 유사한 미생물 생태계에 기반한 공통된 감정에서 집단 정서가 나타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프로이트의 개인 무의식이든, 융의 집단 무의식이든 철저히 '정신적'이거나 '상징적' 영역에 국한돼 있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관점은 무의식을 심리학적 은유에서 생물학적 실체로 끌어내린다.
무의식은 뇌의 그림자라기보다, 인간과 미생물이 함께 직조한 정서적 생태계인 것이다. 인간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개체에서 수조의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다. 무의식의 비밀은 이제 그 공동체의 언어 속에서 풀려나고 있다.
누군가 이유 없이 불안할 때, 프로이트 관점은 무의식의 억압이 깨어났다고 해석한다. 융의 관점은 집단 무의식의 어떤 원형이 활성화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가 최근 항생제를 복용해 장내 세균 균형이 깨졌고, 그로 인해 세로토닌 생산이 줄어들어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자극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꿈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꾸는 꿈의 상징은 심리적 억압과 집단 원형의 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장내미생물이 밤 동안 내분비와 신경 화학을 조율하면서 나타나는 신호일 수 있다. 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곧 장내 생태계가 들려주는 은유적인 신호일 수도 있다.
우울, 불안, 자폐, 충동 심리치료에 등장할 대변 검사
이 혁명적 통찰은 실제 치료에도 파장을 미친다. 우울증·불안·자폐 심지어 자살 위험까지 장내미생물과의 연관성이 보고되고 있다. 대변 미생물 이식, 프로바이오틱스, 식이 조절 같은 방법이 정신 건강에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앞으로는 정신분석 상담과 장내미생물 분석이 함께 진행될지도 모른다. 꿈 해석과 동시에 대변 분석을 하고, 무의식적 갈등 해소와 함께 미생물 균형을 조절하는 통합 치료도 상상해 본다. 프로이트의 소파(Freud's (psychoanalytic) couch)와 현대의 실험실이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결론에 이르니, 이전 간행물의 차의 효능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해석 부분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난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차를 마시면 의식이 평온하여진다. 의식의 평온 아래에는 내 개인 무의식의 평온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집단 무의식의 평온이 있다. 음다(飮茶)는 궁극적으로 내 심연의 집단 무의식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음다는 나를 이루는 신화, 전설, 민화 속 등장 인물들에 찻물을 공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속 등장인물들이 찻물을 마시고 어떤 평형에 이르러 내 마음은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차는 설화로 가득 찬 음료이다. 신화의 음료, 전설의 음료이다. 그리고 차는 내 내부에 들어와 내 무의식 속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들을 적셔 고요하게 한다."(차 오디세이/유영현. 이른아침)
오늘 칼럼에서 나는 신화, 전설, 민화 속 등장인물을 장내미생물로 대체한다.
"차를 마시면 의식이 평온하여진다. 의식의 평온 아래에는 내 개인 무의식의 평온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집단 무의식의 평온이 있다. 음다(飮茶)는 궁극적으로 내 심연의 집단 무의식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음다는 내 장내미생물들에 찻물을 공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내 장내미생물들이 찻물을 마시고 어떤 평형에 이르러 내 마음은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차는 내 내부에 들어와 내 장내미생물들을 적셔 고요하게 한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유영현 디렉터 (yhyoo@d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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