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직캠’처럼 찾아본다는 ‘위문열차’… 환갑 넘어 인기 끄는 까닭은
국군 장병과 함께한
최장수 버라이어티쇼
지난달 23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육군 제73보병사단. 어둠이 내리자 연병장에 설치된 무대 위로 화려한 네온사인이 쏟아졌다. 지상파 음악 방송인가 싶은 무대 배경엔 ‘위문열차’라는 로고가 번쩍였다.

“분명 나쁜 아이는 아니어도 또 틀에 가두면 we break it~.” 홍대 클럽에서나 나올 법한 인기 댄스곡이 울려 퍼졌다. 무대 뒤편에서 등장한 검정 반팔 티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은 사내가 바닥을 구르며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였다. 한눈에 봐도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맨손으로 바닥을 짚고 물구나무서기로 2초쯤 멈추자 장내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전차대대 소속 김재훈 상병. 입대 전에 비보이팀 소속이었다고 한다.
이어 무대에 오른 205여단의 삼인조 팀 ‘쓰리사이즈’는 가수 싸이의 ‘챔피언’과 빅뱅의 ‘붉은 노을’에 맞춰 춤을 췄다. 마이크를 쥔 쓰리사이즈가 “뛸 준비 됐나요!”라고 외치자 장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장내에 모인 800명의 떼창이 귓전을 때렸다.
203여단의 남성 5인조 댄스팀 ‘파이브가이즈’는 제법 요염한 자태로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의 ‘라이크 유 베터’ 등 2곡의 커버 댄스를 소화했다. 난도가 있는 동작까지 칼군무가 이어졌고, ‘텀블링 이어 발차기’ 같은 군인다운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군복 차림이지만, 비니(머리에 달라붙게 쓰는 모자)와 머리핀·수건 등을 이용해 나름의 ‘포인트’를 살렸다.

위문열차는 KFN(옛 국방TV)의 군인 대상 음악 프로그램. 1961년 10월 23일 첫 방송을 시작한 위문열차는 전국 부대를 돌며 1년에 40회 정도 공개방송을 한다. 이날 방송은 3131회로, 11월 9일 내보낼 방송분 녹화가 진행 중이었다. 위문열차는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던 군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출발했지만, 더 이상 군인들만 보는 ‘위문 공연’이 아니다. 끼 넘치는 장병들의 전설적인 무대가 유튜브 등에서 잇달아 큰 화제를 모으며 “아이돌 직캠처럼 찾아보게 됐다” “위문열차를 못 끊게 될 줄이야” 같은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위문열차는 2시간 남짓 찍는데 통상 초대 가수 5~6팀의 공연과 장병들의 장기자랑 코너인 ‘생활관 스타워즈’로 꾸민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받는 건 ‘생활관 스타워즈’다.
대한민국 최장수 버라이어티 쇼
위문열차는 올해로 64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장수 버라이어티 쇼로 꼽힌다.

시작은 라디오 공개방송이었다. KBS 공개홀에서 ‘후라이보이’ 곽규석의 사회로 진행된 첫 방송 때는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가수 패티김·박재란·명국환·김치캣 등이 출연했다. 1970년에는 월남전 위문 공연을 다녀왔다. 2002년부터 TV 방송을 내보냈고 2010년 2500회 공연을 달성해 대한민국 최장수 공개방송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3000회 공연을 달성한 게 3년 전이다. 1960년대 이미자, 1970년대 나훈아, 1980년대 전영록·송창식, 1990년대 조용필·이선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총출동했다. 2010년대 들어서도 아이유·소녀시대·원더걸스·씨스타·비 같은 정상급 가수가 이 무대에 섰다. 무명에 가까웠던 브레이브걸스는 위문열차에 출연해 선보인 ‘롤린’ 무대가 화제가 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군인의, 군인에 의한, 군인을 위한 프로그램인 만큼 과거에는 걸그룹이나 솔로 여가수가 무대에 서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군이 늘어나는 등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출연진 구성도 바뀌고 있다. 위문열차 박민우 피디는 “가능한 한 다양한 가수를 섭외하려고 한다”며 “5팀이라면 걸그룹 3팀, 남성 가수 1팀, 트로트 가수 1팀 등으로 골고루 구성한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도 초대하기 때문에 다양성과 취향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록밴드 크라잉넛의 경우 ‘파이팅 넘치는’ 독립군가를 불러 인기가 높고, 유쾌한 공연으로 유명한 남성 듀엣 ‘노라조’도 단골 초대 가수다.

다만 갈수록 정상급 아이돌 섭외는 어려워지는 추세다. 위문열차 제작팀의 최고 고참인 윤인호 실장은 “출연료가 적은 데다 오지까지 가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요즘은 무대 경험을 쌓으려는 신인 위주로 꾸려가는 편”이라고 했다.
‘뮤직뱅크’ 말고 ‘뮤직탱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매번 ‘대스타’가 발견되는 것처럼, 50만 장병 속에도 주체하지 못하는 끼를 발산할 기회를 엿보는 이들이 숨어 있다. 정상급 아이돌이 사라진 자리를 대체한 게 이들 ‘군인 아이돌’인 셈.
위문열차 역사가 다시 쓰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6월 13일 공군 제17전투비행단 방송 때로 기록된다. 이날 ‘생활관 스타워즈’에 출연한 ‘마그네틱(224만·이하 위문열차 유튜브 조회 수 기준), ‘손오공’(102만), ‘꿈빛 파티시엘’(94만), ‘잘 자요 아가씨’(84만) 팀이 모두 ‘대박’을 터뜨렸다.
댄스는 완벽한 역할 분담, 정확한 안무와 표정 연기로 화제가 됐고, 비주류 장르의 노래도 특유의 감성을 잘 살려내 이른바 ‘댓글 맛집’으로 떠올랐다. 한 유튜버는 해당 영상들에 달린 재밌는 댓글을 정리한 영상을 만들어 원본 이상 조회 수를 올리기도 했다. “휴가·외박 충분한 공군이 저걸 한다? 저건 끼가 감당이 안 돼서 자발적으로 출연한 거다” “동작 하나하나 힘 빡빡에 칼각인 게 좋다” 같은 댓글이다.
이후에도 지난해 9월 5일 육군 제55보병사단에서 열린 위문열차 공연 때 장병들이 걸그룹 에스파의 노래 ‘수퍼노바’를 부른 장면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영상은 유튜브 댓글 편집본 조회 수만 264만회에 달했다.
위문열차도 여군 전성시대?
‘생활관 스타워즈’에 출연한 장병들은 대부분 포상 휴가를 받는다고 한다. 73사단 편에 출연한 3팀도 모두 2박씩 휴가를 받았다. 73사단 문화홍보장교 이강운 대위는 “총 7팀이 지원해 동영상 예선을 거쳐 3팀이 선발됐다”며 “출연한 모든 팀이 여가 시간 등을 활용해 열심히 연습했다”고 말했다. ‘파이브가이즈’는 원래 리더 격인 멤버가 전역하는 바람에 새 멤버를 급하게 충원하는 난관도 있었다고 한다. ‘쓰리사이즈’ 엄윤성 상병은 “군 생활 하는 동안 전우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휴가에 목마른 장병들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역대급 인기를 끈 출연자 중에는 이수경 하사(50사단 121여단)와 박지수 주무관(1군수지원여단)이 있다. 둘 다 여성 직업군인이다. ‘끼를 발산하고 싶어서’ 외에 다른 출연 동기가 있을까. 이 하사의 ‘삐끼삐끼 챌린지’ 쇼츠는 1016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박 주무관은 ‘셀럽이 되고 싶어’ 커버 댄스로 무대를 종횡무진했는데, 2019년 전국노래자랑 용인시 처인구 편에서 독보적인 춤과 표정으로 인기상을 받았다.
지난 7월 육군학생군사학교편 위문열차 때는 ‘생활관 스타워즈’ 3팀 중 2팀이 여성 팀이었다. 현재 여군 비율이 10.8%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위문열차에서 여성 파워가 상당한 셈이다. 윤인호 실장은 “여성 장교·부사관들은 자진해서 군인이 된 만큼 에너지가 상당하다”며 “위문열차가 계속 진화하고 있는 지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위문열차는 피디 4명, 작가 2명을 포함해 약 70명의 스태프가 참여하고 있고, 지미집 1대를 포함해 카메라 6대가 동원된다. 규모만 놓고 보면 공중파 TV 음악 방송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박민우 피디는 “주어진 여건에서 가능한 멋진 음악 방송을 하기 위해 촬영 기술도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도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군 복무 중 자신의 부대에 위문열차가 찾아올 확률은 5% 정도라고 한다. 오늘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위문열차는 출발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美 상무 “미국에 투자 않으면 반도체 100% 관세” 韓 재차 압박
- “부부 간엔 처벌 안 돼”... 혼인 신고 악용해 수억 뜯어낸 사기꾼, 처벌 받았다
- 또 ‘관세 카드’ 꺼내든 트럼프 “그린란드 협조 않는 국가에 관세 부과할 수도”
- 배현진, 장동혁 단식에 “이럴 때 아니다”... 국힘 첫 ‘단식 중단’ 촉구
- 불경기 앞에 ‘장사’ 없지만... 상인들 “오늘도 셔터 올립니다”
- ‘김상식 매직’ 베트남, 8년 만에 U-23 아시안컵 4강
- 김정은, 대규모 청년행사서 “계승의 보무 계속돼야”... 러 파병軍 치하
- 남진 ‘나훈아 피습 배후설’ 언급… “특수부 검사 조사도 받았다”
- 한동훈 제명 논란에… 국힘 신동욱 ‘최고위 공개 검증’ 제안
- “니, 내 죽일 수 있나”... 층간 소음 다툼 끝에 흉기 휘두른 40대 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