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클레이스테네스의 실수

2025. 10. 18. 00: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흔히 인류의 역사를 5단계로 나누는데, 그 시대마다 사회를 이끌어간 주역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원시 국가에서는 무의(巫毉)가, 부족 국가에서는 추장이, 중세에는 교황이나 고승과 같은 종교지도자가, 근대국가에서는 이성이 지배했다. 이어서 기계의 발명에 따른 대량 생산과 인구 팽창을 빚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제는 이른바 민중의 시대에 들어섰다. 대중의 출현은 임금노동자의 출현과 때를 맞추어 일어나면서 노동자들은 거친 몸짓으로 정치에 도전하며 거리로 치달았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미래를 걱정한 막스 베버의 탄식처럼, 터무니없는 요구를 분출했다.

「 투표 통해 지도자 탄핵제 창안
고대 아테네서 20년간 9명 추방
지도자는 선장, 민중은 엔진 역할
민중만 좇으면 역사에 죄 짓게돼

되돌아보면, 이미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민중주의의 그릇됨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테네 시민들이 걱정했던 것은 폭군의 출현이었다. 일찍이 도시 국가가 발달한 그리스에서는 민중이 폭군의 길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민중을 등에 업은 빗나간 독재자들이 나타나면서 민중민주주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리스의 정치가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 기원전 570~ 508)가 패각(貝殼) 추방법(ostracism), 곧 조개껍질 투표로 지도자를 탄핵하는 제도를 창안했다.

그 내용은 민중의 뜻에 맞지 않는 지도자를 인민 투표에 회부하여 10년 동안 국외로 추방하는 것이었다. 정기적인 민중 집회는 해마다 10월 6일에 열리는데 패각 추방이 상정되면 원로원에서 어느 인명을 내걸고, “당신은 이 사람이 유죄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 이 투표는 공포된 날로부터 2개월 후에 실시하는데, 자유 시민 6000명 이상이 참여할 때만 유효하다. 처음에는 종이로 투표하려 했으나 해마다 이집트에서 비싼 파피루스를 수입하기 어려워 조개껍질을 쓰다가 투·개표 과정에서 조개가 바스러지자 그 대신에 도자기의 사금파리(도편·陶片)를 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우선 당장 사금파리를 6000개 넘도록 얻을 수가 없자 사금파리 암거래가 성행했고, 사금파리에 쇠꼬챙이로 글씨를 새기기도 어려웠다. 투표의 결과가 나오면 사금파리를 샘에 묻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테네의 문맹률이 높아 대필이 많았다. 아테네 박물관의 도편을 보면 같은 필적이 많다. 투표인들은 투표 대상의 업적에 관한 인식이 부족하여 투표라기보다는 선동정치가의 복수극이었다. 불만에 찬 민중들은 미운 사람이거나 자기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수행한 인물을 찍어 내는 데 투표를 이용했다. 이른바 거부의 정치(vetocracy)였다.

이를테면 페르시아와의 전쟁인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테미스토클레스는 정적들의 시샘으로 추방되었다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자살했으며,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승리한 니키아스는 주사(酒邪)가 심하고 술김에 정책을 결정한 것을 문제 삼아 추방했으며,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던 알키비아데스는 전공이 높자 정적의 모함에 빠져 추방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얼굴과 몸매가 대리석 조각처럼 너무 잘생겨 여자가 많이 따른 것이 화근이었다. 아리스티데스는 별명이 “정의로운 사람”이었는데, 자기에 대한 도편 추방 투표장에 상황을 보러 광장에 나갔다가 “그의 결벽에 가까운 성격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를 추방해야 한다”는 시민의 말을 듣고 문맹인 투표자를 위해 자기 이름을 써넣어 주었다.

아테네의 패각 추방은 기원전 509년에 시작하여 20년 동안 지속되다가 기원전 488년에 마지막 투표를 치렀다. 그동안 14명이 투표에 부쳐졌으며, 그 가운데 9명이 추방되었다. 17개월마다 탄핵이 일어난 셈이다. 추방된 사람들 가운데 분명히 추방될 만한 죄를 지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도편 추방법이 직접민주주의의 꽃처럼 미화되는 것은 사실과 매우 다르며,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이론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직접민주주의가 과연 그 본연의 뜻에 부합하는가 하는 점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이 문제에 가장 분개한 사람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이었다. 그는 질주하고 고함치는 민중을 바라보면, 어리석은 민중(중우·衆愚) 몇천 명의 생각이 어느 현자의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논리가 그의 『자유론』(1859)의 핵심어였다. 거기에는 자신이 국회의원 선거에 패배한 데 대한 분노가 실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엘리트 의식에 더하여 영국 의회의 다수결 횡포에 대한 분노도 실려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 하고 싶었던 논지의 핵심을 들어보면, 진정으로 영명한 지도자라면 노도와 같은 민중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도자는 선장과 같고 민중은 엔진과 같아 각기 역할이 다르다. 이와 관련하여 플루타르코스는 영웅들의 명멸을 바라보며 “민중의 편에 서서 분별없이 따라가다가는 민중과 함께 죽고, 민중의 뜻을 거스르다가는 그들의 손에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내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민중을 거스른 영웅은 자신을 망쳤으나 역사에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표를 보고 민중에 맥없이 따라간 지도자는 자기 일신을 망치고 역사에도 죄를 짓더라.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