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이미 벼 품종 30종…개량 결정적 전환점은 통일벼
곽재식의 세포에서 우주까지
![지난 8월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조생종 벼 첫 수확 행사에서 한 농민이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쌀 품종 개발에 힘쓴 결과, 한국은 식량 자급에 성공한 나라로 거듭났다. [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1/joongangsunday/20251021075848561ujeo.jpg)
동진강 이름 딴 품종들 근래 인기
품종이 다르면 밥맛도 다르고 쌀이 잘 자라날 수 있는 환경도 다르다. 어떤 품종은 추운 날씨를 조금 더 잘 버티는 편이고 다른 품종은 비가 많이 내릴 때 잘 자라나기도 한다. 어떤 병에 강한 품종이 있는가 하면 해충을 잘 견디는 편인 품종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에 맞는 품종을 개발하고 선택해 기르는 것은 농업 기술의 핵심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 농가에서는 수십 가지가 넘는 쌀 품종이 활용되고 있다. 그중 근래에 많은 규모로 재배되어 유명한 품종은 동진, 신동진, 참동진 같이 동진강이라는 전라북도의 강 이름을 딴 계통의 품종들이다. 김보경 박사가 주축이 되어 개발한 신동진 품종은 특히 한동안 인기가 많았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600년 전인 15세기에 강희맹이 집필한 『금양잡록』이라는 책에도 이미 30종에 가까운 서로 다른 쌀 품종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름만 봐도 빙절도(氷折稻), 자채(自蔡), 저광(著光), 사노리(沙老里) 등등으로 다채롭다. 그러니까 조선 초기에도 여러 가지 쌀 품종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고 이것을 잘 활용해서 서로 다른 조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었다.
가만 따져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본래 벼는 인도에서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 이르는 열대 및 아열대의 더운 지방에서 출현한 야생 식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날씨만 봐도 서울 날씨는 인도나 동남아시아 날씨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한국인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잘 자라나는 쌀 품종을 개발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확을 얻고자 노력해야만 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면 벼를 기르기 위해 그냥 밭이 아니라 물을 채워 놓은 논이라는 독특한 모습의 땅을 만든 것부터가 벼가 잘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기술의 작품에 가깝다. 따뜻한 물을 담아 놓은 어항에서 열대어를 기르고, 동물원에서 사바나 초원처럼 꾸며 놓은 우리 속에 사자를 기르듯이, 수천 년 전부터 한반도의 농업 기술자들이 온 나라에 인도의 늪지대를 닮은 환경으로 거대한 인공 식물원을 꾸며 놓은 거라고 보면 어떨까? 그것이 바로 아열대 식물인 쌀이 자라나고 있는 한국의 논이다.
안타깝게도 『금양잡록』에는 그와 같은 다양한 벼 품종을 개발한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어떤 뜻으로 품종 이름을 붙인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만약 당시 조선에서 쌀 품종을 개발하는 데 노력한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리고 상세히 기록해 두는 수준까지 실용적인 기술을 중시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면 나는 조선의 국력은 훨씬 더 막강해졌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1977년 허문회 박사(왼쪽)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5·16 민족상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1/joongangsunday/20251021075848848ehlf.jpg)
국제미작연구소는 미국의 포드와 록펠러 재단에서 투자하고 필리핀 정부에서 협력해 필리핀에 설립된 기관이다. 이곳에서 과학자들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벼 품종들을 비교 분석하고 그 잡종을 만들어 가면서 독특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냈다. 허문회 박사는 그때 필리핀에서 기적의 쌀이라고 불리던 신품종 IR8의 개발 과정이라든가 미국의 텍사스에서 오랜 세월 일한 선구적인 과학자 헨리 비첼(Henry Beachell)의 연구 성과 등등을 익혀 나갔다. 그리고 그런 연구 끝에 개발된 쌀 품종이 바로 ‘통일’이다. 뒤이어 통일과 비슷한 수확량이 많은 품종이 다양하게 개발되었는데 대개 이런 여러 품종을 다 같이 ‘통일벼’라고 뭉뚱그려 부른다.
통일벼는 양이 많지만 맛은 떨어지는 쌀이라는 대중적인 인식이 생기기는 했다. 1970년대에 정부 주도로 통일벼 보급을 강력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통일벼가, 농업 기술의 발전 덕택에 더 이상 쌀이 부족하지 않은 나라로 한국이 변해 나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성과임은 분명하다. 한국의 그 결정적인 전환점에 필리핀 사람들과 미국 텍사스 과학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도 돌아보면 재미난 일이다.
![통일벼로 다수확에 성공한 농부가 볏단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1/joongangsunday/20251021075849085mbdu.jpg)
이후 한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온갖 농작물 품종이 개발되었다. 지금은 통일벼보다 훨씬 맛있는 쌀을 재배하면서도 ㎡당 500g 이상을 수확하는 지역도 있다. 최근에는 수확량이 높은 한국의 개발 품종을 중부 아프리카 국가들에 보급해서 이 지역의 굶주림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시도가 좋은 성과를 얻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벼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여기던 몽골에서도 짧은 여름 동안에 키울 수 있는 한국 품종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쌀을 얻게 되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일들은 한국의 기술로 세계를 빈곤에서 구해내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멋진 도전이다.
『금양잡록』이 나왔던 조선 시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기술적으로 좋은 성과가 생기면 일단 높은 분을 칭송하는 문화가 한국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훌륭한 다리가 건설되면 종종 그 다리가 건설될 때의 높은 분 이름을 언급하며 “어느 시장이 저 다리를 놓았다”고 말하곤 한다. 경쟁력 있는 공단이 자리 잡아도 그때 높은 분 이름을 말하며 “어느 장관님이 도지사일 때 저 공단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시장님이나 그 장관님이 정말로 다리의 설계도를 그리고 공단을 만들기 위해 중장비를 몰고 다닌 것은 아니지 않나?
높은 공직자보다 현장 개발자 관심을
물론 높은 공직자 역시 사업에 공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다리를 건설하고 공장을 짓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쓴 기술인과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지금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게 된다면 좋겠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기도 하고 왜곡 없이 기술적 성취를 평가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저 다리는 어느 시장이 놓았다”는 식으로 칭송하다 보면 나중에 그 시장이 인기를 잃으면 거꾸로 “저 다리는 문제가 많다”거나 “저 다리는 사실 나쁜 다리다”라고 탓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일이 그런 식으로 흘러 가면 훌륭한 다리가 잘 건설되어 있는데도 그저 그 시장을 공격하기 위해 다리와 다리를 만든 기술까지 괜히 문제가 있다고 흠을 잡게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술과 기술인에 대한 더 많은 관심으로 그런 왜곡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높은 분들의 다툼 때문에 고생하며 일한 진짜 영웅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일부러 깎아 내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