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진국, 고의적 '물가 상승' 유도?…"재정위기 출구로 악용"
인플레이션 등 활용해 재정위기 탈출 노력
"부채·금리 억누르는 금융억압의 시대 도래"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전 세계 주요국들이 전례 없는 재정적자에 직면한 걸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와 국방비 증가, 이자 부담 등에 더해 정치적 부담에 따라 세금까지 인상하지 못하면서 재정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진 것이다.
문제는 일부 국가에서 실질 부채를 줄이기 위해 인플레이션(물가 인상) 상황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 과거에 국가가 빌린 돈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 등 실물자산 보유자에게 부가 몰리는 반면 현금 자산에 의존해온 계층은 피해를 입게 돼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재정위기 타개 해결책 '먹구름'
16일(현지시간) 영국 시사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프랑스, 일본, 영국 등 선진국 정부들이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져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선진국의 평균 공공 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10%를 초과한 것으로 추산됐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의 경제 대국 프랑스는 최근 높은 부채 비율과 고질적인 재정적자로 총리가 교체된 데다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시도한 정년 연장 시도도 거센 반발에 중단됐다. 일본에선 총리 후보자들이 막대한 부채에도 지출 확대 공약을 내세웠고, 미국은 GDP 대비 6% 수준의 재정적자에 불구하고 추가 감세를 검토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파장 커질 것"
이에 따라 일부 국가들이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택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금융억압이란 정부가 인플레이션이나 금리 인하를 이용해 채무 부담(특히 공공 부채)의 실질 가치를 낮추는 정책을 말한다. 즉, 시장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거나 국민의 자금을 강제로 국채 매입 등으로 유도해, 정부 부채를 소화하는 전략이다.
실제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막대한 전비(戰費) 부채를 낮추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억제하고 인플레이션 상승을 용인했다. 지난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향해 연일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시장 금리를 인플레이션보다 낮게 유지하면 예금자·채권자의 실질 수익률이 줄면서, 그 손실만큼 정부의 실질 부채는 줄어들게 된다.
문제는 인공지능(AI)에 따른 일자리 시장 재편 및 자산시장에서 상속을 통한 세대 격차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부동산과 주식 등 실물 자산 보유자는 자산이 늘어나는 반면 예금자와 연금 생활자, 임금 노동자 같은 서민 계층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인플레이션을 방치한 아르헨티나가 경제적 위기를 반복했다"며 "이 같은 경로를 밟지 않기 위해선 건전한 재정 운영 원칙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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