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라봉 하우스 삼킨 회오리”…제주 해안가 덮친 ‘용오름’에 초토화
"비행기가 떨어진 줄 알았어요."
17일 오전 10시께 찾은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1리의 한 비닐하우스.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천장 외벽 역할을 하는 비닐은 힘없이 찢겨 바람에 나부꼈다. 안으로 들어서자 덜 익은 샛초록빛 한라봉이 우수수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농장주 한재봉씨(70)는 다음날 아침에야 참담한 광경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16일 오전에 주변 농가에서 '얼른 하우스 봐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나가봤는데,천장은 찢기고, 나무는 부러지고, 한라봉은 다 떨어져 있었다"며 "농사 지은 지 40년 만에 용오름 피해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돌풍에 기둥이 흔들리면서 매달아 둔 끈이 다 끊어졌다"며 "열매가 굵고 잘 여물어가던 참이어서 수확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하룻밤 새 이렇게 돼버리니 참 허망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주민 양성무씨(55)는 회오리의 강력한 위력에 몸이 굳었다고 했다.
양씨는 "'쿵' 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무서워서 꼼짝도 못했다"며 "소리가 멎은 뒤 밖으로 나가 비닐하우스 위로 올라가 봤더니, 해안가에서 회오리가 바다를 휘감아 육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고 전했다.
양씨는 회오리가 약 20분간 지속됐으며, 해상에서 시작돼 육상을 거친 뒤 다시 바다로 이동해 사라졌다고 전했다.
집 안에 있던 주민들도 순식간에 덮친 강풍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대헌 태흥1리 이장(50)은 "현재까지 8곳이 피해를 봤고, 그중 3~4곳은 피해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한 이장은 "비닐하우스 농가는 찢긴 비닐을 갈아야 하고, 기둥도 다시 세워야 한다"며 "보험이 없는 농가가 문제다. 태풍은 예보가 있어서 대비라도 하지만 이번엔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행정에서 예외적으로라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원읍에 따르면 이번 용오름 피해는 비닐하우스 7곳, 농업용 창고 1곳 등 총 8곳으로, 서귀포시가 보험사 손해사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번 용오름은 태풍이나 호우처럼 예측이 가능하지 않아 피해가 컸다.
기상청 관계자는 "용오름은 대기 불안정으로 강한 상승력이 작용할 때 발생한다"며 "현재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4도가량 높고, 여기에 차가운 동풍이 유입되면서 불안정이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구름대 영향으로 강한 비와 함께 용오름이 일었으며, 제주에서는 연 1~2회 이상 발생한다. 지난 9월24일에도 남원읍에서 비슷한 현상이 관측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