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 통절한 반성” 무라야마 前 일본 총리 별세

박강현 기자 2025. 10. 1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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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8일 도쿄에서 연설하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사과 성명으로 유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10월 17일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AFP 연합뉴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등을 반성하는 ‘무라야마담화’를 주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17일 101세로 별세했다고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날 규슈 오이타현 오이타시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일본 역대 총리 가운데 100세를 맞은 경우는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전 총리(1887~1990)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1918~2019)에 이어 무라야마가 세 번째였다.

1924년 3월 3일 오이타에서 평범한 어촌 집안 11남매의 여덟째로 태어난 무라야마는 1994년 6월~1996년 1월 일본 제81대 총리로 재직했다. 메이지대 정치경제학과에 다니다 2차 대전에 강제 동원 및 징집된 적도 있는 그는 일본 사회당 소속으로 시의원·현의원·중의원을 지냈고, 자유민주당(자민당) 등과 연립을 통해 총리를 지냈다. 사회당 출신 총리로는 46대 총리를 지낸 카타야마 테츠 이후 역대 두 번째였다.

2014년 2월 11일 방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작품 전시회장을 방문, 강일출·박옥선·이옥선 할머니(왼쪽부터)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고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이라는 작품을 전달받은 뒤 “건강하셔야 한다”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선일보DB

그는 일본의 50주년 종전 기념일인 199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두고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을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현직 일본 총리가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를 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무라야마 이후 집권한 역대 일본 정부는 이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방식 등으로 우회적 사죄의 뜻을 전해왔다.

커다란 흰 눈썹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무라야마는 총리 시절 ‘청백리’의 삶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7년 일본에서 총리 재산 공개 제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총리 가운데 가장 적은 재산을 신고한 총리였다. 또 총리를 지낼 당시 “나는 연중무휴로 일하는 어부 출신이니 휴가는 필요 없다”고 했다가 “해외 다른 정부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주변 만류에 도쿄 근교 하코네 료칸(여관)으로 휴가를 간 일화도 있다. 유력 정치인 집안 출신 등 세습 정치인이 다수인 일본 정치 풍토에서 그의 부모와 친·인척 가운데 정치인은 한 명도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지난달 말 오이타현 오이타시의 자택에서 촬영한 사진. /마이니치신문

2000년 정계 은퇴 이후 낙향한 그는 마찬가지로 일본의 보통 노인과 별반 차이가 없는 조용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왔다. 특히 2005년 자전거 접촉 사고를 계기로 경호원이나 전용 차량 등도 없이 자전거를 직접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여든한 살이었던 무라야마는 자전거를 타다가 시내 교차로에서 마주오던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자전거와 부딪쳤다. 사고는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지만, 그의 ‘평범한’ 삶이 재조명됐다. 전직 일본 총리들은 은퇴 이후에도 특정 단체의 고문 등 직함을 갖고 도쿄 시내에 별도 사무실을 내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무라야마 전 총리가 2010년 6월 5일 김 전 대통령의 서울 자택에서 만났다./마이니치신문 제공

여든여덟 살 때 백내장 수술 일화도 그의 청빈함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의사가 “가까운 곳과 먼 곳, 어느 쪽을 잘 보이도록 수술할지 택해야 한다”고 묻자 무라야마는 “마트에서 장 보는 데는 자전거가 중요하니까 먼 곳을 잘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의사가 “추가 수술을 하면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모두 잘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무라야마는 거절했다. 추가 수술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100만엔(약 900만원)이나 드는데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3월 100번째 생일을 맞아 마이니치신문과 한 인터뷰에선 장수 비결에 대해 “무리하지 않고 ‘자연체(自然体)’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어로 자연체는 검도 등에서 양발을 적당히 벌리고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욕심 없이 마음이 편한 대로 사는 게 장수의 비결이란 의미였다. 당시 정치 관련 입장은 딱 한 줄 밝혔다. “일본이 언제까지라도 평화의 나라로 계속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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