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245> 라이더컵 승리 이끈 주장 루크 도널드와 부주장 에도아르도 몰리나리] 두 남자의 우정과 데이터로 쌓아 올린 유럽의 왕좌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2025. 10. 1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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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선수단이 2025 라이더컵에서 우승한 후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AP연합

2025년 9월, 뉴욕 베스페이지 블랙의 저녁 하늘이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유럽이 13년 만에 미국 원정 라이더컵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이었다. 수만 명의 관중이 뒤섞인 환호 속에서 루크 도널드(잉글랜드)는 차분히 고개를 숙였고, 그 곁에서 노트북을 덮으며 조용히 미소 지은 이는 부주장 에도아르도 ‘도도(Dodo)’ 몰리나리(이탈리아)였다. 도널드는 전장 앞에 선 지휘관, 몰리나리는 승리를 설계한 참모였다. 둘의 호흡은 2023년 로마 대회에 이어 2025년 베스페이지까지 유럽의 2연패와 원정 승리를 완성했다. 유럽은 미국을 15 대 13으로 눌렀다.

두 명의 젠틀맨, 각자의 길

도널드는 잉글랜드 햄프셔 출신으로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학 시절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며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 미국남자프로골프(PGA)투어에 데뷔한 뒤 꾸준히 톱10에 오르며 2011~2012년에는 PGA투어와 DP월드투어 상금왕을 동시에 차지했고,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에서는 5차례 준우승이 최고 성적일 만큼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대신 라이더컵에서 2004·2006· 2010·2012년 네 차례 출전해 모두 우승하며 ‘팀 플레이어’로서 진가를 증명했다.

몰리나리는 2005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름을 알렸고 2006년 프로로전향했다. 2010년 스코티시 오픈과 존니 워커 챔피언십(글렌이글스)에서 연속 우승하며 DP월드투어 정상급 선수로 부상했고, 2017년 트로페 아산 II에서 세 번째 DP월드투어 우승을, 2009년에는 일본투어 던롭 피닉스 오픈에서 1승을 보탰다. 프로 통산 DP월드투어 3승, 일본투어 1승의 기록이다.

2010년 셀틱 매너에서 열린 라이더컵에는 동생 프란체스코와 함께 형제로는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팀에 동반 출전했다. 도도라는 애칭은 어린 프란체스코가 형의 이름 ‘에도아르도(Edoardo)’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도도’라 부른 데서 자연스럽게 굳었다.

두 사람은 2010년 셀틱 매너에서 이미 유럽팀의 동료로 라이더컵 특유의 압박과 팀워크의 가치를 함께 체험했다. 이후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등 여러 투어에서 마주하며 서로를 잘 알게 됐지만, 본격적인 공조는 지도자 역할로 다시 만난 2020년대에 비로소 시작됐다.

1 2025 라이더컵 이틀째 포볼 경기를 승리로 마친 저스틴 로즈(오른쪽)를 끌어 안으며 함께 기뻐하는 에도아르도 몰리나리. 2 2025 라이더컵에서 우승한 유럽팀 주장 루크 도널드가 9월 29일(현지시각) 뉴욕 가든 시티의 가든 시티 호텔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3 루크 도널드(왼쪽)와 에도아르도 몰리나리는 PGA투어의 유일한 2인 1조 팀 대회인 2023 취리히 클래식에서는 선수로 호흡을 맞췄다. /AFP연합, AFP연합·게티이미지, USA TODAY Sports·연합뉴스

주장과 참모로 다시 만나다

2023년 로마 라이더컵을 앞두고 원래 유럽팀 주장이었던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이 LIV 골프로 이적해 공백이 생기자 유럽 골프계는 도널드를 긴급 선임했다. 도널드는 취임 즉시 몰리나리를 부주장 겸 데이터·전략 총괄로 불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에도아르도의 분석력과 투명한 조언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가 팀을 더 강하게 해 줄 것으로 확신했다” 고 밝혔다. 몰리나리는 부상 이후 선수 생활을 접고 샷링크 데이터를 분석하며 매트 피츠 패트릭(잉글랜드), 빅토르 호블란(노르웨이), 넬리 코르다(미국) 등 남녀 정상급 선수 30~40명에게 코스 전략과 멘털 케어를 제공해 온 필드 과학자였다. 그는 선수의 샷 분포와 구질, 심리적 성향까지 반영해 포섬·포볼 조합을 수십 가지 시뮬레이션했고 “어느 홀에서 누가 티샷을 맡아야 하는가” 등 세밀한 제안을 내놓았다. 몰리나리는 “우리는 매일 오전 10시 15분에 모여 5분간 페어링 조합을 점검했다. 루크는 항상 내 데이터를 존중했고 선수의 편안함까지 함께 고려했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 유럽은 초반 포섬·포볼에서 우위를 잡아 미국을 16.5 대 11.5로 꺾었다. 언론은 몰리나리를 ‘유럽팀의 비밀 병기’라고 불렀다.

베스페이지 원정 승리-디테일과 데이터의 결합

2025년 베스페이지 블랙에서도 둘의 공조는 완벽했다. 도널드는 2년 전 로마에서 우승컵을 든 직후부터 미국 원정을 준비하며 선수들이 홈팬 야유에 휘둘리지 않도록 VR 시뮬레이션을 도입했다. 또 축구 승부차기(PK) 전문가를 불러 극도의 긴장 속에서도 루틴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했고, 영국 럭비 대표팀 주장을 초청해 적대적 원정 관중을 대하는 경험담을 전했다. 시차 적응을 위해 수면 전문가를 고용했고, 숙소의 시트와 문틈 사이 빛까지 점검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몰리나리는 경기 전 코스 세팅을 분석해 러프가 예년보다 짧아 아이언 샷과 쇼트게임이 강한 유럽 선수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도널드는 이를 전략에 반영했다. 매킬로이-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 욘 람(스페인)-티럴 해턴(잉글랜드) 같은 주력 조합을 초반부터 고정 기용한 결과, 유럽은 첫 이틀간 11.5 대 4.5로 앞서며 싱글 매치를 앞두고 7점 차 리드를 확보했다.

반면 미국은 주장 키건 브래들리가 통계팀 권고를 무시하고 콜린 모리카와–해리스 잉글리시 조합을 두 차례 내보내 모두 패하며 초반 승기를 잃었다.

몰리나리는 숫치를 넘어 데이터를 선수의 언어로 설명하며 “왜 이 홀에서 이런 샷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시켜 불확실성을 줄였다. 피츠패트릭은 “몰리나리의 조언으로 코스 매니지먼트가 향상됐다”고 했고 호블란은 “불필요한 고민이 줄었다”고 말했다. 대회 기간 그는 심리 전문가 오언 이스트우드(뉴질랜드)와 협업해 선수의 멘털 안정에도 힘썼다.

우승이 확정되자 도널드는 “내가 믿고 기댈 사람이 곁에 있었다는 것이 큰 행운이었다”며 몰리나리에게 공을 돌렸고, 몰리나리는 “모든 영광은 주장과 선수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나는 올바른 결정을 돕는 참모일 뿐”이라며 겸손을 보였다. 유럽 언론은 “도널드의 가장 큰 자산은 몰리나리였다”고 평했다.

우정이 남긴 유산

도널드와 몰리나리는 2010년 셀틱 매너에서 이미 라이더컵의 무게를 함께 느낀 동료였고, 2023년과 2025년에는 주장과 부주장으로 재회해 유럽의 연승을 설계했다. 두 사람의 신뢰와 호흡은 10여 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빛났다. 도널드는 선수로서는 메이저 우승이 없지만 주장으로 38년 만에 유럽팀 2연패와 13년 만의 미국 원정 우승을 달성했다. 몰리나리는 선수로는 3승에 그쳤지만 전략가로서 연속 라이더컵 우승을 설계하며 더 큰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PGA투어 공식 웹사이트는 “유럽이 위대한 단장을 발견했는지 모른다”고 평했고, 유럽 선수들은 우승 직후 도널드 옆에서 “2년 더!”를 연호하며 유임을 바랐다.

베스페이지에서 빛난 유럽의 승리는 우정과 데이터, 세밀한 준비와 멘털 관리의 결합이 빚은 작품이었다. 도널드가 전장을 지휘한 장수였다면 몰리나리는 승리의 시나리오를 그린 제갈량이었다. 이제 이들의 콤비가 2027년 아일랜드 아데어 매너에서 또 한 번 유럽을 정상에 올릴지 전 세계 골프 팬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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