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의 팝코노믹스 <17>] ‘Beat It’ 비튼 ‘Eat It’으로 대히트… 패러디의 경제학

임희윤 문화평론가 2025. 10. 1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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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Bad’ 앨범을 패러디한 위어드 알 얀코빅의 ‘FAT’ 앨범. /엑스

패러디도 잘하면 예술이 된다. ‘오늘 술맛이 예술이네~’ 할 때 그런 예술 말고, 실제 예술 작품 말이다.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일주일 차이로 두 편의 패러디 예술 작품이 개봉해 큰 화제다. 음악 영화다.

‘스파이널 탭 2(Spinal Tap II·미국·9월 12일(이하 현지시각) 개봉)’와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Ebony & Ivory·영국·9월 19일 개봉)’. ‘스파이널 탭 2’는 1984년 개봉해서 아직도 코미디 음악 영화의 전설로 남아 있는 작품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의 무려 41년 만의 속편.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는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의 1982년 듀엣 히트 곡인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의 제작 당시 상황을 코믹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일종의 팩션이다.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는 1970~80년대 인기 장르인 글램 록(glam rock·과도한 분장을 앞세운 화려한 록), 글램 메탈을 풍자한 작품. 무대 위 ‘추구미(追求美)’는 ‘상남자’, 지배자 콘셉트. 그러나 무대 아래 일상은 주꾸미, 소주에 만취한 동네 형들. 즉, 엉망인 자들의 좌충우돌 스토리다. 최근 개봉한 속편은 이들이 15년 만에 재결합해 마지막 공연을 펼치는 이야기. 부제도 ‘the end continues(끝은 계속된다)’여서 아이러니하다.

임희윤 문화평론가,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 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패러디를 예술로 만드는 건 ‘철저한 고증’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는 흑백 거장의 위대한 합작으로 일컬어졌던 곡의 제작 과정을 코믹하게 다뤘다. 매카트니와 원더 역할은 코미디 배우가 맡았다. 미국, 영국 차트 1위를 석권한 명곡의 실제 합작은 영국 런던에서 이뤄졌지만, 영화에선 배경도 스코틀랜드의 외딴 해안 지대 킨타이어곶(串)으로 옮겼다. 킨타이어곶은 매카트니가 오랫동안 별장이자 대저택을 소유하고 머문 곳. 매카트니의 솔로 대표곡 중 하나인 ‘Mull of Kintyre’ 도 킨타이어곶에 보내는 송가다. 그래서 이 패러디 영화의 분위기는 거의 안 봐도 뻔하다. 한마디로 세계의 존경을 받는 록과 솔의 대단한 거장들이 시골에서 남몰래 뭉쳐 수선 떨고 복작거리며 지지고 볶는 이야기. 두 작품은 ‘로큐멘터리(rockumentary·록이나 대중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패러디한 모큐멘터리(mockumentary·다큐멘터리를 흉내 낸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즉, 로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오되, 배경·배역·내용 등은 지어내서 해학과 풍자를 듬뿍 실은 모큐멘터리라는 얘기다.

패러디의 장점 중 으뜸은 원본의 대중성이다. ‘자, 이거 다들 알지? 좋긴 한데, 사실 이런 건 좀 웃기지 않아요? 우리가 더 웃기게 만들어 볼게’의 태도가 기본에 있다. ‘스파이널 탭’ 시리즈에서는 록, 메탈 음악가 특유의 과장된 행동과 태도가 패러디 대상이다. 단순한 희화화에 그치면 도리어 희화화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철저한 고증이 코미디를예술로 만든다. ‘스파이널 탭’은 레드 제플린부터 메탈리카까지 수많은 실제의 전설적 밴드가 ‘너무나 웃길뿐더러 우리의 실제 일상을 보는 듯 사실적이어서 더 재밌었다’는 간증을 전해 더 유명해졌다. 200만달러(약 28억원) 정도의 저예산으로 제작해 북미에서만 당시 580만달러(약 81억원)을 벌어들였다. 문화적 반향은 더 컸다. 모큐멘터리 열풍을 불렀다. 멀리 ‘스쿨 오브 락(2003년)’도 이 영화의 영향권 에 있다.

‘스파이널 탭’은 고유명사를 넘어 보통명사가 됐고 형용사나 부사도 됐다. 폼 좀 잡으려다 망가진 음악적 순간을 ‘Spinal Tap moment’로 부르거나 지금은 정상에 선 밴드가 아마추어 시절 재미난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so Spinal Tap(되게 스파이널 탭스러웠던)’이란 말을 쓰는 게 업계의 상례가 된 것이다. 영화의 가상 밴드 스파이널 탭은 실제로 순회공연과 음반 제작을 이어가면서 빌보드 종합 앨범 차트 52위, 영국 싱글 차트 35위까지 올랐다.

1984년 개봉한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의 한 장면. /엑스

영화를 실제로 만든 가수도 있다. 사실 가수가 영화보다 먼저였다.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가 개봉하기 무려 5년 전인 1979년 데뷔한 패러디 가수계의 마이클 잭슨, 위어드 알 얀코빅이다. 그의 데뷔 싱글 제목은 ‘My Bologna’. 상상하는 대로다. 더 낵의 히트곡 ‘My Sharona’를 패러디한 것. 배고파 죽겠으니, 토스트 다 되면 내가 좋아하는 볼로냐소시지를 올려달라는 간청의 노래다. 절절한 러브 송을 없어 보이는 B급 먹방 송으로 바꿨다. 사실 먹는 얘기, 많이 먹는 얘기는 유머 소재로 딱 맞다. 얀코빅도 여기에 천재적이다. 그의 최고 히트곡은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을 비튼 ‘Eat It’. 농담 아니고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까지 찍었다. 또 다른 대표곡은 역시 잭슨의 곡인 ‘Bad’를 뒤집은 ‘Fat’. 뮤직비디오도 ‘가관’이다. 마돈나의 ‘Like a Virgin’ 을 변형한 1985년 작품 ‘Like a Surgeon’도 걸작. 처음 ‘찐사랑’을 느낀 여인의 설렘을, 처음 메스를 잡은 돌팔이 외과 의사의 불안으로 치환했다. 이쯤 되면 가히 ‘킹 오브 패러디 팝’이다.

모호해진 패러디와 가짜 뉴스, 유머와 조롱 사이 경계

2022년에는 얀코빅의 스토리를 다룬 모큐멘터리도 나왔다. 해리 포터 역할로 유명한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얀코빅을 연기한 ‘위어드(Weird: The Al Yankovic Story)’다. 모큐멘터리 인생을 다룬 모큐멘터리, 즉 ‘모모큐멘터리’인 셈이다. ‘위어드’는 일종의 OTT인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 채널 ‘로쿠’로 배급됐기에 아카데미 후보에는 못 올랐지만, ‘크리에이티브 아트 에미상’을 받으면서 호평받았다.

패러디 예술은 최근 기로에 놓여 있다. 얼마 전, 미국의 보수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가 숨진 뒤 그의 부친을 폴 매카트니가 위로하는 듯한 사진이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알고 보니 합성 사진이었다.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의 시대, 기술이 예술의 아우라를 위협하는 시기에 패러디와 가짜 뉴스, 유머와 조롱의 경계는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술적 패러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잘된 패러디는 박사 논문도, 석학의 명저도 닿지 못한 특유의 통찰과 미학으로 예술의 본질을 꿰뚫고 그 잔향을 오래도록 남긴다. 웃으며 하는 얘기가 제일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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