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향의 스타일 아이콘 <16>] 꾸미지 않은 듯 편안한 스타일, 로버트 레드퍼드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2025. 10. 17. 13: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 로버트 레드퍼드. 영화 ‘콘돌’ 스틸컷. 2, 3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파라마운트

수많은 스타일의 전설을 탄생시킨 할리우드에서도 로버트 레드퍼드는 결이 달랐다. 한껏 멋을 부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스타들 사이에서 그는 비교적 조용했다. 홀로 빛나는 북극성보다 은은한 은하수 같은 스타였다고 해야 할까. 그런 그가 9월 16일(현지시각),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패션계는 일제히 로버트 레드퍼드의 지난 스타일을 플래시백하며, 이 기품 넘치는 할리우드 배우가 남긴, 조용하지만 파워풀한 영향력에 찬사를 보내며 추모하고 있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꾸미지 않은 듯 편안한 우아함의 ‘에포트리스 엘레강스(effortless elegance)’를 완성시킨 스타일 아이콘이었다. 한 패션 평론가는 ‘폴 뉴먼이 아름다운 반항아였다면, 로버트 레드퍼드는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귀족이었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스타일을 가장 잘 말해주는 평가라 할 수 있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로버트 레드퍼드 패션은 스크린 속 배역에 깊이를 더하는 동시에,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성 패션의 고전적인 아카이브를 형성했다. 로버트 레드퍼드가 남성 패션사에 남긴 스타일 아카이브는 크게 세 가지다. 우아한 댄디즘, 인텔리전트 캐주얼, 소프트 ‘러기드 아메리카나(rugged Ameri-cana·미국 노동자 계층, 카우보이, 군인 등이 착용했던 기능적인 의복에서 영감을 받은 룩으로, 실용성과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멋을 중요시함)’ 룩이다. 그의 스타일은 폴 뉴먼, 스티브 맥퀸과 함께 미국 남성 패션의 3대 거장으로 불리며, 트렌드에 영향받지 않는 타임리스 클래식이 됐다. 로버트 레드퍼드의 전설적인 스타일은 영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zby, 1974)’로 시작됐다. 그가 제이 개츠비 역을 맡아 입었던 의상은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재해석된 1920년대 패션의 정수로 남았다. 이 영화 의상 대부분은 디자이너 랠프 로런에 의해 디자인됐다. 랠프 로런은 1920년대 미국의 황금기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내는 데 집중했는데, 로버트 레드퍼드의 우아한 체형과 금발 머리가 랠프 로런 의상과 조화되며, ‘아메리칸 댄디즘’의 정점을 찍었다.

개츠비의 상징과도 같은 크림색 또는 미색의 스리피스 슈트(three-piece suit·재킷, 조끼, 팬츠 세트의 정장)는 개츠비의 야망과 낭만을 시각화한 상징이다. 1970년대 트렌드를 반영해 넓은 라펠(lapel)과 슬림한 실루엣을 지녔다. 소재는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경량 울 또는 리넨 혼방이 사용됐는데,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소설 속에서 묘사한 ‘화이트 플란넬 슈트’를 당시 스타일로 모던하게 재해석한 것이다. 이 우아한 슈트는 블루 실크 셔츠와 머스터드 골드 넥타이와 매치되어 순수함 속에 감춰진 부와 화려함을 은유했다. 로버트 레드퍼드의 개츠비 룩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션 화보에서 여름 슈트의 교과서처럼 인용되고 있다.

또한 랠프 로런의 핀 스트라이프 슈트는 영화 속에서 ‘접근 불가능한 쿨함(unattain-able cool)’을 만들어냈다고 평가되며, 아메리칸 프레피 룩의 교본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개츠비가 입는 ‘저주받은 핑크 슈트(goddamn pink suit)’와 연회 장면에서 입은 블랙 타이 슈트도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남긴 아이코닉 슈트 룩이다.

영화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 1975)’과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1976)’은 로버트 레드퍼드를 연기와 함께 스타일의 정점에 오르게 한다. 영화 속 스타일은 ‘청바지를 입은 지식인’ 또는 ‘잘 차려입은 반체제 인사’ 이미지를 만들며, 정치적 음모를 파헤치는 지식인 이미지를 완벽하게 창조해 냈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스틸컷. /워너 브라더스

영화 ‘콘돌’에서 보여준 로버트 레드퍼드 스타일은 오늘날 인텔리전트 캐주얼의 상징이다. 그가 입은 트위드 재킷은 비구조적인 어깨 라인과 편안한 실루엣을 자랑하며, 활동성과 세련됨을 함께 충족시켰다. 재킷 아래에는 블루 샴브레이(chambray·화이트와 주로 블루 컬러 실을 믹스해 짜내 데님과 유사해 보이나 더 얇고 부드러운 소재) 셔츠와 스트라이프 울 타이 그리고 은은한 워싱 데님 진을 착용하여 클래식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여기에 하이킹 부츠까지 매치하여 새로운 지식인 룩을 선보였다. 또한, 이 영화에서 그가 입은 네이비 피 코트(peacoat·넓은 라펠과 짧은 기장의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와 립 터틀넥(ribbed turtleneck·골지로 짜인 터틀넥)의 조합은 ‘조용히 스타일리시한 스파이’의 전형으로 남아, 매년 겨울 남성복 디자이너의 무드 보드에 등장하고 있다.

최정상급 할리우드 배우였지만, 스크린 밖에서 로버트 레드퍼드는 자연인이었다. 그는 열정적인 환경보호자였고, 이러한 철학은 그의 일상 패션에 그대로 투영됐다. 유타주에 정착하고 선댄스 영화제를 설립한 그의 스크린 밖 스타일은 웨스턴과 아웃도어 룩의 우아한 조화였다. 그는 영화 ‘다운힐 레이서(Downhill Racer·1969)’에서 시어링 코트(shearling coat·양피 코트)로 마초적인 매력과 실용성을 결합하며 아웃도어 패션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 속 스타일이 실제 로버트 레드퍼드의 일상 스타일에 가깝다.

영화 ‘다운힐 레이서’ 스틸컷. /파라마운트

닳고 해진 듯한 데님 진과 블루 샴브레이 스냅 버튼 셔츠 그리고 낡은 가죽 재킷은 로버트 레드퍼드가 가장 즐겨 입는 조합이었다. 또한 그는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청청 패션’을 세련되게 소화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매력 넘치는 로버트 레드퍼드의 데님 룩은 영화 ‘내츄럴(The Natural)’ ‘일렉트릭 호스맨(The Electric Horseman)’ 등 여러 영화를 통해 러기드 아메리카나 스타일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속에서는 캐릭터를 따라 거친 러기드 아메리카나 룩을 보여주었지만, 일상생활에서 로버트 레드퍼드는 소프트 버전의 러기드 아메리카나 룩을 보여 주었다. 와일드하기보다 우아하고, 마초적이기보다 젠틀맨적인 러기드 아메리카나 룩은 로버트 레드퍼드만의 무드를 통해완성됐기에, ‘선댄스 스타일’로 따로 명명되기도 했다.

로버트 레드퍼드 스타일은 동시대 스타일 아이콘인 스티븐 맥퀸, 폴 뉴먼과는 결이 달랐다. 그의 옷은 절대로 스타일리스트가 완벽하게 세팅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옷을 방금 의자에서 집어 입고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아메리칸 클래식과 캐주얼에서 ‘꾸안꾸(꾸미지 않은 듯 꾸민)’를 완성한 스타일 리더였다. 그의 스타일은 재창조가 아닌 시간을 들여 다듬은 숙련미라고 평가받는다. 이렇게 또 조용하게 파워풀하고 우아한 배우를 할리우드에서 만날 수 있을까. 로버트 레드퍼드는 진정한 우아함은 입는 옷이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삶에서 나옴을 증명한 영원한 스타일 아이콘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