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보지 못한 세계를 감각하고 싶을 때… 유계영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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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유계영 시인의 글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세계를 감각하고 싶을 때 쓰곤 하는 나의 안경 중 하나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장면인데도, 시인은 그 기억 안으로 들어가 예민한 촉수로 다시 한 번 감각해 본다.
나도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것들을 다시 조용히 감각하여 나의 언어로 끌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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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가끔, 아니 종종, 나는 내가 너무 무감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게 흥미가 없거나 사랑받는 일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받기 위해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써왔으니까.
그런데도 세계에 대한 감각은 이상하리만큼 무디다. 마치 세계와 나 사이에 얇은 막이 끼어 있는 듯, 아무리 바라봐도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왜 이다지도 가까운 것만 보며 살아가는 인간일까. 어쩌면 세상을 향한 나의 시력은 태생부터 근시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근시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늘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들에게 곧잘 끌리곤 한다. 그들의 언어는 나에게는 일종의 안경 같은 것인데, 그들의 시선을 통해야만 흐릿한 풍경이 또렷해지고, 내가 지나쳐온 것들이 비로소 형태를 갖추기 때문이다.
유계영 시인의 글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세계를 감각하고 싶을 때 쓰곤 하는 나의 안경 중 하나다. 그의 글은 언제나 내가 보지 못한 틈과 여백을 감각하고 그것을 언어로 조용히 더듬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계영 시인이 쓴 시의적절 시리즈 '무궁무궁'도 그렇게 읽어 내려갔다. 9월이라는 계절을 온몸으로 더듬어 초점을 맞추어보며. 놓치고 지났던 사람들의 언어와 동물들의 마음과 일상의 풍경들을 되새기며. 그리고 문득 아주 선명하게 초점이 맞추어졌던 구절은 바로 이것.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갔던 마로니에 공원. (…) 나는 공원 광장에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 비둘기들에게 돌진해 폭죽처럼 터져 오르게 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 아주 잠깐 엄마와 내가 완전히 분리되었던 그 순간. 모르는 아이를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았던 엄마의 그 순간이, 왜 이토록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일까."
나였다면 그저 "엄마가 이모를 만났다" 정도로만 기억했을 그 순간을, 유계영 시인은 오래 들여다 본다. 기억의 풍경이란 오늘의 나에게 얼마나 흐릿한가. 그런데도 왜 과거의 어떤 기억은 점점 선명해지는가.
어린 시절 엄마와 마로니에 공원을 걷던 기억, 그날의 구두 굽, 햇빛, 비둘기, 그리고 "엄마와 내가 완전히 분리되었던 그 순간"을.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장면인데도, 시인은 그 기억 안으로 들어가 예민한 촉수로 다시 한 번 감각해 본다. 세상을 향해 뻗은 시인의 예민한 촉수는 단순히 관찰이 아니라, 언어를 향한 사랑의 또 다른 형태에게로 뻗어나간다.
때문에 고백하자면 나는 이번 글을 쓰는 게 아주 힘들다. 이걸 쓰고 있는 순간에도 자꾸만 세상에 닿은 나의 닳고 닳은, 무딘 촉수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받기 위해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써왔으면서도, 닿아있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그 무딘 시간들은 내 안에 있는 걸까. 나도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것들을 다시 조용히 감각하여 나의 언어로 끌어낼 수 있을까.
나는 안경을 벗고 다시 흐리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래서 내 언어도 가려져 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송지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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