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캘리포니아 “州정부표 ‘반값 인슐린’으로 당뇨병 해결”… 뉴섬 주지사, 의료 개혁 승부수
‘시중가 대비 절반에서 8분의 1 수준 가격’
뉴섬 주지사, 대권 가도 발판 마련 평가도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거대 제약사(big pharma·빅파마)를 거치지 않고 주 정부 차원에서 직접 저렴한 인슐린을 만들어 팔겠다고 밝혔다.
16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주지사실에 따르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 정부 자체 의약품 브랜드 ‘CalRx(캘알엑스)’를 통해 내년 1월 1일부터 저가 인슐린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치솟는 약값에 고통받는 당뇨병 환자들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미국 의약품 시장 독과점 구조를 깨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 등에 따르면 CalRx가 선보이는 인슐린은 5개입 1팩 기준 소비자 권장 가격 55달러(약 7만6000원)가 책정됐다. 주사 펜 1개당 11달러(약 1만5000원) 수준이다.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는 비슷한 유형 제품 가격과 비교하면 절반에서 최대 8분의 1 수준이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제약사들이 약국에 공급하는 유사 제품 가격은 일라이 릴리(Eli Lilly) ‘레즈보글라(Rezvoglar)’가 88.97달러, 사노피(Sanofi)의 ‘란투스(Lantus)’가 92.49달러 수준이다. 농축율이나 작용 시간을 높인 일라이 릴리 ‘바사글라(Basaglar)’는 313.98달러, 사노피 ‘투제오(Toujeo)’는 411.09달러에 이른다.
인슐린은 1920년대에 개발된, 100년 넘은 의약품이다. 혈당 조절에 꼭 필요한 호르몬이라 당뇨병 환자들에게 주로 처방한다. 미국 당뇨병 협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만 약 352만명에 달하는 당뇨 환자가 있다. 주 전체 성인 가운데 11%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일라이 릴리, 사노피,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등 소수 거대 제약사가 시장을 과점한 탓에 인슐린 가격이 꾸준히 올랐다. 이들 회사는 서로 가격을 담합했다는 의혹으로 집단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 대다수는 정부가 제약사와 직접 가격을 협상해 전체 약값을 통제한다. 하지만 미국은 제약사가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최고가를 책정하는 자유 시장 원리를 따른다. 여기에 처방약 급여관리업체(PBM)라는 중간 유통상도 끼어 든다. PBM은 보험사를 대신해 제약사와 약값 할인(리베이트)을 협상하는데, 이 과정이 불투명해 최종 약값에 거품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제약사도 높은 연구개발(R&D) 비용을 명분으로 매년 약값을 올려 받는다. 이 때문에 미국 제약 시장은 정부가 가격 통제에 손을 놓은 가운데 복잡한 유통 구조를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값을 부담하는 구조가 뿌리를 내렸다.
미국 의료 소비자 단체들에 따르면 2010년대 25달러에 수준이었던 인슐린 처방약 가격은 현재 보편적인 직장 의료 보험 가입자 기준 1팩에 300달러까지 치솟았다. 보험이 없는 환자들은 팩 하나에 400달러(약 55만원)를 내야 하는 실정이다. 뉴섬 주지사는 “캘리포니아 주민 누구도 인슐린을 아껴 쓰거나 생존을 위해 빚을 져서는 안 된다”며 “제약업계가 옳은 일을 하길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직접 나섰다”고 했다.

이번 인슐린 사업은 뉴섬 주지사가 2020년 처음 구상한 CalRx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비영리 제약사와 바로 계약해 복제약(제네릭)을 생산한 뒤, 이윤을 더하지 않고 직접 공급한다. 주 정부가 자체 의약품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에 나서는 사례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가 처음이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이번 인슐린 사업에 총 1억 달러(약 138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주 정부 예산을 투입했다. LA타임스는 캘리포니아주가 2023년 비영리 제약사 시비카(Civica Rx)와 5000만 달러 규모 계약을 맺고 인슐린 생산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나머지 5000만 달러는 캘리포니아 내 자체 생산 공장 설립에 배정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압도적인 경제 규모 1위(전 세계 5위권)인 캘리포니아기에 가능한 ‘규모의 경제’다. 폴리티코는 이런 점을 들어 다른 주들이 비슷한 의료 정책을 섣불리 따라 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내년 1월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가 92달러에 파는 제품 ‘란투스’와 성분이 같은 바이오시밀러 ‘글라진’을 55달러에 가장 먼저 선보인다. 이후 반응을 보고 아스파트(Aspart), 리스프로(Lispro)처럼 가장 널리 쓰이는 인슐린 3종을 모두 공급할 계획이다. 향후 천식 치료제와 임신중절 약까지 직접 공급하거나 비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 주요매체들은 이번 정책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뉴섬 주지사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주지사 입후보 때부터 ‘의료 주지사’를 자처하며 의료비 절감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번 저가 인슐린 공급은 그 공약이 구체적 성과로 나타난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번 인슐린 사업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오바마케어) 정신을 잇는 정책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오바마케어가 보험 가입률을 높여 의료 접근성을 확대했다면, 뉴섬의 정책은 의약품 자체 가격을 낮춰 근본적인 비용 절감을 추구한다는 평가다.
앨리슨 하트 T1 인터내셔널 지역사회개발이사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실에 “이윤이 아닌 사람을 우선하고, 안정적이고 투명한 가격에 인슐린을 확보하는 캘리포니아주 정책을 환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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