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K-컬처] 이방인의 렌즈에 담긴 한국의 아름다움 | 전원생활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0월호 기사입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어나 황량한 사막 풍경을 보고 자란 그에게 2011년 처음 한국에 들어와 접한 서울의 모습은 영화 속 장면처럼 특별하게 다가왔다. 네온사인이 가득한 밤거리에 늦은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은 그의 고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었다. 서울 시내 어딜 가든 어렵지 않게 산을 볼 수 있는 점도 특이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블레이드 러너〉, 애니메이션 〈아키라〉 같은 영상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영화 속에서만 봤던 컬러풀한 조명과 화려하고 빠른 도심의 모습, 디스토피아적인 감수성이 한국 밤거리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저녁 7시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아 깜깜한 미국에선 보기 힘든 모습이죠. 길과 공간이 넓은 미국에선 한국 같은 오밀조밀한 감성은 느끼기 힘들어요.”
외국인이 찍은 한국 감성 사진이 지금이야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지만, 처음부터 그런 사진이 환대받은 건 아니었다. 알론소 씨의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유명 관광지나 문화재 사진처럼 예쁘고 화려한 모습이 아닌 유흥가나 뒷골목처럼 미관상 지저분하고 안 좋은 부분을 보여준다고 비난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 제 사진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한국인들도 제 사진을 다시 보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제 사진에 불편한 피드백을 보내는 한국인들도 있지만 이 정도면 꽤 긍정적인 변화예요.”
“새로운 나라에 가면 모든 것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시기가 있잖아요. 한국에 들어오고 그 시기가 금방 지나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의지할 친구나 가족도 없는 타국에서 일하면서 외로움이 컸고, 학교에서 마주하는 문화적 장벽에 지칠 때도 많았죠. 그 즈음 미국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울감이 더 깊어졌고요. 그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길거리로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는 타지생활로 그간 억눌렸던 자신의 감정을 사진을 통해 표출했다. 현대적인 풍경과 자연이 공존하는 서울의 다채로운 모습은 내면을 표현하기 좋은 재료였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적막한 밤 풍경을 찍었고,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면 화사한 낮 풍경을 찍으며 세상과 소통했다. 중학교 시절, 일회용 카메라로 처음 느꼈던 환희의 기억이 ‘찰칵’ 셔터를 누를 때마다 되살아났다.
“퇴근 후나 일이 없는 휴일이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죠. 처음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찍었어요. 그러다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 이후 야경 사진으로 이어지고, 그 사진이 비 오는 날 밤거리, 낮 풍경 사진으로 이어져 나중엔 사진을 찍으러 나가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죠.”
무엇보다 눈여겨볼 것은 국내에 사는 한국인들의 반응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정신없이 지내느라 우리 주변의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에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던 사람들은 ‘늘 지나가는 길을 이렇게 보니 너무 예쁘다’ ‘익숙해서 못 보는 것들을 따뜻한 눈으로 담아주니 좋다.’ ‘내일은 여행객의 마음으로 보내야겠다’ 등과 같은 글을 남기며 잠시나마 숨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서울, 우리들의 거리는〉에 참여했고, 같은 해에 게임 개발 스튜디오 ‘CD 프로젝트 레드’가 주최하는 〈사이버펑크 2077〉 글로벌 사진 공모전에서 서울 야경 사진으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한국 풍경 사진을 모아 300페이지 분량의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그의 SNS엔 지금도 저기가 어딘지, 언제, 어떻게 촬영한 것인지를 묻는 댓글이 달린다.
진정한 한국의 풍경은 오래된 것들에 있다고 믿는 알론소 씨는 큰 쇼핑몰이나 아파트 빌딩들이 들어서 옛 공간이 사라질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2022년 충남 천안으로 이주한 후론 들판, 마을 도랑길, 오래된 농가 같은 아직 훼손되지 않은 시골 풍경에 집중하고 있다. 요즘은 휴대폰 하나만 들고 출사를 나간다. 평일엔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거나 프리랜서 사진 작업을 하고, 주말엔 전남 담양, 경북 구미, 충남 보령 등 전국을 돌며 촬영한다.
“14년 동안 도시 사진을 찍었으니, 이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을 탐험해볼 생각이에요. 한산한 농촌 풍경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해가고 있어요.”
알론소 씨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만원 버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적한 저녁 풍경이 어느새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지나쳐온 일상의 장면들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프레임 삼아 마음속 렌즈에 비춰 소리 없이 셔터를 눌러본다. ‘찰칵’.
글 이수정 기자 | 사진 고승범(사진가), 노위 알론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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