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민의 코트인] 승리의 날, 가장 먼저 떠났던 선수

원주/정병민 2025. 10. 17.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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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DB가 정관장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시즌 3승째를 수확했던 날.

승리의 기쁨에 벤치가 들썩였고, 선수단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환호하기 바쁜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그 열띤 환호 속, 한 선수의 뒷모습은 유독 조용했다. 라커룸을 빠져나오던 그의 손에는 승리 세리머니 대신 빠르게 챙겨 넣은 개인 짐이 들려 있었다.

그 선수는 이제 리그 4년 차를 맞은 박인웅이었다.

“진짜 요즘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날도 많이 아쉽긴 했는데, 항상 긍정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서요...”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지난날을 회상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아쉬움보다 더 깊은 책임감이 스며 있었다.

시즌 초반, DB는 KCC와 함께 공동 선두를 형성하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새롭게 합류한 헨리 엘런슨까지 가세하며 팀은 전체적으로 에너지와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는 “디드릭 로슨과 함께 뛰던 그때의 색깔이 조금씩 돌아온 것 같다”며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박인웅은 그 말을 들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뭐 BQ도 좋은 선수이고, 공격은 말할 것도 없는데... 제가 잘 안 풀리고 있네요. 근데 엘런슨이 저보고 너무 좋은 슈터라고, 자신 있게 쏘라고 많이 얘기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힘을 얻고 로슨 시절 때의 영상을 많이 돌려보고, 내가 그때 어떻게 플레이했었는지 유심히 찾아보고 있어요”

사실 박인웅은 단순한 로테이션 멤버가 아니었다.

한때는 리그 식스맨상을 거머쥐며 벤치에서 흐름을 바꾸는 '에너자이저'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여기에 아무나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국가대표 유니폼까지 입은 바 있는 자원이었다.

짧고 긴 출전 시간에도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슈터, ‘언제 시작해도 존재감만큼은 스타터’ 혹은 ‘차세대 3&D 자원’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래서였다.

그렇게 빠르게 치고 올라왔던 박인웅이었기에, 올 시즌 초반 마주한 이 침묵의 시간은 더욱 길고, 차갑게 느껴지고 있었다. 박인웅이 스스로 잘 안 풀리고 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었다.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올 시즌 5경기 출전 중 세 번의 무득점. 데뷔 이후 가장 아쉬운 출발. 자신감 있게 올리던 슛은 림에 닿기 전 이미 무게를 잃었고, 자신도 모르게 코트에서 한 걸음씩 위축되고 있었다. 그렇게 얼굴에서도 박인웅 특유의 해맑은 미소가 조금씩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할 수는 있다’는 말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막상 자신이 그 내리막을 밟고 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더욱 아쉬운 건, 시즌 전 일본 전지훈련과 연습경기에서는 오히려 팀 내 최고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일본 전지훈련 때, 오픈 매치 때까지도 몸이 괜찮았는데... 여름에 열심히 준비했고 개인적으로도 모든 게 잘 됐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실전에 들어가니 준비한 게 잘 안 나오면서 스스로 텐션이 떨어진 게 컸던 것 같아요”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은 그를 향해 "괜찮다", "너는 우리가 믿는 선수"라며 격려를 전했지만 결국 이 시간을 극복해야 하는 건 박인웅 자신뿐이다.

그래서 그가 내린 선택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이고, 가장 확실하기도 한 ‘연습’으로 돌아가는 것.

“연습 계속하고, 더 준비하고 들어갔을 때 어떻게 도움이 되어야 할지 연구해야 되는 게 선수로서 맞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도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 위한 욕심도 있기도 하고요. 이전 경기들에선 어떻게 뛰어왔고 앞으로는 어떤 걸 더 생각하면서 플레이에 임해야 할지 해보려고요”

박인웅은 원래도 ‘연습벌레’였다. 대학 시절부터 누구보다 먼저 체육관에 불을 켜고, 가장 마지막까지 코트를 지키는 선수로 평이 자자했다. 프로 무대에서도 그의 그런 성향은 그대로였지만, 현재는 그 강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대구 원정을 마치고 주어진 휴일. 대부분의 선수들이 잠시 숨을 돌릴 때, 박인웅은 홀로 클럽 하우스 내 보조체육관 문을 열었다.

“대구 갔다 와서 이틀 쉬는 기간이었거든요. 근데 제가 저 스스로한테 화가 나는 부분이니까, 마냥 쉬기보다는 야간 훈련을 진행했던 것 같아요. 루틴도 지금 바꿔보고 조금씩 변화도 줘 보고 있는 상태예요”

그리고 16일, KCC전을 앞둔 경기장에서도 그의 태도에 변함은 없었다.

아직 경기장 세팅이 다 완료되기도 전이었지만 박인웅은 가장 먼저 코트에 나서 묵묵히 슛을 던지고 있었다. 숨이 가빠 오고 땀이 흘러내려도, 그는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다시 공을 집어 들었다. 몇몇 선수들은 안부를 전하며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박인웅은 말그대로 요지부동이었다.

비록 결과적으로 16일 KCC전에서 많은 시간을 소화하진 못했지만, 그가 코트 위에 남긴 땀방울은 분명 다시 올곧은 방향을 찾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워 보였다. 지금은 잠시 멈춘 듯 보일지 몰라도, 그는 분명 다시 뛰기 위해 자신을 벼르고 있다. 어쩌면 또 다른 출발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좋아요. 여름 때부터 분위기도 좋았고 팀에 잘 녹아들었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그의 말처럼 그는 자신을 향해 믿음을 놓지 않고 천천히, 조용히 다시 슛 폼을 고쳐 잡고 있는 중이다. 금방 다시 원주 팬들의 환성을 이끌어내며 포효할 순간을 위해.

#사진_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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