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조용필이 보여준 ‘국민 대통합’

추석 연휴 안방 1열에서 조용필 콘서트를 관람했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 같이 사는 사람이 틀어 놓은 화면 앞에서 평소대로 스마트폰만 보다, 첫 곡 ‘미지의 세계’ 전주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화면에선 흰 재킷에 선글라스 쓴 조용필이 붉은색 일렉 기타를 연주하며 마치 휘파람을 부는 듯한 표정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아름다운 마음으로/ 미래를 만드는/ 우리들의 푸른 꿈~.” 첫 소절부터 이어지는 미성에서 나는 이 가수를 소개하는 수식어가 진짜임을 알게 됐다. ‘영원한 오빠’. 스마트폰으로 가수의 나이를 검색했다. 1950년생, 올해 75세다. 스마트폰을 조용히 무음 모드로 바꾸었다. 이어지는 150분의 시간을 나는 홀린 듯 조용필에게 모두 주었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서.
1980년대생인 나에게 조용필은 롯데 자이언츠 응원가로 먼저 알려졌음을 고백한다. 20대 초반 회식 뒤풀이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르는 회사 동료를 보고 ‘저건 랩인가, 내레이션인가’ 하며 수상하게 본 적도 있다. 10여 년 만에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다시 들으며 생각했다. ‘이건 사(詞)인가, 시(詩)인가.’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같은 가사를 이젠 알고 싶지 않아도 구구절절 이해하게 돼 버렸다.
이 노래는 작사가 양인자가 서라벌예대 다니던 시절 신춘문예에 낙방하고, 다음 1년을 버티기 위해 미리 쓴 당선 소감을 토대로 했다. 작사가는 책에서 “날고 기는 글쟁이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일어나기 위해 썼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보다 나이 많은 이 노래가 여전히 나와 당신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일어나게 하고 있다. 잘 만든 노래 한 곡의 위대함이다.
2시간 30분 동안 게스트도 없이 홀로 28곡을 소화한 조용필도 경이로웠지만, 틈틈이 비친 관객들 모습을 보는 것도 그 공연의 백미였다. 방송은 지난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녹화해 중계한 것이다. 어느 아이돌 팬도 ‘단발머리’나 ‘모나리자’를 떼창하는 어머니 팬들의 열정을 쉽게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온 듯한 중년 남성이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칠 때, 나란히 앉은 노부부가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는 듯한 표정으로 ‘꿈’을 따라 부를 때, 마침내 ‘여행을 떠나요’로 관객 모두가 일어나 국민 대통합하듯 춤출 때, 왜 조용필이 국민 가수이며 그의 노래에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시청률이 10%만 나와도 대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이번 공연은 평균 시청률 15.7%(닐슨 전국 기준), 최고 시청률 18.2%을 기록했다. 추석 연휴 기간 공중파·종편·케이블을 망라한 전 채널에서 1위였다. 연휴가 끝나고도 그 여운이 계속돼 만나는 사람마다 조용필 이야기를 했다. 그 앞에선 남녀도, 세대도, 이념도 없었다. 도처에 갈등으로 분열된 나라에 모처럼 세대 통일, 국민 대통합이 이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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