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김밥천국의 차별정책

최정화 소설가 2025. 10. 1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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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서 기본김밥 주문하니
텅빈 매장인데 식사 거부 ‘야속’
밥 먹을때 우린 밥만 먹지 않아
‘맛있음’에는 온기·사랑 한몫


최정화 소설가

내 소울푸드는 야채김밥이다. 한 끼 식사를 하기는 애매하고 간식으로 때우기는 뱃속이 영 허전할 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야채김밥은 내가 제일 자주 찾는 분식집 메뉴다.

서울 은평구 연서시장 입구에 있는 연신내 김밥집은 내 단골 김밥집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세 자매가 운영하는 곳으로, 티브이에도 출연한 적 있는 맛집이다. 재료는 어디든 엇비슷하게 쌀밥에 단무지, 햄과 당근, 시금치와 우엉이 들어가는데도 김밥의 맛은 천차만별이다. 재료의 신선도 차이도 있을 테고 손맛도 한 몫할 것 같다. 어쨌든 연서시장 김밥집은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김밥 중 가장 맛있다. 야채김밥만 주문해도 배추김치 겉절이와 유부장국을 듬뿍 얹어주신다. 단돈 3천500원에 푸짐한 한 끼 밥상을 받으면 뱃속이 벌써 부자가 된 기분이다.

두 번째로 자주 가는 김밥 집은 미미김밥이다. 미미김밥의 야채김밥은 일반김밥보다 크기가 작다. 대신에 가격도 작아 2천500원. 가격을 충분히 낮추고, 최소한의 재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사이즈를 줄이는 방법을 선택한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도 부담없이 주문할 수 있는 가격대를 유지하는 방법을 고심했을 주인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살짝 미소를 짓는다. 사이즈가 작아서일까? 미미김밥의 야채김밥을 먹을 때는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기분이 든다.

며칠 전에는 급하게 끼니를 때워야 해서, 근처 김밥천국에서 야채김밥을 주문했다. 김밥 한 줄만 달라고 하자 기본김밥을 주문하는 손님에게는 테이블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흘끔거리며 매장을 돌아보니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다. 테이블이 꽉 차 있었다면 상황을 이해했을 텐데, 눈앞에 자리가 분명 비어있는데도 너에게는 앉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김밥을 싸는 몇 분동안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김밥천국은 서민을 위한 식당이 아닐까? 밥집 인심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나워졌지?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밥만 먹는 게 아니다. 식당에 가는 이유는 단지 맛 때문이 아니다. 연서시장 김밥이 유독 맛있는 건 사장님의 따뜻함과 센스가 분명 한 몫한다. 미미김밥 사장님은 언제나 푸근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로 손님을 대하신다.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밥만 먹지 않는다. 밥을 짓고 내주는 온기와 사랑도 함께 먹는다.

내가 한때 매일 가던 식당의 이름은 ‘따뜻한 밥상’이었다.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위해 최운형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이 식당의 김치찌개 가격은 3천원이었다. 반찬은 콩나물 무침과 계란 프라이가 전부였지만 한동안 그곳에 매일 들락거리며 끼니를 때웠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데도, 밥을 짓고 찌개를 내주시는 목사님의 온화한 얼굴을 보러 매일 그곳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밥을 먹을 때 우리는 사랑을 먹는다. 매일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일생동안 헌신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땀을 먹는다. 벼를 키우는 농부의 한숨을 먹고, 식당 사장님들의 노고를 먹는다. 잘 자란 벼 이삭을 보며 뿌듯해 하시는 기쁨을 먹고, 재료 가격이 오르면 그 고민도 함께 먹는다. 자릿값을 유지하느라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서민의 고충을, 콩국수를 주문했는데 잔치국수를 내주는 정신없음을 함께 먹는다.

김밥천국 사장님은 언제부터 기본김밥을 먹는 사람에게 테이블을 내주기 싫어진 걸까? 그런 발상을 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야박함이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통용된 걸까? 돈만 중요하고, 돈으로 기준을 삼는 풍토는 비단 김밥천국만의 일일까?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밥만 먹지 않는다. 우리가 돈을 주고 받을 때 정말로 오가는 건 돈이 아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 사랑을 먹고, 돈을 주고 받을 때 우리는 숫자로는 계산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주고 받는다.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건 돈 몇 푼의 손해와 이익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가 돕고 연결되어야 살아간다는 소중한 마음이 아닐까?

/최정화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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