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족쇄 43년 만에 풀리나...대기업 CVC 확대 운용 '논란'

이승엽 2025. 10. 1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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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금산분리 규제 완화 움직임]
AI 글로벌 경쟁 격화... 금융·비금융 구분 사라져
재계 "대규모 투자 어려워... CVC 규제 풀어달라"
외부투자 비중 40% 제한 풀고 GP 허용 가능성도
기업 사금고 전락할 가능성... "관리·감독 강화"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43년 만에 금산분리의 족쇄가 풀릴 가능성이 커졌다. 핵심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에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 조달을 막는 규제를 완화해 초대형 설비 등 투자 확대를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한 대기업에 정부가 금산분리 빗장을 풀어 CVC를 경영진의 '사금고'로 악용할 여지를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산분리 완화 논란의 시작은 이재명 대통령이 앞서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독점 폐해가 없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최근 재계·금융권에서 "AI 등 첨단산업에 투자하려 해도 금산분리 규제 탓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최태원 SK그룹 회장)" "CVC를 금산분리로 묶어 놓은 곳은 한국뿐(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 군불을 떼던 논의가 이 대통령의 해당 발언으로 속도가 붙은 것이다.

구체적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날 한 유튜브 채널에서 "사모펀드를 금융업으로만 분류해 산업자본이 사모펀드의 운용사가 될 수 없도록 한 건 시대착오적"이라며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으로 지원한다"며 CVC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금융·산업 분리 대원칙... AI·가상자산 등 산업환경 변화에 깨지나

그래픽=신동준 기자

금산분리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가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는 걸 금지하는 원칙이다. 재벌기업의 금융사 소유를 금지해, 기업이 금융자본을 자신들에 유리하게 운용하는 문제나 기업 리스크의 금융 전이 가능성을 막기 위한 장치다. 반대로 금융회사가 고객 예금 등으로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고위험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도 있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금융지주법·은행법은 금융자본의 기업투자를 각각 제한하고 있다.

그간 금산분리는 일부 예외만 허용돼왔다. 신한은행의 배달 앱 '땡겨요',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 등 금융당국의 심사를 거친 혁신금융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산업자본 카카오가 디지털금융 육성을 위한 인터넷전문은행특별법을 통해 카카오뱅크를 설립한 것은 반대의 경우다.

CVC도 변화하는 경제환경에 맞춰 2021년부터 허용된 예외규정 중 하나다.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업(일반지주회사)이 벤처캐피털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00% 완전 자회사 형태 △차입한도(자본금의 2배) △계열사 투자제한 등 내부거래 금지 △펀드 외부자금 비중 40% 이내 △해외투자 총자산 20% 이내 등 여러 안전장치도 뒀다.


벤처캐피털 외부자금 비중 40% 제한... "더 큰 외부자금 필요해"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오른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지난 8월 25일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리셉션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산업 환경이 확 달라졌다는 점이다. 재계에선 AI 등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전략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우며, 금융과 비금융의 업무 영역 구분이 사라지고, 가상자산·핀테크 시장이 커지는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업들은 CVC 펀드의 외부자금 비중을 40% 이내로 제한한 조건 때문에 외부투자자(LP)의 추가 자금 유치 등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도 자금 제한을 풀어야 적극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기업이 직접 펀드를 운용할 수 있도록 기업 위탁운용사(GP)를 허용하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완전한 금산분리가 힘들다면 국민성장펀드가 사용되는 산업에서는 일부 완화될 필요가 있다"라며 "대기업들이 투자 대상을 고르면 자본력을 갖춘 금융회사가 뒷받침하고, 반대로 금융회사가 투자 대상을 고르고 투자도 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산분리 대원칙 흔들릴라... "벤처캐피털, 재벌 사금고로 악용 가능성"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완화의 틈을 열어주면 금산분리의 대원칙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CVC 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주식 소유 제한 특례(공정거래법 20조)를 손봐야 하는데, 이를 근거로 기업들이 리스크가 높은 가상자산 시장 투자를 금융자본으로 늘리는 등 CVC가 재벌의 사금고로 악용될 가능성이 여전하다.

대통령실이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 예외 조항을 얘기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 대통령부터 김 실장 등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CVC 규제 완화' 대신 '금산분리 완화'라고 언급하는 것도 일각의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대목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대기업은 이미 대출·채권 발행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규모 투자자금 조달이 어렵지 않다"며 "이 시점에 금산분리 완화가 논의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완화 여부는 물론 범위까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세밀한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도 "미국도 기업의 은행 소유만 금지하고 CVC 운용은 자유로운 등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규제 완화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완화가 되더라도 이후 당국의 관리감독 강화 등 부작용을 잘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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